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자"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 "순응자"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 일미디어


오욕의 기성세대를 거부하는 '정치영화'의 탄생
 
1959년, 유태인으로 무솔리니 파시즘 정권시절에 탄압을 받았던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이후 본인의 대표작이 될 장편소설을 출판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어릴 적 발견한 자신의 특이성을 애써 부정하면서 사회적인 주류로 정상적 지위를 획득하고자 끊임없이 시도한다. 하지만 그가 쫓는 정상성은 기껏해야 당시 이탈리아를 장악했던 파시즘 체제에 순응하는 것뿐이었다. 그런 주인공의 일생을 담은 소설은 큰 화제를 불러왔고, 이탈리아의 독특한 '참여문학' 효시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11년 후인 1970년, (미래의 명감독이 될) 갓 29살 청년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각색을 거쳐 <순응자>로 영화화하기에 이른다.
 
동 시기에 유럽의 미래 거장이 될 운명을 지닌 다수의 감독들이 다양한 형태로 체제에 질문을 던지는 문제작들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일련의 작품군은 단순히 목적의식이 앞서는 선전선동 목적 '프로파간다'에 그치지 않는다. 해당 작가의 미학적 시도와 어우러져 예술성을 겸비한 '정치영화'들이 속속 화두를 던지며 퍼져나갔다. 왜 이런 난이도 높은 도전에 다들 뛰어든 것일까? 이들이 체험한 유ㆍ청소년 시절의 경험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전반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며 기성세대와 그들이 주도한 사회체제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아버지'로 상징되는 기성세대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끔찍한 범죄와 전쟁을 막지 못했냐는 질문이다. '아버지'들의 답변은 옹색할 수밖에 없었다. 질문은 점점 심화되기 시작한다. 아돌프 히틀러나 베니토 무솔리니, 프란시스코 프랑코 같은 악명 높은 독재자 홀로 파시즘(혹은 유사 파시즘)을 구현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아버지'가 그런 반인륜적 범죄에 가담했거나 방조했다는 역사의 진실을 깨닫게 된 반항아들은 급기야 가부장과 기성세대의 권위를 부정하려는 단절을 결심한다. 그런 전복적 과정을 통해 저주의 사슬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특히 전범국가가 된 독일과 이탈리아는 애초부터 극심한 문화투쟁의 한복판 격전장이 될 운명이었다. '68혁명'으로 상징되는 격동기는 기성세대의 권위에 도전하는 전후 청년세대의 살부殺父 의식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베르톨루치 또한 아버지-주류사회-이탈리아 국가라는 권위에 대해 자신의 영화를 통해 예술가로서 평가와 발언에 나선다.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본인이 경험한 시대상을 해석하고 개입하려는 일련의 시도가 <순응자>로 사자후를 터뜨린 셈이다. 같은 해에 선보인 <거미의 계략>과 1976년 완성한 대작 < 1900년 >까지 감독은 자신이 물려받은 이탈리아 현대사에 대한 도전적인 평가와 해석에 도전한다. 그 출발점인 <순응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순응자'의 갈지자 행보와 그 배경을 정교하게 그리다
 
"순응자"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순응자"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일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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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응자"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일미디어


원작소설은 주인공 마르첼로가 13살-34살-40살 전후에 겪는 사건을 연대기 형태로 풀어낸다. 그런 시간 흐름에 따른 세분화된 서술을 통해 독자는 주인공이 어떻게 '순응주의자'로 완성되는지 곁에서 지켜보듯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분량 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4살 시점에 포커스를 맞춘다. 주인공의 13살 청소년기는 수시로 삽입되는 회상 형식으로, 40대가 된 후반부는 에필로그에 가깝게 축약된 형태로 공개된다. 감독이 직접 쓴 각본은 한글번역본 460여 쪽 훌쩍 넘어가는 원작을 충분히 잘 압축해 놓았다. 하지만 주인공의 정서적 결핍과 그가 겪었던 충격적 사건 이후 후유증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13살 전후 상황들이 아쉽게도 많이 빠졌다. 그리고 결말부도 영화적 각색이 일부 이뤄졌기에 원작과는 일부 상이한 변주로 마무리되는 셈이다.
 
