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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들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업무를 하며,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건강한 일터의 공간을 위해 무엇이 고려돼야 할까? 쉬지 않고 더 많은 콜 수를 채워야 하거나, 빡빡한 공사 기간에 맞춰 빠르게 건물을 지어야 하거나, 수업 이외의 시간에 교실에서 학교 업무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때 노동자가 적정한 면적의 공간에서 일하고 또 적절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는지, 적정한 시간 동안 일하는지 등의 질문은 자리 잡기 힘들다.

생산성이나 성과가 최우선인 직장에서, 또 남성노동자에 맞춰 구성된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쓰는 공간은 어떨까. 여성이 다수인 곳에서, 또는 여성이 소수인 곳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그 공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사용할까. 각기 다른 공간에서 일하는 3명의 여성노동자와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인터뷰①] "닭장 같은 콜센터 업무 공간"... 은행 직원 대상 콜센터 노동자
 
좁디좁은 공간에서 전화로 상담을 하는 콜센터 상담사(좌, 출처: 인터뷰이 M씨), 업무 공간이 곧 휴게 공간인 건설노동자.(우, 출처: 인터뷰이 B씨)
 좁디좁은 공간에서 전화로 상담을 하는 콜센터 상담사(좌, 출처: 인터뷰이 M씨), 업무 공간이 곧 휴게 공간인 건설노동자.(우, 출처: 인터뷰이 B씨)
ⓒ 2023_03_인터뷰이 2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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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씨는 대형 은행의 외주업체 소속 콜센터 노동자로, 16년간 이 일을 해왔다. 흔히 알려진 고객 응대 상담사와 달리 M씨는 은행 직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은행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들이 상담하다 전산오류가 나면 M씨와 관련 상담을 하는 것이다.

M씨의 회사 상담사 60명 전원은 여성이다. 외주업체 소속이라는 이유로 정규직 직원들에게 불쾌한 말을 듣기도 하는데, 외주업체 평가 점수와 연결돼 있기에 그럴 때도 친절함을 유지해야 한다.

"외주업체 소속인 우리가 정규직 직원에게 전산 업무를 알려주는데 본사 직원이 저희한테 민원을 걸면 업체가 은행에서 감점을 받아요. 거기에 굉장히 민감해서, 저희는 업무도 알려줘야 하지만 친절하기도 해야 해요.

이 전산콜센터에는 총괄하는 매니저, 7개 부서의 팀장이 있고 상담사는 한 60명 정도 있어요. 지금 업무 공간은 코로나 생기면서 넓어지긴 했지만 딱 그 기준에 맞췄죠. 책상 하나가 업무 공간인 수준이에요. 너무 좁고, 닭장처럼 빼곡하게 사용해요. 휴게 공간도, 우리가 60명 넘게 일하는데 휴게실은 말할 수 없이 열악합니다. 의자도 10여 개밖에 없어요."


화장실 사용 역시 쉽지 않다. 화장실은 좋은 편이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화장실에 갈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업무에만 몰두하도록 하는 회사의 닭장같이 좁은 책상 앞을, 한 시도 떠날 수 없다. 그렇다면 화장실이 적절하게 제공된다고 볼 수 있을까?

"콜 시간, 콜 수, 친절도로 인센티브를 주니까 거기서 벗어나지 못해요. 죽어라 한 콜이라도 더 받으려고 화장실도 안 가는 직원들이 많아요. 직원 평가시스템이 화장실에 가기도 어렵게 만들어요. 우리 동료들이 화장실 가는 시간을 보니 월 평균 하루 3~5분 정도밖에 안 됩니다.

지금 일하는 공간은 닭장처럼 된 공간에 유리로 돼 있어서 해를 정면으로 보게 돼요. 유리로 된 창으로 해가 정면에서 오니까 블라인드가 2개여도 눈부시고 힘들어요. 공간을 효율적으로 쓴다면서 책상을 유리 바로 앞에 둔 거죠. 여름에 너무 힘들어요."


현재의 일터는 오직 콜 응대, 평가에만 맞춰져 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부당하게 변경하던 근무 시간 역시 바로잡고, 휴식 시간도 20분에서 30분으로 늘어나는 등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업무를 하며 여성노동자들이 적절히 휴식을 취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전반적으로 공간이 넓어지면 좋겠는데, 휴게실이라도 제대로 갖춰지면 좋겠어요. 잠시라도 편안하게 재충전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인터뷰②] "500명 일하는 곳에 휴게실 의자는 30개" - 여성 형틀 목수의 일터

형틀 목수인 B씨는 남성 다수 일터인 건설 현장에서 2018년부터 형틀 목수로 일하고 있다. 현재 일하는 건설 현장 총인원 500~600명 중 사무실 직원들을 포함해 여성노동자는 30~40명 정도로, 10%도 되지 않는다. 장시간 머무는 일터지만 옥외 노동자들에게 여름 더위와 겨울 추위는 몸에 그대로 전해진다. 냉난방시설 등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치도 잘 취해지지 않는 현장에 대해 먼저 들어봤다.

"제빙기가 지금은 있는데 이걸로 시원한 물 먹게 해준 게 몇 년 안 됐어요. 여름에 물 없으면 못 살죠. 겨울에는 손발이 시리고요. 두껍게 입으면 일을 못 하니 패딩을 입을 수가 없어요. 그런 게 힘들죠. 그렇다고 난로 바로 옆에 있는 것도 아니라서요.

