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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의 2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정유정씨(23)가 2일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유치장을 나선 정씨는 범행의 이유를 묻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래의 2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정유정씨(23)가 2일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유치장을 나선 정씨는 범행의 이유를 묻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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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 중개 앱을 통해 만난 또래 여성을 살인한 정유정(23)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여러 전문가는 정씨를 '은둔형 외톨이'라고 진단했다.

한 범죄심리학 교수는 "은둔형 외톨이 성향이 심화되면 당연히 은둔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면서 "은둔이 심화되면 망상장애가 오고, 망상이 심해지면 조현병 등 성격장애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경찰행정학 교수는 '정유정이 학창 시절 커튼 뒤에서 간식을 먹었다'는 동창생의 발언에 대해 "(정유정이) 자기 몸을 감추려고 하는 건데 상당히 큰 방어성으로 보인다. 상당히 낮은 자존감을 가진 은둔형 외톨이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경찰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5년 동안 직업이 없었다는 점, 휴대폰에 친구 연락처가 하나도 없다는 점, 뚜렷한 외부 활동 없이 범죄수사물에 심취했다는 점 등을 언밝히며 정유정을 '은둔형 외톨이'로 보았다.  
 
정유정 살인사건을 '은둔형 외톨이'와 엮어서 보도하는 언론들.
 정유정 살인사건을 '은둔형 외톨이'와 엮어서 보도하는 언론들.
ⓒ 이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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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도 정유정을 사실상 '은둔형 외톨이'로 앞다퉈 보도하기 시작했다. 한 언론은 '은둔형 외톨이 살인마가 되다'라는 매우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보도를 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며칠만에 '은둔형 외톨이'는 예비 범죄집단화를 거치며 순식간에 '무서운 아이들'로 그 성격이 전환됐다.

하지만 지난 7일 만난 김재열(47)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 대표이자 유한대 보건복지학과 교수는 언론 보도뿐 아니라 전문가들의 해석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는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첫 시민단체로 지난 2020년 발족했다. 연대에는 그동안 은둔형 외톨이를 대상으로 직·간접적 지원과 상담, 교육 연구사업을 해온 16개 단체와 개인이 참여했다. 

"정유정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말하는 분들은 대부분 경찰학이나 범죄학교수들입니다. 그분들도 물론 그쪽 분야 전문가이겠지만 그분들이 은둔형 외톨이 전문가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깊이 오랫동안 만나본 적이 없잖아요. 대부분 외국 사례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유정은 은둔형 외톨이 아니다"

김 대표는 정유정이 은둔 성향은 있지만 '은둔형 외톨이'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유정의 경우 은둔형 외톨이의 개인적 특성인 내향형, 대인관계 부재, 부정적인 시각 등을 가질 수 있지만, 자신의 욕구를 내재화하고 표현을 극소화하는 특성과 무망감에는 상충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람들이 몸이 아프면 며칠간 조용히 쉬고 싶거나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지치고 우울해 좀 쉬고 싶다거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은둔 성향'을 보이는데 그런 사람들을 다 '은둔형 외톨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

"은둔형 외톨이들은 만나보면 힘이 너무 없어요.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무기력에 빠진 친구들이 많고 무기력하기 때문에 쉬다 쉬다 쉬다 보니 은둔에 이릅니다. 그런데 정유정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계획을 사전에 치밀히 짭니다. 이미 은둔형 외톨이가 아닌 겁니다."

김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의 가장 잘 알려진 주요 성향이 주로 집에 있는 것인데, 자존감이 상당히 낮고 인지적 부조화 과정이 있어 사람들이 자신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상당히 과한 위축감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씨는) 은둔 성향이 강한 것일 뿐 이를 은둔형 외톨이라고 기정사실화해 보도하는 것은 언론과 일부 전문가들의 섣부른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 내용, 일본의 극단적 사례 가져와" 
 

김 대표는 또 "은둔형 외톨이는 무망감, 즉 '난 안 될 거야'라는 전제 아래 희망 자체를 가지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 희망이 없으니 계획도 없는 것인데 정유정은 자신의 행위로 살인이 가능하다는 가능성과 계획이 있었다"라며 재차 은둔형 외톨이는 사람을 싫어해 공격할 수 있는 예비 범죄자가 아닌 사람을 만나는 것이 미숙한 존재라고 강조했다.

"정유정 사건이 터지자 정유정을 '은둔형 외톨이'라며 일본의 히키코모리 강력범죄를 예로 들던데, 우리나라에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내용은 일본의 가장 안 좋은 사례, 극단적인 사례가 처음부터 잘못 들어온 측면이 강합니다."

김 대표는 개인적 성향이 매우 강한 일본 사례가 잘못 들어와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편견이 이번 정유정 사건을 계기로 표출된 것이라 해석한다.

"요새는 술 마시고 운전하고 폭행을 저지른 사람들의 행위를 술 때문에 저지른 우발적 실수라고 하지 않고 그 사람의 원래 성향에서 나온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정유정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유정이 은둔 성향을 가졌다고 이를 은둔형 외톨이라고 기정사실화하고 마치 이들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집단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언론의 보도가 계속 정유정을 '은둔형 외톨이'로 보도하자 은둔이 범죄로 이어진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일부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은둔이 범죄의 원인이 되긴 어렵다는 해석이다.

김 대표는 정유정을 '은둔형 외톨이'로 보도한 기자들에게 전부 이메일을 보내 정정보도를 요구했지만 아직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왜 언론들은 검증없이 정유정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앞장서 보도했을까?

"선생님, 우리가 사이코패스고 잠재적 범죄자예요?"

김재열 대표와 연락을 주고 받는다는 한 '은둔형 외톨이' 청년의 질문이라며 김 대표가 들려준 말이 내내 가슴을 맴돌았다.

태그:#은둔형 외톨이, #정유정, #은둔,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 #김재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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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와 대학원에서 모두 NGO정책을 전공했다.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았다. 이후 한겨레 전문필진과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지금은 오마이뉴스와 시민사회신문, 인터넷저널을 비롯,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기사 및 칼럼을 주로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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