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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8일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열리는 친이명박계 인사들과 송년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2017년 12월 18일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열리는 친이명박계 인사들과 송년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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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테는 칼을 들이대 적폐청산 수사한다고 100여 명을 기소하고 130년을 구형했다! (중략) 이런 패거리 문화에 물든 검사가 이전 수사는 제대로 했을지 의심스럽다!" - 2019년 7월 채널A '시사방송'

누가 한 말일까. 주인공은 현재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이며 차기 방송통신위원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이동관씨다. 얄궃게도 위 발언상 '패거리 문화에 물든 검사'는 바로 현직 대통령이다. 육두문자를 쓰진 않았지만, 방송에서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비판이나 다름없다. 대통령실도 이동관의 발언을 인지하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통위원장 임명 의지는 강력해 보인다. 

언론 현장 당사자인 기자들의 반대 입장은 분명하다. 한국기자협회가 6월 16일부터 19일까지 회원 1만1122명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무려 80%에 이르는 기자들이 이동관 특보 방통위원장 임명에 반대했다. 주요 반대 이유는 '이명박 정부에서 언론탄압에 앞장선 인물' '현직 대통령실 인사의 임명은 방통위 독립성 침해'였다.

일반 국민들도 다르지 않았다. 6월 23일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진행한 설문에선 응답자의 약 60%가 이동관의 방통위원장 임명에 반대했다. 연령별, 세대별, 지역별로 큰 차이가 없을 만큼 일관된 의견 표시였다.

'이동관 방통위원장 임명 강행은 국민을 향한 선전포고' 등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의 저항은 물론, 일선 기자들과 국민 과반이 반대한다는 사실이 명확해도 '용산의 뜻'은 분명하다. 그동안 이동관 특보에 대한 부정적 보도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브리핑상 질문에 대해선 묘한 뉘앙스로, 아들 학폭 논란에 대해선 입장문을 대신 배포해주는 열정(?)으로 방통위원장 임명을 충분히 시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왜 대통령실은 갈등이 예상되는 인사를 굳이 강행하려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했던가. 임명 강행 입장을 살펴보면,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왜 생겨났는지, 무엇을 노리는지 알 수 있으니.

'경력자' 이동관
 
2009년 11월 12일, 당시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통령실에 대한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내용을 듣고 있다.
 2009년 11월 12일, 당시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통령실에 대한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내용을 듣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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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이동관은 세상 어디서도 찾기 힘든 최적의 '경력자'다. 현 정부가 갈망하는 KBS·MBC 등 공영방송 정상화(?) 부문에서 그는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다. 군사력을 동원해 정권을 빼앗은 이가 공영방송 사장과 담배를 피우며 환담하던 옛 시절을 제외하면, 이동관의 경력은 한국 사회 '언론자유의 위기' 혹은 '흑역사' 시기에 꼭 맞춰져 있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이 됐으며(2007년 12월), 이후 대통령실 대변인으로 2009년 8월까지 활약했다. 자타공인 MB 정부의 '스핀닥터'이자 '핵관'이었던 그는 2009년 하반기부터 약 1년간 홍보수석실을 지휘했다. 2011년에도 청와대 언론특별보좌관을 담당했으니, 사실상 MB 정부의 처음부터 끝까지 언론과 미디어, 여론과 국민소통 관련 업무에 깊이 관여한 핵심 중의 핵심이다.

그가 소위 '핵관'이었던 시절, 한국 언론계엔 참으로 다양한 사안들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수년 뒤 부당하다고 판결을 받게 되는 KBS 사장의 해임이 있었으며, 신문-방송 겸영 금지법이 돌연 바뀌어 보수언론 중심의 종합편성채널 탄생이 실현됐다. 최근 연이어 관련 문건들이 공개되고 있지만, 방송법 제4조로 엄격하게 금지된 편성제작의 개입이 의심되는 다수 사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시절도 대부분 이동관이 활약하던 시기와 겹친다.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 "방송사 지방선거 기획단 구성 실태 및 고려 사항"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MBC 좌편향 출연자 추가 퇴출 확행" "좌편향 방송인에 대한 온정주의 확산조짐 엄단" 등 최근 언론에 의해 MB 정부 홍보수석실이 국가정보원에 작성을 요청했거나, 보고받은 것으로 지목된 문건들이다.

이동관 본인과 대통령실은 문건에 대한 이동관의 관여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문건엔 "홍보수석 요청" "홍보수석실 요청" 등 관여 여부가 명백한 표식들이 다수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방안"이라는, 너무나 뚜렷한 공영방송 개입 문건의 중간결재자 또한 당시 홍보수석이었다. 그밖에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와 사장 사퇴 압박 및 새로운 사장 임명, KBS와 MBC, YTN에 몰아쳤던 언론인 해직 사태들 모두 그 즈음에 발생했던 '역사'들이다.

직접적인 연루, 결재와 요청 등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당시 정부와 핵심 관계자들이 언론에 어떻게 '군림'하며 '조정'하려 했는지에 대해선 부인하기 어렵다고 본다.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가해지던 암흑기에, 경력자 이동관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지난 6월 2일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은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워크숍에서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의 주요 원인으로 "언론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꼽았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현 정부가 가장 민감한 사안으로 여기고 있는 영역이 바로 '언론 정상화(?)'라는 걸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세부적으로는 공영방송에 대한 조치일 것이다. 대통령실의 권고와 함께 KBS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건은 방통위에서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며, 사상 초유의 뉴스룸 압수수색으로 상징되는 MBC에 대한 견제는 여전히 강력하다. YTN이란 우량 공영방송의 주인을 바꾸려는 상황도 착착 전개되고 있다. 용산이 이런 일들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경력자'를 외면하긴 매우 어려울 것이다.