34살의 중산층 지식계급 청년 마르첼로는 무솔리니가 전성기를 누리던 당시 이탈리아에서 특별한 주의나 주장 없이 그저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한다.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지만 그에게 정치이념이나 사상은 별 의미가 없다. 오직 시류를 쫓아 제 발로 자진해서 파시스트가 된 그는 맡은 임무를 잘 해내 그 보상으로 당당한 체제의 일원 겸 상류층 지위를 보장받으려 한다. 그런 마르첼로는 아름답고 젊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무관심한 줄리아와 곧 결혼을 앞둔 상태다. 줄리아 역시 제법 부유한 집안을 배경으로 갖고 있다. 마르첼로는 예비아내와 만나면서 이것저것 결혼 준비에 바쁘다. 그런 그에게 상부가 내린 첫 번째 임무는 공교롭게도 자신의 대학시절 은사에 관련된 건이다.
 
주인공의 대학졸업논문을 지도했던 콰드리 교수는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 후 다른 망명 지식인들과 함께 반反파시즘 활동을 벌이는 중이다. 파시스트 정부 정보기관의 수장은 그런 교수를 눈에 띄지 않게 제거하라고 지시한다. 마르첼로는 맡겨진 임무 수행을 위해서 줄리아와 함께 명목상 신혼여행을 파리로 출발한다. 그런 주인공을 보호 겸 감시하기 위해 비밀요원 망가니엘로가 밀착 수행을 시작한다. 줄리아는 파리 유람에 신나하면서도 남편이 될 마르첼로에게 순수하게 과거를 전부 고백한다. 그저 예쁘고 어린 부잣집 규수로만 줄리아를 대하던 그는 조금씩 줄리아를 달리 보게 된다. 파리에 도착한 마르첼로는 어렵지 않게 콰드리 교수와 약속을 잡지만 방문한 교수의 거처해서 나이차가 많이 나는 교수의 아내 안나와 만난다. 교수는 친절히 옛 제자를 맞이하면서도 몇 년 만에 갑자기 연락해온 그의 동태와 본심을 파악하기에 여념이 없다.
 
영화는 이 시점부터 첩보 스릴러의 얼개로 치밀한 심리전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콰드리 교수는 화전양면으로 마르첼로가 찾아온 목적을 캐면서도 시험과 설득을 병행한다.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하며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은사 때문에 마르첼로는 달리 원한도 없는데 암살을 실행에 옮겨야 되는지 주저하게 된다. 그런 번뇌가 꼭 교수 때문만은 아니다. 교수의 아내 안나는 줄리아와는 상반되는 매력으로 마르첼로를 사로잡는다. 남편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안나는 마르첼로의 의도를 간파하고 필사적으로 만류하려 한다. 그런 숨 막히는 긴장 가운데 두 사람은 기묘한 교감을 갖게 된다. 이 때문에 형식적 구성과 실체적 진행이 기묘하게 엇갈리게 된다.
 
그렇게 스파이 스릴러라기보다는 고도의 치정 심리극에 가까운 묘사가 이어지면서 4명의 남녀(마르첼로+콰드리+줄리아+안나)는 마치 '사지선다' 경우의 수 조합처럼 복잡 미묘한 상황에 놓인다. 감시자는 마르첼로의 우유부단함을 간파하고 그에게 채찍과 당근을 내밀며 압박하기 시작한다. 그런 가운데 이들에게 예정된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다.
 
파시즘의 마력과 전쟁의 징후를 재연하다
 
"순응자"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순응자"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일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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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응자"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일미디어


정치사회적 주제를 다루는 영화는 주제의식을 직설적으로 강경하게 내세우면 된다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29살 적 베르톨루치는 그런 함정에 빠질 생각이 없었다. 교류가 활발했던 누벨바그의 거장 장 뤽 고다르가 68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급진적 정치영화 실험에 접어들 때 베르톨루치는 정반대의 길을 택한다. 고전주의 영화의 미덕과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결합해 영화적 근본에 귀환하면서도 발언 수위는 결코 낮게 잡지 않는다. 하지만 '부드러운 직선'처럼 그런 깊은 통찰과 문제제기를 골고루 영화 속에 분산시켜 단선적인 식상함과는 결별하기에 이른다. 대신에 여러 숨겨진 장치들, 은유와 풍자를 위한 상징들을 가득히 배치해 관객의 지적 통찰을 유도한다. 그래서 처음 보고 궁금증이 생겨 영화를 곱씹을수록 더 진한 맛이 우러나온다.
 
