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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12개월이 된 아들을 데리고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까?"

카시트에 태워서 몇 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답답해하는 아들을 보며, 해외여행은 어떻게 가야 하나, 와이프와 많은 고민을 했어요. 아들이 다른 건 괜찮은데 유독 답답해하는 걸 싫어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참 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피식- 나오기도 합니다.

또 어찌나 엄살이 심한지 얼굴을 돌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벽과 거의 맞닿을 뻔(부딪히지도 않았음)이라도 하면 울음난리 부르스를 춰요. 또 얼굴이나 목에 다른 물건이 닿으면 얼굴이 시뻘게질 만큼 짜증이란 짜증을... 이런 것도 저와 닮아서 할 말이 없네요.

단지 와이프가 저와 아들을 한심한 눈초리로 볼 뿐이죠. 어떻게 이런 것도 닮나 신기하기도 하고, 유전자의 힘이 경이롭게 느껴지네요.
 
풍경은 멋있고, 우리 부부는 정신없었다.
 풍경은 멋있고, 우리 부부는 정신없었다.
ⓒ 백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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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들과 저희 부부는 2박 3일로 일본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와이프와 저는 여행 고생론 신봉자였습니다. 국내, 국외를 막론하고 어디로 여행을 가든 '고생'은 여행의 전부였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강한 충격이 뇌리에 박히듯, 여행 가서 고생한 것이 기억에 남기 때문일까요. 여행이 끝난 뒤 기억을 선명히 붙잡아 두기 위해 일부러라도 고생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아기와 여행을 간다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쉽지 않다'는 말이 너무 납작하게 말해지고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어요. 여행을 가기 전에 미리 정보를 얻고 싶어 여러 커뮤니티를 뒤져봤는데, 그래도 많은 부모님들이 어린 아기를 데리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걸 알 수 있었죠. 미리 루트를 짜고, 필요한 물품을 챙겨놓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까지... 꼼꼼히 준비하는 모습에 '이 세상 모든 부모님 만세'를 외쳤어요. 

저희도 나름 준비를 했어요. 특히 비행기에서 이착륙할 때 기압 차이로 인해 귀가 아파서 아기들은 많이 운다는 정보를 듣고, 우리 아들도 그러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죠. 그래서 다들 그때 분유나 물을 먹이면 좋다고 해서 기내 탑승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두기도 했어요(물론 그전에 다 먹어버렸지만...).

또 답답한 걸 못 견디다 보니까 처음 타서 낯선 비행기에서 약 1시간을 참을 수 있을까, 엄청 두려웠어요. 왜냐하면 작년 여름에 비행기에서 아기가 운다고 부모에게 욕을 하고 침도 뱉은 40대 남성의 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아기의 울음이 타인에게 소음이 되고, 조용하게 여행 목적지로 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걱정했죠. 

아들은 이륙할 때는 괜찮았어요. 귀도 안 아픈지 잠에 취해 와이프 품에 폭 안겨 갔어요. 중간에 깨기도 했지만 시끄럽게 하지 않아 다행이었어요. 하지만 방심은 금물. 아니나 다를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울음바다가 돼 버렸어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시간이 하필 아들이 평소 자는 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아들은 평소 루틴대로 자고 싶은데 주변이 낯설고, 밝고, 시끄러우니 잘 수가 없었죠.

그러다 보니 계속 울었어요. 계속이요... 아들의 평소 깨어있는 시간과 취침 시간을 계산해서 비행기 표를 예매했어야 됐는데, 그 부분을 간과했어요. 그래도 주변 분들이 손가락질보단 걱정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 같아요. 대부분 50~60대의 어른들이어서 '나도 다~~ 겪어 봤어' 하는 눈빛이었죠. 그렇게 비행기 안에서 저와 와이프는 식은땀을 한바가지 쏟았어요. 

후쿠오카에 도착해서는 아들이 많이 피곤했는지 첫날은 호텔에서 거의 잠만 잤어요(물론 저도).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는데, 여행을 가서 잠만 잔다고 이해를 못 할 수도 있어요. 근데 어린 아기와 오면 다 그렇게 됩니다. 피곤해요. 그냥 계속 피곤합니다.

