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

1990년대 후반 삼성이 내놨던 유명한 광고 카피다. 그리고 이는 스포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삼성은 대한민국 4대 프로스포츠(야구, 농구, 축구, 배구)에 속한 구단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대기업이며, 삼성 스포츠단들 역시 각자의 종목에서 수차례 정상에 오를만큼 명문구단으로서의 스펙을 쌓아왔다. 
 
그런데 2023년 현재, 삼성은 조금 다른 의미에서 추억의 광고 카피를 다시 소환시키고 있다. 바로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전대미문의 꼴찌 그랜드슬램(4관왕)이라는 대기록이 눈앞이다. 한국 4대 프로스포츠 역사에서 같은 모기업을 두고 있는 구단이 같은 해 각 종목에서 모조리 꼴찌를 차지한 경우는 전무하다. 그야말로 '꼴찌도 삼성이 하면 다르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하다.

삼성 라이온즈의 추락
 
 임기 첫해 하위권 전망을 극복해야 하는 삼성 박진만 감독

임기 첫해 하위권 전망을 극복해야 하는 삼성 박진만 감독. ⓒ 삼성라이온즈

 
2023시즌이 한창 진행중인 프로야구 KBO리그에서 6월 24일 현재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는 26승 40패(.394)로 10개 구단중 꼴찌다. 특히 최근 4연패 포함 10경기에서 1승 9패, 6월 월별 승률도 6승 14패로 최하위에 그치며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다.
 
삼성이 정규리그 개막 후 최하위에 자리한 것은 2018년 5월 14일 이후 무려 1865일 만이다. 당시에는 중반 이후 반등하며 최종순위는 6위였다. 6월 이후 최하위로 떨어진 것은 2017년 6월 20일 이후 무려 2천 194일만이며 해당 시즌에 삼성은 9위를 기록했다.
 
삼성 야구단은 1982년 프로 원년부터 모기업과 팀명이 바뀌지 않고 역사를 이어온 KBO리그의 터줏대감이다. 통산 우승 8회로 KIA 타이거즈에 이어 역대 2위, 2010년대에는 초유의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 우승 4연패를 이뤄낸 최고의 명문구단이었다. 또한 삼성은 40년 역사 동안 KBO리그에서 단 한번도 정규리그 최종순위를 꼴찌로 마감해본 적이 없는 유일무이한 구단이기도 하다.
 
삼성은 전성기가 끝난 2016년 이후 최근 7시즌간 6번이나 가을야구 진출조차 실패하는 암흑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최하위만은 간신히 피해왔다. 더구나 최근 3년간은 한화 이글스라는 꼴찌팀이 존재했다. 
 
그런데 올해의 삼성은 현재 프로야구 유일한 3할대 승률팀으로, 그 한화마저도 뛰어넘었다. 현재 9위 한화(26승 4무 37패, 승률 .413)는 최근 3연승 행진을 달리며 삼성을 1.5게임차로 따돌리고 4년 만의 탈꼴찌라는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시즌 후반기 감독대행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올시즌을 앞두고 정식 감독까지 오른 삼성의 레전드 박진만 감독은 풀타임 첫시즌부터 위기에 봉착했다. 스프링 캠프부터 이어진 선수들의 줄부상, 오승환-오재일-구자욱 등 믿었던 간판 스타들의 부진과 노쇠화, 유망주들의 더딘 성장, 박진만 감독의 아쉬운 경기운영 등이 겹치며 과정도 결과도 내지 못하고 잇달아 무너지고 있다. 심지어 삼성은 퓨처스리그에서도 현재 최하위에 그치며 선수육성과 미래조차도 암울한 실정이다.

다른 종목들도 동반 침체
 
모기업 삼성에게 야구단의 추락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다른 종목들도 동반 침체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역시 2023시즌이 진행중인 프로축구 K리그1의 수원 삼성은 18라운드까지 치른 현재 2승 3무 13패, 승점 9점으로 12개구단중 꼴찌다. 1부리그 잔류권인 9위 인천과는 무려 11점차로 현재 가장 유력한 '다이렉트 강등 1순위'다.
 
