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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르겐프리스크(morgenfrisk)'을 느끼셨나요? 아니면 '에코타(gökotta)'하셨는지? 아니면 오늘 당신의 이키가이(生き甲斐)는? 이게 뭔 말인가 싶겠다. '모르겐프리스크'는 덴마크어로, 잘 자고 일어난 새벽에 느끼는 상쾌하고 청량한 기분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에코타'는 스웨덴어로 '이른 아침 뻐꾸기 소리란 뜻으로,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 일본어 이키가이는 생명을 뜻하는 이키와 목적을 뜻하는 가이가 합쳐진 단어로, 매일 아침 당신을 눈뜨게 하는 의미란 뜻이다.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 책 읽는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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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소한 '언어'들은 마리아 이바시키나의 그림책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마리아는 러시아 모스크바 출신으로 독립출판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이 책으로 상하이 국제 아동도서전 황금바람개비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세상 모든 언어에는 복잡한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들이 있어요.'

정말 그렇다. 중학교, 아니 요즘은 거의 유치원부터 영어를 배우는 우리나라, 영어에 꽤나 익숙한 문화권이라 자부할 수 있는데 '스트라이크히도니아'(strikehedonia)란 말이 신선하다. 일을 다 끝마쳐서 더는 그 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이란 뜻이란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스트라이크히도니아란 단어가 신선한 게 아니라, 일을 다 끝마쳐서 더는 그 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이란 '감정'이 신선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일을 마치는 것에 연연하느라, 미처 그 기쁨까지 누리지 못하고 사는 건 아닐까... 이 단어를 보며 되돌이켜 생각해 보게 되니까 말이다.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 책 읽는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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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은 영국으로 부터 시작해서 독일, 그리스, 덴마크..... 이집트, 인도,....중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그린 17개국의 풍광을 배경으로 그 나라의 단어들을 수집해 놓은 책이다. 때로는 바닷가로, 거리로, 혹은 수족관으로 수채화로 그려진 그림들은 단정하게 박힌 까만 단어들을 돋보이게 만드는 아련한 배경이 된다. 

이집트, 어둠이 내린 거리에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들. 두런두런, 마치 그들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한데, 사마르(سَمَر), 해가 저물고 나서도 한참 지난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란다. 그 장면, 그 단어만으로도 오래 전 골목길, 교정...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네덜란드는 어떨까? 석양이 드리운 듯 장밋빛으로 물든 운하의 다리 위에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아이 셋을 앞에 태우고 지나가는 아버지, 거기에 헤젤리흐(gezellig)란 단어가 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만들어 내는 감각, 자신보다 더 굉장한 것에 속해 있다는 기분, 함께 하는 시간의 즐거움이란 게 자신보다 더 굉장한 것에 속해 있다는 기분이구나! 또 이렇게 새삼 발견하게 된다.

스웨덴 말에 스물트론스텔레smultronställe)는 딸기밭이란 단어다. 딸기밭이 어때서? 그런데 이 딸기밭은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거나 혼자 있고 싶을 때 찾는 곳을 말한다니, 나의 딸기밭은 어딜까, 이렇게 생각은 흘러간다.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은 묘하다. 작가가 찾아낸 17개 나라의 풍경에, 몇몇 단어와 그 뜻들을 더해놓은 단촐한 그림책임에도, 한 장 한 장 넘기는 순간에 많은 상념들이 오간다. 여러 나라의 단어들을 모아놓은 만큼 그림책은 기승전결의 스토리 라인이 없는데도, 한 나라에서 찾은 단어들은 또 다른 나라의 풍광과 단어들을 만나, 나의 이야기가 된다. 

표지에 노년의 두 남녀가 바닷가에 앉아 있다. 그리곤 카푸네(cafuné)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빗어 내리는 일, 노르웨이에는 포켈스케트(forelsket)가 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느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란다.

인도의 '나즈'란 단어가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자부심과 자신감이라면, 그 옆에 사랑, 헤어지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는 것이란 '비라하'가 있다.

그리고 다시 포르투갈, 사우다드(saudade) 깊이 사랑했지만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렸거나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한 찬란한 슬픔을 넘어, 파아란 수족관 속 우웨이(無为), 구름은 언제 비를 뿌릴지 정하지 않는다. 그저 물로 가득 채워질 때를 기다릴 뿐, 그저 순리대로 살다보면 삶의 한 사이클이 도는 셈인가.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 책 읽는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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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그 감정들이 살아숨쉴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감정들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즐길 수 있도록 말이지요.

<감정 어휘>를 쓴 유선경 작가는 '인간은 감정이 전부'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자기 감정에, 자기 마음에 종종 길을 잃는다고 한다.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를 억누르며 살기도 하고, 종종 자신의 감정을 오독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이라는 책의 제목은 절묘하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지나온 감정들이, 내 안의 마음들이 읽혀진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시간들의 의미를 짚어보게 된다. 읽다보면 저절로 내 마음이 머무는 단어들이 떠오른다. 

고모레비(木漏れ日).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그 햇살을 바라보며 느끼는 행복, 황사 속에서도 꽃이 지기가 무섭게 파릇파릇 녹음을 빛내는 5월의 나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 감사할 일이다 싶다.

그리스어의 볼타(Βολτα). 목적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서 들려오는 소리와 풍경을 즐기는 일은 어떤가? 덴마크의 아르바이스글라에데(arbejglaede; 남들이 얼마나 우러러 보는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는 것)와 이집트의 루칸(어떤 일을 서두르지 않고 즐기면서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뿌듯한 마음)에 이르면 지금 나는 어디쯤 있는지 가늠해보게 된다. 

사는 게 녹록하기만 할까. 독일어 토아슈루스파니크(torschlusspanik)처럼 잃어버린 기회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은 만국공통이다. 그래도 바실란도(vacilando;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보다 그 여정이 더 중요하다)란다.

17개국의 언어를 통해 마리아 이바시키나가 하고픈 말은 무얼까?  때론 후회하고, 때론 주저앉아도, 비비르 알 디아(스페인어  vivir al dia)!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지금, 오늘에 충실하기!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울기! 지금 여기, 나의 시간을 아끼고 사랑하자는 말이 아닐까.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마리야 이바시키나 (지은이), 김지은 (옮긴이), 책읽는곰(2022)


태그:#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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