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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4월 11일 오후 1시 51분]

기후위기는 노동자 건강에도 훌쩍 다가왔다. 대표적인 것이 열사병, 열탈진 등 열관련 질환이다. 고온에 노출된 인체가 체온 조절 기능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 옥외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 이동 노동자, 농업노동자, 운송노동자 등이 여름철 고온에 노출되기 쉬운데, 기후 변화와 함께 고온 노출 상황이 빈번해지고 있다. 고온 노출은 직접적인 열성 질환으로 인한 건강 영향뿐 아니라, 피로도를 높이고 집중력을 저하시켜 작업 중 사고나 부상 위험을 높일 수도 있다. 앞으로 이런 고온 노출의 간접적 영향도 더 연구돼야 한다.

열 관련 질환자 중 실내에서 발생한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여름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에어컨 설치 및 적정 실내 온도 유지를 요구하며 투쟁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쿠팡 노조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물류센터 평균 온도는 31.2℃, 습도는 59.48%이다. 쿠팡 사측은 물류센터 층마다 에어컨이 있는 휴게실이 있고 대형 천장 실링팬도 설치돼 있다고 반박했지만, 노동자들은 "사실상 휴게실에서 쉴 시간이 없는데 휴게실에 에어컨이 있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했다.1) 더위와 싸우며 일하는 마트 매장의 피킹 노동자 역시 지난여름 "에어컨도 없이 대형 선풍기 두 대 놓고 물건을 패킹하다보면 일하기 힘들 정도로 땀이 흐른다. 동료 노동자 한 명이 쓰러졌는데, 더위 먹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말했다.

응급/구급대원, 소방관 등 극단적인 기후 사건에 대응해야 하는 응급 요원들의 건강 문제도 기후위기와 관련한 중요한 직업건강 주제다. 소방관이나 산불재난특수진화대 노동자 등 산불 진화에 나서는 노동자들은 무거운 장비와 보호구 사용으로 신체 부담이 매우 높은 작업을, 집중적인 장시간 수행하면서 과로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 산불 진화 과정에서 VOC(휘발성 유기 화합물) 등 유해 물질이나 호흡기 자극 물질 등에 노출될 수 있고, 근골격계질환이나 크고 작은 부상 위험도 높다. 갑작스런 폭우 이후 상황에 대응하는 경우에는 감염병이나 피부병 등에 노출될 수 있다. 피해자 혹은 피해 동물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나 트라우마에 노출될 가능성 역시 높다.
 
기후위기 당사자인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위험 노동 시 작업중지권, 노동시간 단축이다. 4월 14일 노동자들이 세종에 모여 투쟁을 벌인다.
 기후위기 당사자인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위험 노동 시 작업중지권, 노동시간 단축이다. 4월 14일 노동자들이 세종에 모여 투쟁을 벌인다.
ⓒ 기후정의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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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얼굴의 기후위기, 작업중지권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하나하나 대응하는 방식으로는 기후위기에 맞서 노동자의 건강을 제대로 돌볼 수가 없다. 기후위기의 영향은 늘 우리의 예측을 벗어난 방향과 크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기후위기 시대에 노동자 건강을 지키기 위한 열쇳말 중 하나가 작업중지권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작업중지권은 산재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에야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 쉽지만, 추위든 폭우든, 기후위기로 인한 다양한 위험 상황에서도 사용될 수 있고 사용되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유사한 사례가 있다. 노동자 7명이 작업장 기온이 너무 낮아 이에 항의하기 위해 작업장을 이탈한 사건이 있었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징계하자 미국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판결했다. 1962년의 일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3월 16일 인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으로 인양 중이던 2톤짜리 갱폼이 바람에 날려 타워크레인 조종석 앞 유리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사고 당시 작업 중지 기준 초속 15m/s에 미치지 않는 평균 3.2m/s의 바람이 불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 원청의 해명이지만, 노동자들은 당시 현장에서 평균 풍속과 무관하게 순간적인 '돌풍'이 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조합 탄압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위험 작업을 거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국건설노조 박세중 노동안전보건부장은 "현재 산안법 상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보장된다고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현장에서 '오늘은 작업하기 위험하다'는 얘기를 노동자가 먼저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판단을 존중하고, 노동자가 작업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인식 전환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변화는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위험이 더 잦아질 기후위기 시기에 더 중요해질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 기후정의의 요구

기존의 기후정의 운동에서 얘기되는 노동 관련 주제 중 대표적인 것이 노동시간 단축이다. 적게 일하는 것은 노동 과정의 일부로 사용되는 자원의 절대적인 양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 지출' 순환에 따라오는 탄소 집약적인 소비 양도 감소시킨다.