1995년 창단 이래 4차례나 K리그1 우승을 차지하며 프로축구의 명가로 자리잡은 수원은, 아직까지 한번도 2부로 강등당한 적이 없었다. 수원은 올시즌 이병근 감독을 경질하고 김병수 감독을 선임했으나 여전히 반등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미 지난 2022-23시즌을 마친 겨울스포츠 종목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프로농구 KBL의 삼성 썬더스는 14승 40패(.259)로 2년 연속으로 10개구단중 리그 최하위에 그쳤다.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의 삼성화재 역시 11승 25패 승점 36점으로 7개구단중 꼴찌였다.
 
그나마 여자농구 WKBL의 용인 삼성생명이 3위를 기록하며 프로 구기 전종목 꼴찌의 굴욕은 일단 간신히 피했다. 하지만 만일 삼성 라이온즈와 수원 삼성이 이대로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하면, 삼성은 한국스포츠 역사상 같은 해에 4대 프로스포츠 전 종목에서 모두 꼴찌팀을 배출하는 초유의 불명예 기록을 세우게 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삼성 스포츠단의 동반 부진이 단지 올해에만 국한된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는데 있다. 삼성 라이온즈 야구단은 왕조를 호령했던 2010년대 초반 전성기가 끝난 이후, 최근 7시즌간 '9-9-6-8-8-2-7'이라는 최종순위를 기록하며 단 1시즌(2021)을 빼놓고 모두 가을야구 진출조차 실패했다.
 
축구의 수원 삼성은 2008년 마지막 우승 이후 14년간 더 이상 리그 우승 타이틀이 없으며 야구와 같은 최근 7시즌간은 '7-3-6-8-8-6-10위'를 기록했다. 단 1시즌을 제외하면 우승 경쟁권 근처에 오른 적이 없고, 하위스플릿 추락만 4번, 지난 2022시즌에는 구단 최초로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추락했다고 간신히 기사회생했다.
 
농구의 삼성 썬더스는 2005-06시즌 V2가 마지막 우승이었고, 2016-17시즌 준우승 이후로는 '7-10-7-7-10-10위'로 최근 6년 연속 7위 이하의 성적에 그치며 봄농구 진출조차 실패했고 이중 꼴찌만 3번이나 달성했다. 배구 삼성화재는 2013-14시즌 7연패를 달성한 이후 더 이상 리그 우승이 없다. 최근 5시즌간은 '4-5-7-6-7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모두 실패했고 꼴찌만 두 번이었다.
 
이러한 삼성 스포츠단의 동반 부진이 심화된 것이, 운영 주체가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시기와 맞물린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2014년 축구를 시작으로 남녀 농구단, 2015년에는 배구, 2016년에는 야구 순서로 제일기획 산하에 들어갔다.
 
이전까지 삼성은 공격적인 투자로 각 종목의 스타플레이어를 쓸어모으며 항상 '윈나우'를 추구하는 큰 손이었다면, 제일기획 체제에서는 합리적인 운영을 강조하며 투자가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현재의 삼성 스포츠단을 살펴보면 슈퍼스타나 국가대표급 선수는 찾기 힘들고 전력도 하위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삼성 측은 스포츠단을 향한 투자나 운영비 규모는 이전과 큰 변함이 없다고 반박한다. 사실 지금도 FA나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데 있어서 들이는 비용은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연속성이나 효율성에 있어서는 평가가 영 좋지 않다.

최근에는 단순히 투자규모의 문제를 떠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삼성 스포츠단 프런트의 무능함과 시스템 부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 분노한 팬들은 트럭시위와 단체행동 등으로 구단을 넘어 모기업에 적극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해당 스포츠를 성원해주고 있는 팬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재계 서열 1위를 자부하지만 정작 스포츠에서는 꼴찌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삼성 스포츠단에는 총체적인 혁신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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