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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마이산의 금빛 찬란한 신비로운 장면. 2018년 10월 마이산 고금당 나옹암에서 촬영함.
 진안 마이산의 금빛 찬란한 신비로운 장면. 2018년 10월 마이산 고금당 나옹암에서 촬영함.
ⓒ 성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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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가 산뜻하게 피어나는 계절이다. 6일 오전에 전북 진안군 마이산의 몽금척(夢金尺) 설화 현장을 찾아 이성계리더십센터의 정세량(전주시 덕진구) 센터장의 안내로 30여 명의 일행이 은수사(銀水寺)를 방문하였다.

이들은 이성계 장군의 리더십을 찾아보는 역사 기행으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장군의 설화가 전해오는 역사적인 장소이며 유적지인 진안 마이산과 남원 운봉 황산대첩비지를 탐방하였다.

정세량 센터장은 마이산 탑사에서 서쪽으로 2km 거리에 있는 고금당(古金堂) 나옹암(懶翁庵)에서 동쪽의 마이산 암마이봉 방향으로 해질녘에 멋진 장면이 드물게 연출된다고 하였다. 고금당 나옹암에서 볼 수 있는 이 마이산의 신비로운 장면에서 몽금척(夢金尺) 설화가 기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

마이산의 끝내주는 풍경
 
진안 마이산 은수사 몽금척 그림
 진안 마이산 은수사 몽금척 그림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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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1380년 가을에 이성계 장군은 남원 운봉고원에서 황산대첩으로 왜구를 무찌르고 개선하는 길에 진안 마이산에 들렀다. 이때 이성계 장군이 하늘로부터 금척을 받는 꿈을 꾸었고 훗날 새로운 나라 조선을 창업하였다는 내용이 몽금척 설화로 이곳 마이산에 전승되는데 이성계 장군이 천명(天命)을 받았음을 암시한다.

고금당 나옹암의 주지인 성호 스님은 5년 전인 2018년 10월 어느 날 비가 온 뒤 저녁노을이 가을의 마이산을 물들일 때 금빛으로 빛나며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마이산의 풍경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고 하였다. 스님이 이때 촬영한 금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마이산의 경이로운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성호 스님은 마이산의 이러한 장면은 고금당 나옹암의 위치에서 기상 조건이 저녁노을의 햇빛 각도와 일치할 때 나타나는 것 같다고 한다. 마이산은 고려 시대에는 금산(金山)이었고, 조선을 창업하고 태조 임금 때 속금산(束金山)이라 하였으며, 태종 임금이 마이산(馬耳山)으로 명명하였다.
 
진안 마이산 은수사 일월오봉도 탱화
 진안 마이산 은수사 일월오봉도 탱화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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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당 나옹암은 고려말에 나옹화상(1320~1376)이 오랫동안 바위굴에서 수도한 역사적인 곳이다. 나옹화상은 황혼녘에 금빛으로 빛나는 마이산의 예사롭지 않은 풍경을 보았을 것이다.

나옹화상의 제자인 무학대사(1327~1405) 역시 고금당 나옹암에서 마이산의 이러한 장면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무학대사의 조언을 많이 받은 이성계 장군이 마이산의 이 금빛 장면을 보았다면 새 왕업을 열라는 하늘의 계시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마이산을 여러 번 방문하였고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말의 귀처럼 솟은 산의 모습은 친숙한데 금빛으로 빛나는 황혼녘의 성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이런 풍경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마이산이 금빛으로 빛나는 이러한 장면을 볼 수 있는 고금당 나옹암이 마이산 몽금척 설화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 같다.
 
능소화. 진안 마이산 암마이봉 역암 절벽.
 능소화. 진안 마이산 암마이봉 역암 절벽.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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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탑사를 내려오는데 마이산 역암의 단애에는 능소화가 피었고, 돌계단에는 바위채송화가 피었다. 바위채송화는 작은 꽃이 보석처럼 영롱하다. 습기를 머금은 바위 표면에는 선태류 이끼가 푸르다.