많이 돌아다니지 못하고, 맛있는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에 가는 것도 제약이 있죠. 그러다 보니 여행의 반경은 좁아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여태까지 다녔던 해외여행과는 참 많이 달랐습니다. 혈기왕성하게 구석구석을 탐방하며 멋있는 풍경을 눈에 담고, 맛있는 음식을 몸에 담았는데 부모가 되니 여행 스타일도 바뀌었어요(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한적한 후쿠오카 마을
 한적한 후쿠오카 마을
ⓒ 백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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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가장 많이 변화된 건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꽤나 힘들어졌다는 거예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유명한 맛집을 방문했는데, 가장 많이 느낀 건 어린 아기와 함께 먹기가 불편하단 거였어요. 먼저 운명의 장난처럼 저희가 방문한 식당이 대부분 지하에 있었어요.

그럼 엘리베이터를 타면 되지 않느냐고요? 그게 없어서 하는 말이에요. 있더라도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고, 대체로 계단으로 내려가게끔 해놓아서 유아차를 들고 내려갔습니다. 또 식당 입구들이 넓지가 않고, 경사면이 없어 유아차가 들어가기가 힘들어요.

들어간다 해도 놓을 곳이 없어서 참 난감했어요. 일본의 고령화가 우리나라보다 심하지만, 출산율은 2020년 기준으로 1.34명으로 우리나라(0.84명) 보다 높거든요? 그런데도 어린 아기와 함께 마음껏 식당을 방문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였어요(지극히 제 개인적 의견입니다). 

그런 식당의 구조를 힘겹게 뚫고 들어가더라도 또 넘어야 할 난관이 있어요. 저희 아들은 답답한 걸 못 견딘다고 여러 번 강조했잖아요. 그러다 보니 식당에서 우리 부부가 밥 먹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아요. 호기심 때문에 이것저것 만지려고 하고, 돌아다니려고 하고... 가만히 붙들어 두기 위해서 까까를 주지만, 그것도 잠시예요.

그래서 우리는 음식의 맛을 천천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들입다 붓고 빨리 나가야 하죠. 맛을 느끼기도 전에 내장 기관에 음식이 도착해 있는 기분? 뭐 그런 거죠. 흔히 여행이라고 하면, 맛난 음식을 즐기고, 멋진 풍경을 눈에 담는 거지만, 우리에겐 사치에요. 잠시 발만 담갔다 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죠.
 
후쿠오카의 대표 음식 '모츠나베'. 그러나 우리를 견디게 해준 건 한 잔의 하이볼
 후쿠오카의 대표 음식 '모츠나베'. 그러나 우리를 견디게 해준 건 한 잔의 하이볼
ⓒ 백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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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그럼 여행 안 가면 되지, 힘들 거 뻔히 알면서 왜 가냐'라고 하거나 '어린 아기는 기억도 못할 텐데 뭐 하러 그렇게 힘들게 일찍 데리고 가냐'라고 말하는 분들을 본 적이 있어요. 거기에 대한 저의 대답은 '그럼에도 갈 거예요." 여행이 평탄하기만 하면 재미없거든요.

또 부모로서 아들에게 이 세상은 넓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아기가 어려서 기억을 못 할까요? 저는 김영하 작가의 말을 듣고 답을 찾았아요. 기억은 인지의 영역이라 구체적인 사실을 잊어버릴 순 있지만, 감정은 남는다는 것을요. 부모와 함께 여행을 하며 느꼈던 감정은 깊이 남을 거라 믿어요.
 
어떤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좋은 곳에 가는 걸 이렇게 말해요. '애들은 다 까먹을 텐데 왜 좋은 곳에 데리고 가냐.' 그런데 거기에 대한 제일 좋은 답은 좋은 감정은 남는다는 거죠. 부모와 함께 바다를 갔고, 바다에 대한 좋은 감정은 남아서 구체적으로 어떤 해수욕장인지, 뭘 먹었는지 잊어버려도 나중에 바다에 가면 굉장히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 듯이 어차피 책이라는 건 읽고 나면 70% 이상은 다 잊어버린대요. 그래도 그 책을 기분 좋게 봤다는 느낌만 남는 거죠. 
- tvn '알쓸인잡'에서 김영하 작가의 말  

그럼에도 어린 아기와 여행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여행 고생론 신봉자였는데, 이러한 인식이 바뀔 뻔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아직은 여행은 고생으로 이루어져야 제맛인 것 같아요. 

태그:#여행, #일본, #후쿠오카,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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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축구를 하다 그만두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복지정책을 공부하고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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