제일 문제가 휴게 공간이에요. 겨울에는 천막이라도 쳐서 히터 같은 거 켜주면 잠시 몸 녹일 수 있어 좋을 텐데 그런 게 없어요. 허허벌판에서 불을 쬐는데 손만 따뜻한 게 아쉽죠.

휴게실은 원청에서 아예 안 만들어줘요. 남녀 다 마찬가지예요. 안전 교육장에서 잠시 점심 먹고 앉았다 가라 하는데 자리가 너무 부족해요. 500명이 일하는데 좌석이 30개밖에 없거든요. 컨테이너가 있긴 한데 휴게실 용도로 주는 건 아니에요. 좁기도 하고요. 거기가 너무 좁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바닥이나 차에서 쉬기도 해요. 휴게실은 훨씬 더 많이 필요해요."


건설 현장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화장실이다. 화장실이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지저분해 사용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공간적으로 해결이 불가피하다면, 노동시간을 잘 조율해서 쉴 시간을 줘 해결할 수 있을 테지만 그런 시간은 부여되지 않고 있다. 남성을 기준으로 짜인 일터에서 이런 문제는 차별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성들은 아무 데나 소변볼 수 없잖아요. 그런데 화장실 때문에 왔다 갔다 한다고 눈치를 줘요. 생리적 현상을 뭐라 한다기보다는 '이래서 여자를 쓰면 안 된다'라고 말하기도 해요. 그건 본인들이랑 구조가 달라서 그런 거고, 여자들이 왜 화장실 많이 가냐고 뭐라고 하면 안 되죠. 여성은 지상으로 왔다 갔다 해야 해서 요의를 계속 참거나 요실금 속옷 입는 분들도 계신 상황이에요. 인원에 비례해 화장실 수도 한참 부족하고요."

형틀 목수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다. 형틀 목수로서 형틀 목수가 노동할 공간을 만든다면 만들어보고 싶은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다른 건 둘째치고 휴게실과 화장실은 기본으로 잘 지을 거예요. 샤워장까지요. 샤워장 없는 데가 많아요. 화장실하고 원래 기본으로 만들 게 돼 있는데 원청사가 무시하고 안 만들고 있죠. 아니면 있긴 있는데 남성 샤워장만 만드는 곳도 있고요.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화장실, 샤워장, 휴게실 이렇게 개선이 되면 좋겠어요."

[인터뷰③] "일도 휴식도 교실에서" - 초등학교 교사의 일터

여성이 압도적 다수인 교사는 어떨까? 학교의 업무 공간은 다른 일터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학생들과 함께 공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담임을 맡은 초등학교 교사에게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실이 업무 공간이자 동료를 만나는 공간이며, 차를 마시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출근부터 수업이 끝나는 오후까지 쉼 없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봐야 한다는, 초등학교 교사 A씨의 이야기다.

"일단 초등교사는 교무실에 자리가 따로 있지 않고 각자의 교실이 이제 자기의 일터와 생활 공간이 되는 거거든요. 보통 아침 8시 40분에 출근을 하는데 바로 자기 교실로 가요. 담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쉬는 시간이라도 선생님은 어린이들이랑 계속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있는 시간에는 화장실 여유 있게 갔다 올 시간도 정말 없어요."

여성이 이렇게 많은 학교지만 휴게 공간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아플 때는 그나마 보건실에서 쉬고 있었다.

"학교에 여교사 휴게실이라고 해서 방이 하나 정도씩은 있어요. 하지만 일단 갈 시간이 없어요. 휴게실이 없는 학교도 많아요. 있어도 여교사 휴게실은 진짜 아플 때 몸이 너무 아파서 누워서 쉬어야 할 때 그럴 때 가요. 거의 이용을 못 하니 악순환이 되는 것 같아요. 이용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관리가 안 되고, 관리가 안 되니까 또 그 공간이 쾌적하지 않아 또 더 안 가게 되고. 그렇게 방치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아이들이 없을 때는 교실에서 혼자 있을 수 있으니까 그냥 교실에서 쉬는 경우가 많고, 정말 누워서 쉬고 싶으면, 아이들 가는 아플 때 가는 보건실 있잖아요, 보건실 침대 가서 좀 누워 있기도 하고요."


일반적인 직장에서라면 노동자들이 업무 공간과 휴게 공간을 구분해서 쓰지만, 학교는 학생들의 학습과 생활이 중요한 곳으로 설정돼 있기에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공간이 학생들 공간과 구분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동료들과의 모임이나 노동조합 모임 역시 교실에서 이뤄진다.

"학교라는 공간을 항상 아이들을 위한 곳, 아이들이 잘 지내기 위해서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를 많이 생각했지, 교사인 내가 잘 지내기 위해서 어떤 개선이 필요할까, 무엇이 필요할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잘 없었던 것 같아요."

여성이 많지만, 승진은 대부분 남성 교사들이 하는 현실은, 여성이 더 많이 승진한다면 여성의 공간도 더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한다. 여성이 많은 만큼 여성노동자의 공간과 시간이 존중될 때, 여성의 자리가 지워지지 않을 때 여성노동자, 그리고 전체 노동자가 존중받는 일터가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청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3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여성노동자_일터공간, #여성노동자_일터건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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