영화는 시작부터 의미심장하다. 파시즘이 가장 먼저 권력을 획득한 이탈리아답게 이미 로마의 중심부는 파시스트 천국이 된 지 오래다. 이미 10여 년 넘게 무솔리니 세력이 지배하는 당대 이탈리아의 상황은 마치 일제강점기 시절에 조선독립운동은 몽상이라 치부되던 것과 흡사한 느낌이다. 그런 세상에 '순응'하려는 주인공이 비밀경찰 수뇌부의 직접지령을 전달받고자 정보기관 본부를 방문한다. 그가 고위간부의 집무실로 향하는 동선 묘사는 그 자체로 완벽하게 주인공 캐릭터와 파시즘의 실체에 대해 구현하려는 야심찬 시도로 기능한다.
 
파시즘은 구시대적 반동이라기 보단 현대사회의 산물이다. 근대 자유주의가 다양성과 개방성을 표방하는데 반감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혐오하거나 부정한다. 정신없이 바뀌는 시대 흐름 속에서 비판과 연대의식을 갖춘 '시민'이 아니라 골치 아프게 고민할 필요 없이 강대한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도피가 발생한다. 당대 온갖 사상을 짜깁기한 파시즘은 알맹이 없는 속빈 강정이기에 끊임없이 허상을 창조한다. 개인의 자아를 거대한 국가(혹은 민족)에 흡수하려는 시도가 거듭된다. 그런 파시즘의 속성이 도입부에서 주인공의 몇 분간의 이동과정으로 온전히 완성된다. 거기엔 그가 권력의 중심부로 접어들면서 접하는 건물 안 배경이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실용적인 측면과는 동떨어진 형태로 마치 국가권위의 현신인 양 개인을 찍어 누르려는 파시즘 건축의 형태가 시종일관 주인공의 움츠러든 어깨를 짓누르듯 이어진다. 이탈리아가 배경이지만 파시즘 체제를 공유하며 당시에 이미 종주국 이탈리아를 추월하기 시작했던 나치 독일의 공식 건축양식을 이상적으로 구현한 모양새다. 히틀러의 전속 건축가였던 알베르트 슈페어가 디자인한 히틀러 집무실로 통하는 쓸데없이 길지만 입장객을 위압하는 복도 디자인과 어찌 그리 거울 보듯 닮은꼴인지 신기하기만 하다.
 
도입부 이동 장면에서 슈페어가 떠올랐다면 이번에는 나치의 '입', 선전선동을 책임졌던 괴벨스가 등장할 타임이다. 마르첼로가 친구처럼 어울리는 파시스트 이탈로는 맹인이다. 그는 맹인 동료들과 함께 파시즘과 추축국을 예찬하는 라디오 방송과 행사를 진행한다. 말쑥한 정장에 세련된 매너를 가진 이탈로와 그의 동료들이지만 관객은 묘하게 그의 활동장면에서 기괴한 거부감을 느낄 테다. 교활한 혀로 이탈로는 파시즘을 찬양하고 그 이념을 선동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마치 보이스피싱 사기꾼들의 말이 겉보기엔 그럴싸해 보여도 차분히 짚어보면 허점투성이에 불과하다. 이탈로는 확신에 찬 메시지를 쏟아내지만 정작 그와 동료들은 세상의 진실을 볼 수 없는 존재들에 불과하다. 그런 본질을 기이한 이질감으로 가득한 장면 배경들로 구현해낸 것이다.
 
