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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에 피어있는 토끼풀꽃으로 아내에게 꽃팔찌를 만들어주었다.
▲ 꽃팔찌 지천에 피어있는 토끼풀꽃으로 아내에게 꽃팔찌를 만들어주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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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는 34년 전, 아내는 스물 여섯이고 나는 스물 여덟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인데 그때는 그 나이가 결혼 적령기라고 여겨졌고, 대체로 친구들도 그 즈음에 결혼을 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네

나의 직업이 변변치 않아 전세금을 올려줄 형편이 안 되어 이년 정도 둘만의 짧은 신혼생활을 마치고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어머니는 8년 전에, 아버님은 6년 전에 이 땅의 삶을 마치고 안식하셨으니 아내는 거의 20년 넘게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던 것이다. 그 사이 아이들도 셋을 키웠다. 34년 동안 아이 셋을 키워 결혼도 시켰고, 막내가 이제 대학생활 막바지에 접어들었으니 아내나 나나 그런대로 잘 살았다.

그렇게 아이들과 부모님과 이런저런 일들에 마음을 쓰고 사는 동안, 아내와 남편은 서로 사랑하겠거니 생각하면서 서로에 대해 익숙함이라는 굴레에 빠져 서로의 헌신과 봉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았던 것 같다.

아버님 추모 6주기를 맞아 선산을 갔을 때 주변에는 찔레꽃, 애기똥풀, 가시엉겅퀴, 조뱅이, 붓꽃, 토끼풀꽃이 지천이었다. 추모행사를 마치고 산책하는 길에 토끼풀꽃을 뜯어 아내에게 꽃팔찌를 만들어 주었다.

토끼풀꽃으로 꽃팔찌를 만드는 순서는 이렇다. 먼저 꽃을 줄기와 함께 길게 한 줌 정도 뽑는다. 그 다음에 상대방 손목에 꽃송이를 올려놓고 세 갈래로 나눠서 머리따듯 묶어주면 된다.

꽃을 묶을 때는 상대방이 꽃송이가 나에게 딸려오지 않도록 잡아주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꽃팔찌를 만들어주려면 서로의 손길을 느낄 수밖에 없다. 꽃팔찌나 꽃반지를 만들어주다보면, 자연스럽게 스킨십이 되면서 서로의 따스한 손을 스치고, 느낄 수밖에 없다.
 
토끼풀과 꽃
▲ 토끼풀 토끼풀과 꽃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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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아름답고 앞으로도 아름답다

아내의 손은 작았고, 거칠어졌고, 젊은 그 시절의 보드라운 손이 아니었다. 그 작은 손으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 셋을 키우고, 매일매일 삼식이 남편 밥차려 주고, 살림을 다했구나 생각하니 애처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아이고, 이 작은 손으로 고생이 많았네. 이제 당신 손도 쪼글쪼글 할망구 손이 되었구만. 그래도 젊은 처자들 손 못지 않게 아름답네. 고마워. 당신 덕분에 어머님 아버님도 행복하셨고, 아이들도 잘 컸고, 나도 잘 늙었어."

꽃팔찌를 만들어주고, 기념사진 찍고, 추모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꽃팔찌를 벌써 잊었는데 아내는 꽃팔찌를 풀어 종이상자 안에 담아두었다. 금팔찌도 아닌데, 아내는 잘 말려서 오늘을 기억하겠단다.

어느새 34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러갔을까? 이제 또 십 년, 이십 년도 금방 가겠지. 그 즈음이면 귀천준비를 하며 노년의 마지막 삶을 살아가고 있을 터이다. 그 시간 아내와 같이 아름답던 시간들을 떠올릴 때 꽃팔찌를 만들어주던 일도 끼워져 있을 것 같다.

팔순이 넘은 황동규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또 하나의 가을이 가고 있군' 하며 또 한 살 더 먹어야 하는 노구를 돌아본다.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잎! 할 때 누가 검푸른 잎을 떠올리겠는가!'라며, 나뭇잎은 떨어지기 직전 결사적으로 아름답다고 노래한다.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지만, 아내와 처음 만났던 청춘의 시절도 아름다웠지만,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고, 앞으로 20년 뒤에도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다. 모든 때는 아름다운 법이니까.

태그:#꽃팔찌, #거친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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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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