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잊혀진 이름 이병제, 김아무개 또 박아무개 / 그렇게 그리운 이름 하나, 하나씩 불러주오 / 그 부름이 그 애절한 부름들이 / 우리가 쓰러져갔던 차디찬 밤의 / 하룻날로 돌아가 / 비로소 우리들을 어루만지고 위무하는 진혼가가 되게 / 부르고 또 불러주오."
1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낭송된 김종우 시인의 시 "우리들의 이름을 불러주오"의 일부다.
'지리산 외공리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대책위'(아래 대책위)가 이날 현장을 찾아 정비와 함께 '위령제'를 지냈다. 산청 전교조와 진보연합이 '알아두면 쓸모있는 산청 역사 이야기'(알쓸산이)로 벌이고 있는 역사기행 답사 참가자와 산청간디고 역사동아리 '역사사랑' 학생을 포함해 50여 명이 참여했다.
이곳에는 모두 6기의 무덤이 있었다. 민간이 2000년 5월 무덤 1기를 발굴해 250여구의 유골을 찾았다가 다시 묻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1기)가 2008년 7~10월 사이 모든 무덤을 발굴했고, 모두 280여 구의 유해·유품이 나왔다.
탄피와 탄두는 권총 탄피 3개를 제외하고 모두 카빈소총용 실탄이었다. 유품으로 발굴된 단추에 한자로 '인상(仁商)'과 '인중(仁中)', '경농(京農)', '해관(海關)'이라고 새겨져 있었고, 유일하게 이름이 새겨진 도장(이병제)도 나왔다.
외공리 골짜기에서 벌어진 학살사건은 1951년 2~3월 사이 트럭 3대에 나눠 타고 왔던 민간인이 군인들에 의해 학살당한 것으로 보인다. 대책위는 학살지 보전을 위해 2004년에 땅 270여 평을 매입했다. 당시 나왔던 유해·유품은 '세종 추모의집'으로 옮겨졌고 이곳에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대책위는 매년 4월 첫 주 토요일에 위령제를 지내오고 있다. 참가자들은 무덤이었던 곳에 과일을 비롯한 제물을 차려놓고 절을 올리기도 하고 추모 발언을 했다.
박보현(진주)씨는 "어제 전두환 손자 전우환씨가 무릎을 꿇고, 5·18에 대해 사죄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며 "산청 외공리 이곳의 역사도 반드시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혜영 교사는 "스스로 긍정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가 발 디딘 곳을 긍정하고 사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 발걸음에 역사 현장 답사가 중요한 발디딤이 되었다"고 말했다.
팽미란 산청진보당 위원장은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진실을 밝히는 자리에 함께 해 뜻 깊다"며 "고통의 몫은 항상 민중이 안고 사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그 또한 민중이라 믿고 진실을 밝히는데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학생들도 참여했다. 곽채은 학생(간디고 3년)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건 과거의 참극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을 다시 곱씹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읽어주신 시가 마음을 울려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박형준 학생(3년)은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마음 한뜻으로 추모를 했다. 어떤 분들이 돌아가셨고 발굴이 어떻게 하게 되었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시도 새롭게 들을 수 있었다. 정말 뜻깊은 시간이였다"고 했다.
또 양희성 학생(3년)은 '한국 전쟁 당시 이곳에서 국가적 폭력으로 최소 280명 이상이 죽음에 이르렀다. 말도 안 되는 사건이지만 아직도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놀라울 따름이다"며 "우린 더 이상 이러한 국가적 폭력을 허용해선 안 된다. 그렇기에 기억해야 하고 역사에 새겨야 한다"고 했다.
이가람 학생(1년)은 "초·중학교 때는 이러한 역사를 책으로만 배워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는데 직접 현장에 가서 둘러보며 추모를 하니 마음에 정말 와닿았다"며 "이런 슬픈 역사를 묻으려고 하다니 마음이 무거웠으며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으니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진 것 같았다. 평생 모를 뻔했던 학살사건을 이번에 알게 되어서 정말 뜻깊었다"고 했다.
이날 위령제에는 외국인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캐나다 출신으로 덴마크 대안학교의 로드(Rod) 교사는 "아픈 역사를 배우는 것이 의미 있고 책으로 읽는 것뿐 아니라 직접 현장에 와서 경험해 보는 게 좋았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의 유골이 발굴되었던 현장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고, 위령제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종우 시인의 추모시 전문이다.
우리들의 이름을 불러주오
- 김종우
우리는 1951년 정월
이곳에 끌려와 학살되고 묻혀
세월과 망각에 덮여 수십 여년을 원혼으로 떠돌다
2000년 5월 어느 날
이름 없는 유골이라는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네
하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무슨 연유로이 낯선 골짜기에서 학살되고
매장되었는지
우리를 살해하고 내 던진 학살의 원흉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네
그날 이후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을 부여잡고 매달린
이곳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는 속절없이
죽은 자의 이름도 죽인 자의 실체도 없는
뼈와 원혼만이 남아 나뒹구는 통곡의 아수라가 되었다네
하지만 여보게들,
우리는
4월이면, 그대들이 찾아오는 이 아름다운 4월이면
기다림 너머 그 그리움 너머에 습관처럼
우리들의 못다 이룬 소원들을 꽃등처럼
하나하나 밝혀든다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이름 없는 영혼으로 떠돌기 싫다오
그대가 잊혀졌던 우리들의 이름을 불러주오
그 이름을 듣고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우리 형제들이
달려와 목 놓아 울 수 있게
한 번만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그 이름을 불러주오
그럼 우리도 이 산하가 쩌렁쩌렁 울리게
목 놓아 울고 까무러치고 외치다
켜켜이 쌓인 원한과 원망 그 아픔들을
씻은 듯 슬며시 내려놓고
저 파란 하늘 아득히
기쁨에 겨워 펄럭이는 환한 혼백으로 남으려네
그러니 우리의 조국
자랑스러운 우리의 아들딸들이여
제발 그 이름을 불러주오
우리들의 잊혀진 이름 이병제, 김아무개 또 박아무개
그렇게 그리운 이름 하나, 하나씩 불러주오
그 부름이 그 애절한 부름들이
우리가 쓰러져갔던 차디찬 밤의
하룻날로 돌아가
비로소 우리들을 어루만지고 위무하는 진혼가가 되게
부르고 또 불러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