순응자의 기원과 허점을 묘사하는 사려 깊은 시선
 
"순응자"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순응자"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일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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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응자"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일미디어


마르첼로는 줄리아와 함께 파시즘이 지배하는 로마에서 파리로 향한다. 마치 유럽 전체의 수도와 같은 이 유서 깊은 도시는 우아한 동경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유럽 열강 중에서도 이류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되던 이탈리아에서 막 도착한 이들 일행은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 해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 마르첼로는 점점 임무수행의 중압감에 시달려 파리의 매혹을 누릴 틈이 없다. 하지만 남편의 고민을 알 턱이 없는 줄리아는 파리의 근사함에 매혹되어 넋을 놓을 지경이다. 줄리아가 경탄하며 마르첼로에게 함께 올라가자고 조르는 에펠탑, 그리고 그들이 그런 파리의 명물을 응시하는 전망대 풍경은 마치 좌절한 예술가에서 성공한 정치가가 되고 유럽을 거의 정복하기에 이른 히틀러가 그의 유일한 파리 행차에서 남긴 사진을 보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당도한 파리에서 부부동반으로 콰드리 교수의 집을 방문한 이들은 의도치 않게 식사와 무도회 동행에 이른다. 교수 부부의 정중한 대우에 더해서 안나의 파격적인 유혹에 줄리아는 정신을 차릴 틈이 없다. 세련된 안나는 줄리아를 리드하며 성적 터치와 함께 파리의 문화적 매력으로 그를 안내한다. 예나 지금이나 세계 패션업계를 선도하는 파리의 근사한 옷가게와 모든 게 갖춰진 무도장, 온갖 이국요리를 누릴 수 있는 식당가는 파시즘이 장악해 겉으로만 웅장할 뿐 속빈 강정이 되어가던 당대 이탈리아의 칙칙함과 극적 대비를 이룬다.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파시스트들과는 달리 거리에서 제비꽃을 팔던 여인조차 어린이들과 함께 인터내셔널의 노래를 거리낌 없이 부르는 상황에 마르첼로는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할 뿐이다.
 
이쯤에서 대체 왜 딱히 순응자를 표방하는 마르첼로가 위험을 감수하려는지 의문을 품을법하다. 그렇게 신경증까지 앓아가며 임무수행에 시달리는 마르첼로의 과거사는 플래시백으로 적재적소에 등장해 그의 캐릭터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마르첼로는 번듯한 외모와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 가문의 배경을 가졌지만 정작 그의 부친은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고 모친은 마약에 중독된 채 운전기사를 정부로 두고 있는 콩가루 집안이다. 겉으론 그럴싸해 뵈지만 마르첼로에겐 진정한 인간관계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줄리아의 집에서 결혼 준비로 예비신부 및 장모와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지만 마르첼로의 은밀한 시선은 젊은 하녀와 오가는 중이다. 자신만의 개성과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게 마련인 다른 이들과 반대로 마르첼로는 자신을 버리고 기득권 체제에 영합해 그 일원이 되는 '순응'을 통해 자신의 감춰둔 상처를 극복하려 한다.
 
그런 마르첼로의 숨겨진 과거와 그로 인해 형성된 이면은 영성체 이후 결혼을 앞두고 처음이라는 고해성사 전후로 관객에게 일정부분 공개된다. 고해신부와의 대화 과정에서 주인공이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종교적 분위기와는 무관함이 확인된다. 과거에 사회를 결속하던 종교나 질서가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시민적 연대는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맹목적으로 '국가'로 상징되는 권위에 맹종해 위세를 부리려는 마르첼로의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런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초현실적 이미지 표현과 함께 그가 어릴 적 겪었던 기이한 사건으로 점프한다.
 
예민한 청소년기에 그런 일을 겪었다면 세심한 주변의 돌봄이 필요한 게 당연할 테지만 영화 속 마르첼로의 부모는 온전히 아들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 쉽게 짐작된다. 그런 가운데 겉으론 멀쩡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주인공의 불안정한 심리구조는 그가 획득한 지식인 신분 뒤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콰드리 교수와 마르첼로의 첫 대면에서 플라톤의 동굴 비유를 언급할 때 배경으로 표현되는 시각적 그림자 구현은 지식만으로 해결 불가능한 주인공의 모순적 심리상태를 멋들어지게 은유한다. 그가 쫓는 건 결국 진실이 아니라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끝까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뭐든 해내지 못할 운명이다.
 
