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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순 참여연대 신임 공동대표
 백미순 참여연대 신임 공동대표
ⓒ 장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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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5일 서울YWCA에서 열린 참여연대 제29차 총회에서 백미순 신임 공동대표가 선출되었다. 백미순 대표는 참여연대 간사 출신(1997~1999)이라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다.

그는 26년 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와 사법감시센터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기대 속에 문을 연 국가인권위원회(2001~2010)에 약 10년간 몸담았다. 이어 한국성폭력상담소(2012~2015), 한국여성단체연합(2017~2020), 서울시 여성가족재단(2020~2021)에서 대표직을 맡았다. 소속과 직책은 조금씩 달랐지만, 꾸준히 활동가의 정체성으로 현장을 지켰다. 공동대표가 되어 참여연대로 다시 돌아온 백미순 대표를 만났다.

- 공동대표님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취임 소감 한마디 부탁드려요.

"저에게 함께 할 기회를 주셔서 참여연대를 구성하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어느 때보다 참여연대가 필요한 시기에 공동대표가 되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데요, 이 책임감을 깊이 새기면서 필요한 역할을 해나가겠습니다."

- 절대 쉽지 않은 자리라서 고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위기 상황이고 참여연대도 30주년을 앞두고 많은 과제가 있잖아요. 그래서 고민이 있었어요. 지력과 재력 그리고 체력이 있는 분이 참여연대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저는 거기에 하나도 맞지가 않아서요. 그래도 이 어려운 때에 같이 손잡고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맡았습니다. '대표'라기보다는 '활동가'의 마음으로 덥석 손을 잡은 거죠.

제가 참여연대를 그만둘 때 '참여연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어요. 구체적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이번에 참여연대에서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말을 참 조심해야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 특히 참여연대 간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데요. 어떻게 참여연대 활동가가 되셨나요? '운동권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요.

"제가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부채감은 있었죠. 우리 시대에는 학생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은 정말 목숨과 인생을 걸고 하는 거였어요. 겁 많은 저는 '학생운동'이라고 할 만한 변변한 역할을 못 했어요. 그런데 참여연대는 감옥 갈 걱정 안 하면서 활동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요(웃음). 그리고 참여연대 활동이 어려운 결정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굳이 계기라고 하면, 참여연대의 권력감시운동에 관심이 있었고 그 역할에 자부심이 있었죠.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도 고민했지만, 결단이 필요한 일은 전혀 아니었어요."

- 참여연대 새내기 간사 시절이 혹시 기억나세요?

"제가 사법감시센터에서 일하던 어느 날 대표님한테 전화를 받았어요. 성명서에 오자(誤字)가 있다고. 우리가 내는 성명서가 한두 개가 아닌데 그걸 다 살펴보고 이슈를 따라오신 거죠. 너무 창피했지만, 한편으로는 참 감사했어요. 그래도 저는 '오자입니다'라는 전화는 안 하겠습니다(웃음)."

- 이후 새로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로 자리를 옮겼고, 그 뒤로는 주로 젠더 이슈에서 활동하셨어요.

"인권운동은 포지티브(positive)한 일이잖아요. 한국 사회의 오랜 인권침해 역사를 딛고 이제부터 국가가 제도적 틀 안에서 인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천명하는 것이라서 국가인권위원회 일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그리고 젠더 문제는 저에게는 가장 기본적 과제라고 생각해요. '뒤에 한 사람이라도 남겨져 있으면 완벽한 인권이 아니다'라고 할 때, 맨 뒤에 남는 사람이 여성이죠. 이주민 중에서도 여성이 더 열악하고 노동자 중에서도 여성이 더 차별받고요. 모든 교차 지점에서 젠더가 가장 예민하고 심각한 사안 아닌가 생각해요."

- 긴 시간을 활동가로 살아오셨는데요, 때로는 다른 길을 가보고 싶지 않았나요?

"힘들 때마다 쉬었어요(웃음). 그리고 저는 활동을 통해서도 많은 힘을 얻어요. 특히 동료 활동가들로부터 힘을 얻은 것 같아요. 삶의 끝까지 함께 갈 동지들을 만나고, 그래서 지금의 나를 점검하고 같이 고민하고. 그게 가장 힘이 되었어요."

-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보수도 없이 챙길 일은 많고 스트레스도 많은 극한직업입니다.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을까요?

