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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그간 긴 가뭄으로 인하여 대지가 메마른 것은 물론 건조한 날씨 탓에 피해가 잇따랐다. 봄꽃 만발한 임야 15ha를 태운 인왕산 산불은 1986년 통계 작성 이후 서울시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이었다. 홍성에서는 천년 고찰 고산사를 위협하며 사흘 동안 가축, 주택, 공장 1500ha를 태우는 등 크고 작은 산불이 이어졌다.

이렇게 건조한 대지에 내리는 비는 그냥 봄비가 아니라 그야말로 단비이며 약비다. 이 비로 인해 매일 아침에 하는 천변 운동은 포기해야 했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이렇게 비가 내리는 것이 그저 반갑고 감사하다.

운동을 대신하여 그 시간 도림천을 열심히 걷다보니 신대방역 근처 산책길 한 쪽에 자전거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트랙을 그려 놓은 자전거 교육장이 보였다. 사실 내가 어렸을 때는 자전거를 탄다는 건 특별히 따로 배울 게 없는 기술이었다. 나는 워낙 겁이 많아 시도하지 못했지만 아버지나 오빠가 뒤에서 잡아주고 몇 번 넘어지는 과정을 거치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 슬며시 손을 놔 버리면 잠시 비틀대다 타게 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전거 교육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배우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움직이는 자전거가 아니라 서 있는 상태에서 계속 페달을 밟고 있는 것이었다. 교육하는 강사 선생님께 물으니 한달 코스의 교육 중에 일주일 동안은 중심을 잡기 위해 서 있는 자전거에서 페달 밟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자전거를 배우는 사람들
 자전거를 배우는 사람들
ⓒ 홍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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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가 배울 때도 처음엔 자전거는 잡아보지도 못하고 이론 공부를 하고 또 며칠은 계속 끌고 다니는 연습을 했다고 들었다. 무슨 자전거를 그렇게 거하게 가르치나 했더니 중년 이상의 연령층이 자전거를 배울 때는 부상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렇게 체계적인 기초 연습을 철저히 하는가 보다.

연세가 꽤 있으신 분도 배우시길래 무섭지 않느냐고 여쭈니 무섭기는 하지만 걷는 데보다 더 멀리 다니고 싶어서 큰 결심을 하고 나오셨다고 한다. 젊은 사람도 새로운 걸 배우려면 걱정과 망설임이 앞서는데 데 여기에 나오시기까지 얼마나 용기가 필요하셨을까? 그 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잘 배워서 더 멀리 자유롭게 다니실 수 있길 바란다. 이참에 나도 시간과 용기를 내 꼭 자전거를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 어른을 보며 이웃의 한 할머니가 생각났다. 이 분은 평생을 문맹으로 살다가 성경을 읽고 싶어서 노년에야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시간이 힘든 것보다 성경 읽기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훨씬 커서, 또 하나하나 글자를 알아가는 즐거움에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하시더니 지금은 서툰 글씨로 편지를 써서 사람들을 전도한다. 참 대단한 분이다.
 
갓 부화해 조심스레 물 속으로 들어가는 아기오리들
 갓 부화해 조심스레 물 속으로 들어가는 아기오리들
ⓒ 홍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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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봄비는 내리는데 아기오리 둘이 비내리는 물 속에서 사이좋게 장난을 치며 노는 모습이 보인다. 며칠 전에는 부화해서 처음 물 속에 나왔는지 예닐곱 마리가 조심조심 물 속으로 기어가는 모습이 귀엽고 신기해 한참동안 바라보았었다.
 
어느새 수영이 등숙해진 아기오리 두 마리
 어느새 수영이 등숙해진 아기오리 두 마리
ⓒ 홍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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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든, 동물이든 탄생 직후의 급속 성장기인지 며칠새 수영이 많이 늘었다. 다른 녀석들은 어디로 갔는지 따로 떨어져 노는 두 마리 아기오리가 자유자재로 회전을 하며 여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이 아침, 운동을 방해한 단비 덕분에 또 다른 일상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한 가지를 포기하면 또 다른 무엇을 얻게 되는 게 진리다. 틀어진 상황에 연연하지 않고 생각을 바꿔 받아들이면 오히려 더 좋은 무언가를 얻는 결과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긍정의 효과가 아닐까? 이 긍정의 힘으로 힘찬 일과를 시작하는 오늘이 참 즐겁고 감사하다.

태그:#도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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