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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4.16연대 강당에서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및 생명ㆍ안전 위기에 대한 산재ㆍ재난 유가족 및 피해자, 종교ㆍ인권ㆍ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일하다 죽지 않게" 지난 1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4.16연대 강당에서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및 생명ㆍ안전 위기에 대한 산재ㆍ재난 유가족 및 피해자, 종교ㆍ인권ㆍ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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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규제 완화 요구는 끝이 없다. 끊임없이 돌고 도는 네버엔딩 스토리다.

"노동자가 편의상 안전장치를 풀고 작업을 해. 그러다가 사고가 나버린다. 공장은 생각보다 넓고 일일이 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아. 그런데 CEO가 그것까지 다 책임져야 해.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이 과연 문제를 해결하는 합리적인 해법일까?"

어느 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인이기도 했던 그의 입에서조차 이런 볼멘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다. 시행된 지 첫돌을 맞은 법률인데 관심이 뜨겁다. 뜨겁다 못해 지나칠 정도다.

일부 언론들은 시행 1년이 되도록 중대재해가 줄지 않았다며 무용론을 퍼뜨리고 있다. 하지만 절반의 사실이다. 법안 시행 이후 중소기업에서 안전관리가 개선된 사례들도 존재한다. 명확성이나 책임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절반의 사실에 그친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건 당연한 의무이고, 향후 법원 판결에 의해 구체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안 된다고 한다. 모호하다. 처벌이 과하다는 말만 무성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는 움직임들 
 
2022.7 중대재해법 기획재정부 연구용역 보고서 중 발췌
 2022.7 중대재해법 기획재정부 연구용역 보고서 중 발췌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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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7일은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중대재해법은 사람의 생명이 기업의 이윤보다 소중하다는 상식을 회복하고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한 해 약 2000명이 일터에서 사망했다. 또한 가습기살균제 참사처럼 기업에 의해 시민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들이 반복돼 왔다. 이런 현실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경영책임자에게 중대재해와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우지 않으면 조직문화를 바꿀 수 없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10만 명의 시민들이 국회 입법청원에 동의했고, 결국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집권 이후 규제완화를 고집했다. 기업에 대한 형벌 규정을 완화하겠다고도 말했다. 중대재해법 개정을 우선과제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향성 아래 기재부의 용역보고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처벌이 아닌 예방을 위한 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안전을 위한 투자를 비용으로 생각하고, 생산성이 안전보다 먼저였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태산명동 서일필(태산이 떠나갈 듯 요동쳤으나 뛰어나온 것은 쥐 한 마리뿐)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고만 말하는 격이다.

중대재해법을 만든 목적은 위험과 사고를 미리 예방하고 안전관리에 힘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업들은 법안이 만들어진 이후 안전에 투자하기보다는 법률 자문에 더 신경을 쓰는 듯했다. 게다가 경총을 비롯한 경제단체는 경영자 처벌조항을 문제삼으며 사실상 법안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을 자율에 맡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2022.12 검찰 기소현황 고용노동부,검찰 보도자료 발췌
 2022.12 검찰 기소현황 고용노동부,검찰 보도자료 발췌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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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중대재해법의 적용과정은 지지부진한 면이 있다. 지난해 5월 에쓰오일 울산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10명(1명 사망, 9명 부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외국계기업 1호 중대재해사건으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 건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지난 2월, 고용노동부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바 있다. 

<한겨레>의 지난 1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중대재해법의 중대산업재해 사건 229건의 처리율은 22.7%에 불과하다. 내사종결된 18건을 제외한 211건 중 송치한 건은 34건이고, 기소된 건은 11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두성산업은 2022년 10월에 위헌법률 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이 업체에서는 16명의 노동자가 유해화학물질 독성중독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이 사건이 헌법재판소로 가게 되면, 이를 이유로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이 당분간 올스톱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정부의 해법은 산으로 가고 있다. 경총을 비롯한 경제단체들의 규제완화 요구에 화답하는 모양세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자율규제'로 중대재해를 감축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2023년 1월부터는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TF를 만들어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2022.12 고용노동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중 발췌
 2022.12 고용노동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중 발췌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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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의가 나올때면 중요한 사례로 단골로 등장하는 게 '로벤스 보고서'다. 약 50년 전인 1966년 영국의 한 탄광마을에서 폐기물이 초등학교를 덮쳤고, 150명에 달하는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참사를 계기로 구성된 위원회의 해법은 더 효과적인 자율규제 시스템의 도입이었다.

