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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쯤이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 회사에서 봄맞이 당일 워크숍을 갔다. 장소는 한 대형 동물원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자주 놀러 갔던 곳인데 어느 순간 발길이 뜸해졌었다.

간만에 가는 길이 설렜다. 도착해서 2시간 정도 자유시간이 있었다. 평소 친한 동료들과 함께 구경하던 중 호랑이 관에 도착했다.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우리 바로 앞에서 계속 어슬렁거렸다. 처음엔 거대한 모습에 기가 눌려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런데 조금 관찰하다 보니 이상 증후가 보였다.
 
동물원의 호랑이(기사 속 언급된 동물원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료사진임을 밝힙니다).
 동물원의 호랑이(기사 속 언급된 동물원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료사진임을 밝힙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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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리, 호랑이가 조금 이상하지 않아?"
"과장님도 느끼셨구나. 눈에 초점도 없고 같은 길을 계속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하네요."
"그거 정형행동이잖아. 갇힌 동물들이 이상행동을 하는 거야."


평소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한 최 과장은 자세히 설명을 해줬다. 정형행동은 극단적으로 좁은 공간에 놓인 동물원 동물들이 흔히 보이는 행동으로 곰과 동물의 경우 몸을 흔들거나 같은 자리에서 뱅뱅 돌거나 심지어 자기 배설물까지 먹는다고 했다. 호랑이, 사자 등 고양잇과 동물과 늑대 같은 갯과 동물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끊임없이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설명을 듣고부터 호랑이가 무섭기보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쯤 넓은 자연 속에서 뛰어다녀야 할 때 우리에 갇혀 얼마나 스트레스가 컸을지. 그 뒤부터 동물을 본다는 행동 자체가 죄스럽게 다가왔다. 심심치 않게 뉴스나 기사로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의 열악한 처우를 보긴 했었는데, 직접 마주하고 실감이 났다. 내내 무거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얼룩말 세로의 탈출 뒤에 담긴 안타까운 상황들
 
지난 3월 30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서 얼룩말 '세로'가 방사장을 거닐고 있다. 세로는 지난 3월 23일 오후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서 우리를 부수고 탈출해 서울 시내를 활보하다 붙잡혀 3시간여만에 돌아왔다.
 지난 3월 30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서 얼룩말 '세로'가 방사장을 거닐고 있다. 세로는 지난 3월 23일 오후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서 우리를 부수고 탈출해 서울 시내를 활보하다 붙잡혀 3시간여만에 돌아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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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뉴스를 읽는데 얼룩말이 동물원을 탈출해 도심지를 거닌다는 내용이었다. 첨부된 사진에는 정말 얼룩말이 시내 곳곳에서 발견됐다. 별일 다 있다고 생각했는데, 몇 시간 뒤 붙잡혀 원래 있던 동물원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어지는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니 이제 세 살인 세로는 태어난 지 2년 만에 부모를 잃고 외로움과 우울증이 심하여 옆집 캥거루와도 싸움이 잦았다고 했다. 그런 이유가 모여 울타리 넘어 탈출했다면서 딱한 사연을 다뤘다. 나 역시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몇몇 기사들이 불편했다. 동물을 의인화시켜 인간처럼 우울하다는 관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거나, 얼룩말 자체가 성격이 민감하고 난폭해서 주변 동물들과 자주 갈등을 벌인다는 둥 탈출의 원인을 얼룩말에게 돌리는 듯한 인상이 들었다. 심지어 여전히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임에도 오히려 화제가 돼 동물원의 스타로 칭송받으며 많은 관람객이 보러 간다고 한다.

하긴 낯선 타인의 삶을 엿보고픈 열망의 결정체인 소셜미디어가 극도로 발달한 요즘 세태를 보더라도 인간이 가진 관음증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지 알 수 있다. 불과 19세기 초 만해도 미국에서는 세계 박람회란 이름으로 필리핀의 소수민족인 이고로트족을 전시했고, 일본도 박물관박람회 등에서 조선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을 전시해서 하루에 1000명 이상이 방문했다고 한다. 
 
1904년 세계박람회에 전시된 이고로트 족의 모습.
 1904년 세계박람회에 전시된 이고로트 족의 모습.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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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의 불행으로 누군가에게는 득이 되는 상황이 그렇지만, 그나마 이런 관심이 처우를 개선할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동물원의 사육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고, 동물원의 존속 필요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현시점에서 동물원 자체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동물원 측은 홀로 남은 세로를 위해 내년에 암컷을 들여와 합사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물론 고심해서 생각한 방법이겠지만 무리 지어 생활하는 얼룩말 특성을 고려할 때 적절한 대안인지는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나무 울타리가 부실해서 일어난 사건이라 울타리 높이도 올리고, 철제로 교체한다는데 환경 자체가 더욱 갑갑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세로처럼 동물원에 갇힌 동물에게 가장 좋은 대안은 무엇인지 고민에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동물복지는 이제 세계적인 추세

지난해 말 '동물원·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앞으로 보유 동물 종별 서식 환경도 고려해야 하고, 전문 인력을 갖춰 안전관리계획도 세워야 한다. 더불어 전시 동물 체험행사도 제한하는 하위 법령도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동물복지의 중요성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여가는 분위기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그릇된 생각에서 벗어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법률도 제정되고 우리도 이제 그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로 세로로 인하여 불거진 관심이 사그라지지 말고 더욱 커지길 바란다. 어느 동물 하나의 일탈로 볼 것이 아니라 동물 개개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처우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더불어 동물원 존립 자체에 관해서도 심도 있게 들여다보면 좋겠다.

주말에 가족들과 외식했다. 그 자리에서 여름휴가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엔 코로나19로 가지 못했던 해외를 가기로 정했다. 장소는 태국이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던 중 아내가 말을 꺼냈다.

"나는 태국에 가더라도 절대 코끼리를 타지 않을 거야."
"엄마, 사람들이 왜 코끼리를 타?"
 

그때부터 아내와 나는 아이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일종의 관광상품인데 코끼리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어릴 때부터 어미에게 떨어뜨려 복종훈련이라는 명복 하에 잔인한 학대를 일삼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깜짝 놀라며 자기도 절대 타지 않겠다고 했다.

아이세대부터 올바른 교육을 해야 바른 의식이 자리잡혀 나중에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모두가 합심해서 노력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 만들어지리라.

세로가 더는 슬프지 않고 활짝 웃는 그날이 다가오길 마음속 깊이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태그:#동물원, #정형행동, #세로탈출, #동물복지, #동물원수족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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