황산전투 장소에 실제로 가보니

이성계리더십센터의 정세량 센터장이 안내하는 일행 30여 명이 6일 오후에는 남원시 운봉읍 황산대첩비지를 방문하였다. 남원 황산대첩비지, 임실 성수산 상이암, 진안 마이산과 전주 오목대(梧木臺)로 이어지는 황산대첩 개선길은 고려 백성들로부터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던 이성계 장군의 설화가 전승되는 의미 있는 유적지들이다.

고려 말에 왜구의 살육과 수탈로 고려 백성들 도탄에 빠졌다. 고려 군대도 군기가 엄정하지 못해 때로는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성계 장군의 부대는 백성들에게 대나무 한 쪽도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백성들을 애민 정신으로 배려하였다고 한다.
 
바위채송화. 진안 마이산 탑사 바위 표면.
 바위채송화. 진안 마이산 탑사 바위 표면.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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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 장군의 부대인 가별초는 여진인 몽골인과 고려인 등으로 구성된 기병 부대였다. 이 가별초는 함경도 지역의 이성계 장군 가문에서 200여 년 동안 승리를 이어온 전투 부대였다.

이성계 장군의 가별초 부대는 전투에 참여면서 대라(大螺)를 불었는데, 이 대라 소리는 고려 백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였고 고려군에게 승리의 확신이었다.

예로부터 초원지대의 유목민족인 여진족이나 몽골족 등은 몰이사냥 전술에 능숙했다. 이성계 장군의 가별초 부대는 이 몰이사냥 전술을 남원 운봉의 황산대첩에 적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원 운봉고원 황산대첩비지 전경
 남원 운봉고원 황산대첩비지 전경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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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0년 9월에 있었던 고려 군대가 왜구를 격파한 황산전투 장소는 험준하고 좁은 지형이다. 이곳은 지리산 지역 운봉고원의 중심을 흐르는 람천 좌우로 황산과 바래봉의 지리산 능선이 이어진 하천이며 계곡인 지형이다.

기마병이 주력이었던 왜구가 운봉고원의 평지를 벗어나 이 좁고 험한 장소를 전투 장소로 선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구의 주력 부대가 섬멸되었다는 유적지인 피바위가 람천에 있어 이성계 장군과 왜구 대장인 아기발도의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다.

고려군의 주력 부대인 이성계 장군의 가별초가 중심이 되고 여러 명의 고려 장수들이 고려의 군대를 인솔하여 협동 작전으로 왜구를 이 황산 지역으로 몰아붙여 대승을 거두었을 것이다. 이 황산전투를 계기로 왜구의 준동은 현저하게 적어진다.
 
남원 운봉 황산대첩지 원경, 왼쪽 황산과 오른쪽 지리산 바래봉 능선의 사이 람천의 험지가 황산대첩 장소.
 남원 운봉 황산대첩지 원경, 왼쪽 황산과 오른쪽 지리산 바래봉 능선의 사이 람천의 험지가 황산대첩 장소.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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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황산전투에서 유목민의 몰이사냥 전술을 활용하여 대승을 이룬 과정에서 이성계 장군의 협동과 통합의 리더십을 찾아볼 수 있다. 백전백승을 이끈 이성계 장군의 전투력에서 역동적인 힘과 역경을 돌파한 통합의 리더십을 읽어내며 남원 운봉고원의 황산전투 현장을 바라본다.

황산대첩비지 앞에는 너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는데 이곳은 수백 년 동안 람천의 하천 배후 습지였다. 남원 지역의 들꽃사진작가 김태윤씨에 의하면 이곳 습지는 예로부터 나도개감채, 조선현호색, 가화개별꽃과 연복초 습지 식물이 군락으로 자생하는 생태계의 보고였다고 한다.

이 습지를 메우고 잔디밭을 조성하였는데 현재도 이곳 잔디밭에는 습기가 많이 올라오고 습기를 좋아하는 이끼가 자생한다. 이 잔디밭을 다시 습지로 복원하여 습지 식물이 자생하는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황산대첩비지가 생동감 있는 환경과 잘 조화되는 역사적 유적지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남원 운봉 황산대첩비각
 남원 운봉 황산대첩비각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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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마이산 고금당 나옹암, #황산대첩, #마이산 몽금척 설화, #마이산 금빛 장면, #황산대첩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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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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