하지만 이 보고서의 내용 어디에도 '기업을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 '책임을 강제하는 법을 없애자'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영국에는 기업살인법(기업과실치사법 및 기업살인법)도 존재한다. 이 법안은 기업의 책임강화를 위해 2007년에 제정됐다.

정부는 자율이라는 글자에만 방점을 찍은 것 같다. 자율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저 방임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취지를 이행하기 위해 제도를 보완하는 데 이견은 없다. 다만 제도 개선이라는 명분을 그대로 관철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CEO에 대한 처벌 조항이나 5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적용유예를 연장하는 게 입법 취지 실현에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정부는 6월에 개정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에 고용노동부의 TF가 출범했는데 불과 한달 만에 최고경영자 처벌 조항을 없애자는 논의가 있었다고 보도가 나왔다. 고용노동부에 확인한 바로는 확정된 내용이 없다고 말한다. 두 번째 회의가 진행됐고, 아이디어를 모으는 자리였다는 주장이다.

이 법안이 규정한 중대시민재해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입법 과정에서 김용균씨로 상징되는 산업현장의 이슈들이 강조되었던 영향도 있었다. 제2의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심도 깊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10.29이태원참사를 거치며, 공무원들에 대한 처벌 조항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제시되고 있다.

'만약에'라는 가정은 의미 없다지만, 중대재해법이 일찍 자리를 잡았다면 어땠을까 입맛이 씁쓸할 때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다. CMIT/MIT 원료로 제품을 판매한 SK케미칼와 애경산업, 이마트 등에게 적용된 법률은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다. 원심재판부는 2021년 초에 전부 무죄 판결을 통해 기업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항소심 재판에서도 전망이 밝지는 않다. 검찰은 여전히 인과관계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옥시RB 또한 신현우 전 사장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이 징역 6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서두에 잠시 언급했던 지인은 비용 문제도 말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로서는 경쟁력이 중요하고, 안전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면 비용도 늘어나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안전 조치가 개선되서 80년대의 열악한 환경과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고도 했다.

그의 말이 100%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 규모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지만 핵심 기술들을 갖고있는 선발 주자와 저렴한 가격으로 뒤쫒아오는 후발 주자 사이에서 우리도 끝없이 달려가야 한다. 생존을 위한 절실한 그의 생의 감각도 존중한다. 하지만 그의 의견만큼 존중받아야 하는 내용도 있다.

여전히 매년 1000명에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 단지 일을 하러 간 사람들이었다. 위험은 외주화되었다. 원청은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한다. 중소기업의 이행여력이 없다는 말은 단골메뉴지만 이행을 끌어올릴 방법은 내놓지 않는다.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비판을 보면 기시감이 든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겪어내며 강화된 화학안전 3법, 특히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등에 관한법률)에 대한 논쟁의 양상도 비슷했다. 참사의 충격은 잊혀가고, 경제가 어렵다느니 비용 절감과 기업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슬며시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한다. 이를 우리 사회의 최고 규범으로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법학자 알렌 쉬피오는 "참극은 반복되는 게 아니라, 새로 모습을 바꿀 뿐이다. 과거의 기억이라는 저지선을 믿는 것으로 재발을 막을 수 없으며, 법적 장치를 굳건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도 사회도 바로 서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번에는 바로 설 수 있을까, 안전이라는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 안전사회를 위한 법안의 필요성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미 뜨거운 감자인 중대재해법의 향방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강홍구 기자는 환경운동연합 중앙사무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중대재해처벌법, #규제완화,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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