'기술자' 이동관
 
2008년 5월 28일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회원들이 서울 청계광장 부근 동아일보 본사앞에서 왜곡, 거짓보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가운데, 동아일보 편집부국장 출신인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장과 동아일보 정치부장 및 논설위원 출신인 이동관 이명박정부 청와대 대변인의 사진과 '어록'을 들고 나왔다.
 2008년 5월 28일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회원들이 서울 청계광장 부근 동아일보 본사앞에서 왜곡, 거짓보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가운데, 동아일보 편집부국장 출신인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장과 동아일보 정치부장 및 논설위원 출신인 이동관 이명박정부 청와대 대변인의 사진과 '어록'을 들고 나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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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동관은 언론을 다루는 데 능한 기술자이자 전문가다. 그는 <동아일보>에서 논설위원을 지낸 베테랑 언론인이며, 언론 내부 사정은 물론 정권이 언론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매우 밝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언론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주도권을 가졌는지, MB 시절 왜 언론이 특히 정권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일화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핵관'과 관련한 이야기다. 청와대 대변인 시절, 이 특보는 자신의 발언을 인용할 때 '핵심 관계자' 등의 표현을 사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 청와대 내 여타 인사들의 발언을 기사화하며 '핵심관계자'라는 표현을 쓰자, 매우 불쾌해했다고 전해진다. 핵심 관계자란 용어를 일반명사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언론에, 이건 고유명사라며 강하게 지적한 것이다. 물론 이처럼 대변인을 핵심관계자라고 부르는, 언뜻 이상한 관행은 언론에 의해 수용돼 이후에도 지속됐다. 한편으로 그는 언론인들을 향해 엠바고와 오프더레코드를 남발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위 일화들은 이 특보가 언론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포지션을 설정했는지 해석이 가능하게 하며, 왜 현 정권이 강력한 매력을 느끼는지 쉽게 파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바이든-날리면' 사태로 상징되는 언론과의 갈등으로 대통령의 도어스테핑까지 멈췄던 상황을 지나면서 '이 사람'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더불어, 이동관은 실제 언론사 기자들을 대상으로 다수의 소송을 진행한 이력도 있다. MBC를 고소한 현 정부와 닮은 꼴이기도 하다. 그는 2008년 이후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을 거치며 민사 포함 언론인 등을 상대로 6건의 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장관급인 방통위원장의 역할과 위상을 언급하며 과거 대변인과 비서관 시절의 일로 과도한 예측을 삼가 달라 요청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최시중이란 인물이 방통위원장을 맡으며 발생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최시중이 위원장이던 시절 청와대 측 파트너는 바로 이동관 특보였고 말이다. 정부에겐 대안을 찾을 필요도 없을 만큼 적절한 인사일지 모르겠으나, 언론의 자유와 역할 측면에서는 매우 퇴행적인 임명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행동파' 이동관
 
2015년 12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웨딩홀에서 열린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출판기념회에서 이 전 수석이 땀을 닦고 있다.
 2015년 12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웨딩홀에서 열린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출판기념회에서 이 전 수석이 땀을 닦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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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이동관에겐 특정 사안에 대해 결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과감한 면모가 있다. 상식적으로 준수돼야 하는 원칙은 물론 중요하지만, 목적을 위해선 때로 변칙적 수단도 가능하다고 여긴다는 평가다.

그가 걸었던 두 통의 전화에서 이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 특보가 2008년 청와대 대변인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거주하지도 않고 농사를 짓지도 않는 땅에 가족의 이름으로 토지를 매입한 사실이 있다는 의혹이 등장했다. 농지법 위반 소지가 높다고 판단한 <국민일보> 기자들은 곧바로 취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즈음 이 특보는 <국민일보> 편집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기사화하지 말라는 청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정보다는 해결 위주의 사고방식인 것이다.

자신의 위치, 즉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 곁을 지키는 고위 공무원이란 위치를 잊었거나 혹은 정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해결을 시도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놀라운 점은, 실제 이 청탁이 성공해 당시엔 기사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련의 사실은 추후 <국민일보> 노조에 의해 폭로돼 낱낱이 드러나게 됐다. 이 건이 논란이 되자 그는 기자들에게 "외압이라고 하는 데 인지상정으로 상식선에서 말한 것이지, 협박하고 압력을 넣고 이런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하나의 전화는 2012년 아들의 학폭이 불거진 후 이뤄진 하나고 재단 이사장 김승유와의 통화다. 일부 언론에서 이미 지적했지만, 자녀가 일으킨 학폭 사건에 대해 학교법인 이사에 전화할 수 있는 학부모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단 이사장과의 전화 통화에 대해 이 특보는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알기 위해 어찌 된 일인지 문의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입장을 내놨다.

용산의 계산

현재 보수 언론을 제외한 언론들이 이동관 특보에 대해 보도하고 있는 쟁점을 종합해봐도, 그가 공정과 상식을 지향한다는 현 정권의 방통위원장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현직 기자 80%와 국민의 과반이 '부적절하다'고 평가하는 인사의 감행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 정부가 스스로의 정체성이라고 홍보하는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더라도 그를 방통위원장에 앉히려고 하는 데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을 이용한 정치적 효과'를 보려는 계산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기념행사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기념행사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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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유현재씨는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입니다.


태그:#이동관, #방통위원장, #윤석열, #언론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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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수용자 중심 저널리즘과 미디어 활용에 대해 강의 중. 정치인들을 포함, 공적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대중과의 소통을 얼마나 원활하게 하고 있는지 ‘소통감수성 ’이란 개념을 통해 설명 및 비판하고 있음. 세바시에 출연, “소통 감수성이란 무엇인가?”“미디어 시대, 우리가 건강하지 못한 이유”등을 주제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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