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외딴 습지에서 십수 년 동안 혼자 산 소녀가 있다. 일명 '습지 소녀'다.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이 소녀가 살해 혐의로 재판받는 과정을 배경으로 간간이 그의 일생을 보여주는 형태로 전개된다. 표면상 '법정 영화'이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꼭 그렇진 않다. 자연 속에 살며 동식물들에게 배우고 그들과 벗하며 살다가 마침내 스스로 습지 또는 깃털이 된 여인 이야기다. 
 
주인공 카야(데이지 에드가 분)는 어릴 적 부모님, 언니 둘과 오빠 두 명(머피와 조디)과 함께 살았다. 이들 가족은 수만 평에 이르는 호젓한 습지에 집을 짓고 살아간다. 엄마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며 그림을 즐겨 그렸고 카야도 엄마를 따라 그림을 그리곤 한다. 이때 엄마 어깨너머로 배운 그림 솜씨를 바탕으로 훗날 카야는 습지 동식물 세밀화 작가로 성장하였을 것이다.   
 
그림 그리는 카야와 엄마 집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카야와 엄마

▲ 그림 그리는 카야와 엄마 집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카야와 엄마 ⓒ 넷플릭스

 

아빠는 멋진 습지에서 고기를 잡고, 엄마는 그림을 그리는 취미를 지닌 집. 누가봐도 한 폭의 풍경화처럼 평화롭고 다복해 보인다. 그런데 한 꺼풀 벗겨 보면 그게 아니다. 카야 부친은 아내와 자녀들에게 폭군으로 군림하였다. 아내와 자녀를 때리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근처에 사는 테이트란 소녀는 카야의 오빠 조디의 친구다. 그가 조디와 낚시를 함께 하고자 그 집에 들렀을 때, 카야 아빠는 딸 카야가 자신의 배에서 놀았다는 이유만으로 뺨을 때렸다.  
 
이 장면을 본 소년 테이트는 "때리지 말라"며 카야 아빠를 힘껏 밀쳐 넘어 뜨린다. 소년으로선 무척 용감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카야는 "우리 아빠에게 그러지 마라"며 되레 아빠를 두둔한다. 어쩌면 이때 카야와 테이트는 운명적으로 하나로 묶였는지 모르겠다. 폭력에 견디다 못한 카야 엄마와 큰 오빠, 언니들, 작은 오빠 조디까지 모두 집을 떠나고 만다. 여기서 좀 이해하기 힘든 사실은 왜 모두 막내 '카야'를 데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는 거다. 별 수 없이 카야는 아빠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자 조심하며 지낸다. 모두 떠나자 아빠는 카야에게 잘 대해주었다. 
 
이 영화는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아빠가 어느 날 카야를 데리고 시내 상점에 들렀을 때 주인 점핀이 카야에게 관심을 보이자 딸에게 "사람들과 엮이지 마라. 좋을 게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을 보면 그가 왜 가족을 데리고 외진 습지에 들어가 살았으며, 카야가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학교조차 보내지 않았는지 유추할 수 있다. 
 
카야 엄마는 딸을 데려 가고자 편지를 보냈다. 편지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편지를 읽은 카야 아빠는 불 같이 화를 내며 편지를 비롯해 카야 엄마의 옷가지 등을 모두 태워버린다. 그 뒤 카야 아빠도 집을 훌쩍 떠났다. 어린 카야는 아무도 없는 집을 지키며 혼자 살았다. 카야를 유일하게 돌봐준 분들은 흑인인 상점 주인 점핀 부부였다. 그들은 카야가 가져오는 홍합을 구매해 주며 그가 생계를 잇게 돕는다. 
  
돌아온 흰기러기떼 카야와 테이트가 다시 돌아온 흰기러기떼를 경이롭게 바라본다

▲ 돌아온 흰기러기떼 카야와 테이트가 다시 돌아온 흰기러기떼를 경이롭게 바라본다 ⓒ 넷플릭스

 
카야가 처녀로 성장하였을 때, 오빠 조디의 친구였던 테이트가 그에게 관심을 보이며 접근한다. 테이트는 늘 카야를 배려하며 그 숨은 재능을 발휘하도록 힘껏 돕는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한 주에 세 차례나 카야를 만나 글쓰기와 독서를 지도하였다. 둘은 연인관계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그 꿈 같이 행복한 시절도 잠시였다.

테이트는 부친의 기대와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던지 "독립기념일에 꼭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학업을 위해 떠난다.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편지 한 장도 보내지 않았다. 카야의 실망이 커졌다. 
 
카야와 앤드류스 습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카야와 앤드류스

▲ 카야와 앤드류스 습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카야와 앤드류스 ⓒ 넷

 
 
이즈음 근처 소문난 바람둥이 앤드류스가 카야에게 접근하고 카야는 그와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앤드류스에게는 약혼녀가 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은 안 카야는 앤드류스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러자 앤드류스는 카야의 빈집에 들어가 카야가 정성스레 그린 그림들을 훼손하는 짓까지 벌이며 카야에게 집착한다. 그 과정에서 카야를 강간하려다 큰 충돌을 빚는다.

뒤늦게 생물학 관련 연구원이 되어 돌아온 테이트는 앤드류스의 행태에 크게 화를 낸다. 테이트는 카야와의 관계 회복을 원했지만, 카야는 "이제 와서 날더러 어쩌라는 거냐?"며 뿌리친다. 얼마 뒤 엔드류스는 습지 전망대 밑으로 떨어져 사망하였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테이트는 용의 선상에 오르지 않는다. 대신 카야가 유력한 살해 용의자가 되어 지루한 재판을 받는다. 카야의 변호인은 '톰 밀턴'이란 사람이다. 그는 카야가 어린시절 대낮에 맨발로 시내를 배회할 때, "네가 있어야 할 곳은 학교란다. 너는 배울 권리가 있어. 학교에 가 봐라"고 안내해 준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도 카야를 옹호하지 않는 상황에 그를 돕고자 자진해 변호에 나섰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인권 변호사다. 밀턴의 훌륭한 변호로 결국 카야는 무죄 판결을 얻는다. 이후 카야와 테이트는 결혼하여 습지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다가 카야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 
 
그러면 진짜 살해범은 누구였을까? 카야는 앤드류스가 사망한 날, 출판사 계약을 위해 버스를 타고 멀리 출타해 호텔에 머물렀다. 알리바이가 분명히 있다. 기이하게도 앤드류스가 사망한 곳에는 다른 사람 발자국도 없는 상태다. 범인을 카야로 지목할만한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앤드류스가 애지중지하던 목걸이가 사라졌다. 그 목걸이는 카야가 선물한 희귀 조개 목걸이였다. 테이트는 아내 카야가 죽은 뒤 그녀의 낡은 책 속에서 앤드류스의 목걸이를 발견한다.
 
영화 속에서 카야는 전망대 발판 하나가 약간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앤드류스와 둘이서 전망대에 처음 올랐을 때 그 발판을 바로잡아 조심스레 딛는 장면도 있다. 카야는 자연에서 배운 이치를 삶으로 실천하며 사는 데 익숙한 여인이었다. 그녀가 앤드류스를 직접 살해하진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를 죽음으로 유도한듯 보인다. 그렇게 카야는 폭력으로부터 자신과 삶터인 습지를 지켜낸 것이다.
  
발지국 지우는 카야 테이트와 밀회를 하고자 발자국을 지우는 카야

▲ 발지국 지우는 카야 테이트와 밀회를 하고자 발자국을 지우는 카야 ⓒ 넷플릭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뉴스>에도 싣습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습지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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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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