"아, 스트레스가 많아요? 그걸 모르고 대표를 하기로 했나 봐(웃음). 제게 '4평 정원'이 있어요. 정원 일이라기보다는 그냥 흙 만지고 시든 잎 따는 건데요. 고민스러울 때는 나가서 흙 만지는 게 굉장한 위안이었어요. 그리고 낯선 곳에서 연락을 다 끊고서 실컷 멍때리면서 여행하는 것. 그걸로 1년을 버틸 힘을 얻어요. 한동안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할 수는 없었지만요."
 
백미순 참여연대 신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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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도 참여연대도 어려운 시기입니다. 참여연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보수 정권이 들어설 때 '그동안 우리가 이뤄놓은 게 있는데 설마 그렇게 퇴행하겠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잖아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일관된 무책임, 굴욕적인 강제동원 해법, 정치의 실종과 검찰국가화, 노동조합이나 시민운동에 대한 폭력적이고 적대적 태도까지. 참여연대가 정치·경제·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퇴행에 맞서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해낼 것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해요. 기존 의제에 머무르지 않고 힘을 모아서 결기 있게 대응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최근 사람들로부터 '참여연대는 대체 뭐 하고 있어?' 이런 질문을 많이 들었어요. '활동가들은 너무 바쁜데 우리가 하는 일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구나' 생각해요. 우리 메시지나 활동이 도달할 지점은 감시 대상만이 아니라고 봐요. 시민들에게 어떻게 닿을지 고민해야 하는 거죠. 운동 방법도 더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명서 내고 기자회견하고 고발하는 방식이 관행처럼 되어버린 건데, 그것도 좀 깨고 신선하게 다가가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이 어딘지 만들어내는 근본적 활동도 참여연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급한 사안 대응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거죠. 지금 다들 너무 고통스러워하는데 '그래도 결국은 이 방향으로 나아갈 거다'라는 비전을 보여준다면 시민들의 힘을 더 모을 수 있을 거예요. 이런 비전은 전문가만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고요, 참여연대 품 안에 더 많은 사람을 보듬으면서 다양한 생각을 모아야죠."

- 여성 단체에서 오래 활동하셨는데 젠더 측면에서 참여연대가 보강할 점은 없을까요?

"참여연대가 젠더 이슈로 활동해야 한다고 보진 않아요. 참여연대는 참여연대의 이슈가 있으니까. 다만 참여연대 조직 운영이나 활동 전반에 젠더 관점을 잘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우리 의사결정 구조에 젠더 균형이 맞나', '상대적으로 소수인 여성을 비롯해 청년·지역 회원 등의 발언 기회는 충분한가' 같은 기준을 계속 살펴보고 더 적극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그리고 참여연대의 활동 내용이 젠더적 관점에 기반해야겠지요. 어려울 수 있겠지만 우리가 놓치는 부분은 없는지 의식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어요. 소위 '젠더적 사안'이 문제가 될 때 그걸 '갈등이다. 다루기 힘들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토론할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 비난하거나 그냥 닫아버리면 사회적 대화가 이뤄질 수 없어요.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그 사람의 얘기를 경청할 자세를 가져야겠죠."

- 이야기를 듣다 보니 대표님이 참여연대에 새로운 바람을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더 커집니다.

"그런데 참여연대라는 조직이 대표자가 무언가를 결정하는 단체가 아니잖아요. 조직의 각 분야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공동대표는 거기에 자신의 의사를 조금 얹는 정도죠. 대표로서 저의 생각이 없으면 안 되지만, 제 역할은 참여연대 활동을 충실하게 대변하고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요. 제 관심을 실현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니니까요."

- 참여연대 활동가와 회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실까요?

"저는 다른 단체에 있을 때도 스스로를 '상임대표'가 아니라 '대표 활동가'라고 이야기했어요. 대표의 책무는 잊지 않지만, 저는 활동가 출신이고 지금도 여전히 활동가예요.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저를 옆에 있는 선배 활동가로 생각해 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참여연대 활동을 지탱하는 힘은 회원들인데요, 진짜 너무나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회원들이 저를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 여겨주시면 좋겠어요. 저도 97년부터 회원이거든요. 저는 '동료 활동가'이자 '동료 회원' 백미순이 되고 싶어요(웃음)."

- 마지막으로, '나에게 참여연대란 000'이다?

"아침에 마시는 카페라떼요. 저는 하루를 무사히 나기 위해서 매일 오전 라떼 한 잔을 마시거든요. 빈속에 그냥 커피를 마실 수는 없고 우유를 타서 마셔요. 나를 각성시키면서 하루의 시간을 시작하게 해주는 힘. 저에겐 그게 참여연대 같아요."

덧붙이는 글 | 글 박효원 편집팀, 사진 장은혜.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4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태그:#참여연대, #시민사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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