새벽같이 출근하고 늦은 밤 퇴근하면, 요리하기 피곤하니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상적인 경험에서 보듯, 긴 노동시간은 탄소 발자국이 높은 소비로도 이어지기 때문이다.2) 기후정의 측면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자유시간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었던 노동시간 단축 투쟁이 사회정의, 환경정의를 위한 투쟁이라고, 지구와 우리의 미래를 구하기 위해 적게 일하자고 주장한다.

영국의 환경단체 '플랫폼 런던'은 영국이 주 4일 근무제로 전환하면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연간 1억 2700만 톤을 줄일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3) 주 4일제 전환에 따른 출퇴근 자동차 운행 거리 감소와 하루 근무 감소로 인한 사무실 조명, 엘리베이터나 냉난방비 등 전력 소비량 감소 등을 염두에 둔 계산이다. 이는 영국의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21.3%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노동시간이 감소하면 경제적 산출량과 소비 패턴의 생태학적 압력을 감소시켜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들이 이미 꽤 있다. OECD 29개 나라의 1970년부터 2007년까지 자료를 이용해 노동시간과 생태학적 발자국, 탄소발자국, 이산화탄소 배출 양을 살펴본 연구에서는 긴 노동시간이 다른 요소들을 보정하고도 생태학적 압력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 목표 중 하나로 '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4)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노동시간 단축 운동이 기후정의 측면에서 얘기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주 52시간 연장근로 상한제마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의 장시간 노동 문제와 기후정의와의 연계는 너무 멀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단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10년 넘게 월 2회 공휴일을 원칙으로 하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제가 윤석열 정부 들어 흔들리고 있다. 의무 휴업일을 주말에서 평일로 바꾸려는 시도가 대구시, 청주시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에 맞서 일요일 의무 휴업일을 지키려는 서비스 노동자들은 오히려 의무 휴업을 백화점이나 쇼핑몰 등 대형 유통업 전체로 확대하고, 무점포 소매업을 중심으로 해서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야간 유통업 전반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앞서 말한 '적게 일해서 우리의 미래와 지구를 구하자'는 구호의 구체적인 실천이다.

대형 마트의 주말 의무 휴업을 평일로 옮기거나 야간 영업시간 제한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은 노동시간을 늘리고,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시스템을 강화하며, 소비를 촉진하려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마트산업노동조합 배준경 정책국장은 "조합원들도 의무휴업일 변경을 막는 것이 기후위기와도 관련있다는 설명을 반가워하고, 적극적으로 의미 부여하고자 한다"며, "앞으로 노동자들의 쉴 권리 문제를 함께 나누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는 말 그대로 인류의 생존 기반을 침식한다.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거의 모든 과제가 기후위기와 연결되어 있다. 특히 고삐 풀린 자본에 맞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키려는 노동자 건강권 운동은, 지구와 생태계를 수탈하며 이윤을 축적해 온 자본에 제동을 건다는 점에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4월, 노동자 건강권의 목소리로 기후정의를 함께 외치자.

1) 경향신문, 2022.7.24., 쿠팡 노동자들 "찜통인 물류센터, 에어컨 설치 요구는 '인권' 문제"... 쿠팡 "노조 주장은 거짓" 맞불
2) 월 스트런지, 카일 루이스, 오버타임, 시프 2021
3) 김하종 기자, 플래닛 타임즈, 적게 일하고 기후위기도 해결하자, 2021.10.25.
4) Knight, Rosa, Schor. Could working less reduce pressures on the environment? A cross-national panel analysis of OECD countries, 1970-2007. Global Environmental Change, 23(4) 2013.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민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이자 직업환경의학전문의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4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기후정의_노동자건강, #노동자_작업중지권, #노동시간_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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