순응과 단물에 만족하는 가짜 지식인을 경계하라
 
"순응자"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순응자"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일미디어

"순응자"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순응자"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일미디어


갈등의 중심축을 이루던 모든 사건이 마침내 끝을 맺는다. 그리고 몇 년 후로 시간이 건너뛴 상태로 에필로그 후일담이 이어진다. 일세를 풍미하며 20년 가깝게 철권통치가 이뤄졌기에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파시스트 독재가 2차 세계대전 전세가 기울어가는 중에 어이없이 끝장난다. '두체' 무솔리니의 동상이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질 때 주인공이 취하는 태도와 마지막 표정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결국 마르첼로는 그가 '순응'해 왔던 체제가 무너지자 또 다른 '순응'적 태도를 취할 따름인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와 레지스탕스들이 목숨을 걸고 저항할 때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비웃었을 체제영합 지식인들의 서글픈 초상이다. 그런 주인공의 공허한 눈빛이 화면 가득 스크린을 마주한 관객에게로 향할 때 어쩌면 우리 역시 영화 속 마르첼로 마냥 세상을 향한 질문을 거둔 채 그저 '순응자'로 길들여진 삶을 살고 있지 않나 뜨끔하게 만든다.
 
체제에 순응하(고 단물을 얻으려)는 한 비밀경찰의 암살임무 수행과정으로 진행되는 스토리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거장들의 앙상블로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뽐낸다.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명작소설이 미래의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누수 없이 압축된 시나리오 작업으로 재탄생한 이야기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감독은 드림팀을 결성한다. 이후 감독의 대표작들은 물론 수많은 명작에서 솜씨를 뽐내며 영화 역사상 최고의 촬영감독으로 손꼽히는 비토리오 스트라로가 자연광과 조명을 조합하는 마술을 본격적으로 선보인 기념비적 작품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낙엽이 바람에 날리는 장면 연출은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 그를 모셔간 프랜시스 코폴라의 걸작 <대부>에서 온전하게 재현될 정도로 격찬을 얻은 명장면이다.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치밀한 심리 스릴러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등장인물들 사이에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인상적인 사운드트랙으로 영화를 가득 채운 명 음악감독 조르쥬 들르뤼, 그리고 배경만으로 당대 시대상을 구현해내는 빼어난 양식미를 선보인 미술감독 페르디난도 스칼피오티가 조력해 감독이 구현하고자 한 시청각 이미지를 온전히 완성한다. 왜 이 영화가 동시대는 물론 후대에까지도 수많은 명감독들에게 격찬과 영감의 원천으로 기능하는지 영화의 근사한 미장센을 보고 나면 절로 고개를 끄덕거릴 법하다. 여기에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남자배우 중 하나로 마르첼로 역을 소화한 장루이 트랭티냥과 다른 배우들의 연기 또한 캐릭터에 녹아들어 영화의 얼굴이 되어준다.

원작과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이를 세련되게 포장하는 (거장들의 협력이 절정에 달한) 조화로운 장치들 덕분에 영화가 세상에 선보인지 반세기가 넘게 지났음에도 세월의 흐름은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오히려 다들 특색 없이 비슷해 보이는 요즘 영화들 사이에서 이 현대의 고전이 뿜어내는 기운은 더 휘황하게 다가올 지경이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순응자>와 문제의식이 연결되는 후속작업들로 파헤치고자 했던 기성세대의 무책임함과 그런 시류를 초래한 복잡다단한 사회적 배경들은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는 2023년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한 울림을 가진 채 경고를 던지는 중이다.
 
<작품 정보>

순응자 The Conformist, Il Conformista
1970|이탈리아, 프랑스, 독일|드라마/스릴러
2023.06.14. 재개봉(2016.01.28. 개봉)|113분|청소년관람불가
감독/각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주연 장루이 트랭티냥(마르첼로 클레리치 역), 스테파니아 산드렐리(줄리아 역)
출연 도미니크 산다(안나 콰드리 역), 엔조 타라스치오(콰드리 교수 역),
가스톤 모스친(망가니엘로 역), 포스코 지아체띠(일 콜로넬로 역),
호세 쿠아글리오(이탈로 역), 피에르 클레멘티(리노 역),
이본 샌슨(줄리아 어머니 역), 쥬세페 아도바티(마르첼로 아버지 역)
촬영 비토리오 스토라로
음악 조르쥬 들르뤼
미술 페르디난도 스칼피오티
원작 알베르토 모라비아 「순응주의자」
수입/배급 일미디어
 
 
순응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비토리오 스토라로 알베르토 모라비아 순응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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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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