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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입양한 고양이 '랑이'
 우리 가족이 입양한 고양이 '랑이'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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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를 입양했다. 지난겨울에 밖에서 얼어 죽을 뻔하다 겨우 구조된 아기 고양이다. 임보(임시보호)를 거쳐 우연찮게 우리 집까지 오게 됐다.

십 년 전 유기견을 입양했다가 떠나보내고 난 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아기 고양이를 본 순간 그 결심이 무너졌다.

아기 고양이(이하 랑이)를 입양한 뒤 우리 집에는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가장 먼저 가족들이 함께 모여 있는 시간이 늘었다. 랑이가 주로 있는 곳이 거실 테이블 밑이다. 평소에는 거실에 잘 오지 않는 중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이 랑이를 보기 위해 거실로 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이 모이게 된다.

거실에 모인 가족들은 랑이의 몸동작, 표정 하나하나에 관심을 보이고 대화를 한다. 대화의 90% 이상이 랑이 얘기지만 함께 모여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중,고등학생 아이를 둔 집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평소에는 엄마, 아빠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아이들이 갑자기 전화나 카톡을 한다. 내용은 "랑이는 뭐해?", "랑이 밥 먹었어?" 등이지만 그래도 아빠와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반갑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교복도 안 벗고 랑이와 노는 고3 아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교복도 안 벗고 랑이와 노는 고3 아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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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아들은 학교 갔다 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기 바빴다. 그런데 요즘은 안방으로 온다. 랑이가 누워 있는 침대로 와서 한참 동안 놀다가 간다.

랑이와 놀던 아들은 "오늘 랑이는 어땠어?"라며 먼저 말을 건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늘 학교는 어땠어?", "오늘 급식은 맛있었어?"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아들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서슴지 않고 말해준다.

학교 갔다 오면 단절된 아이와 아빠 사이에 고양이라는 매개체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랑이는 우리 가족에게 선물을 준 셈이다.
 
아들 방문이 닫혀 있자 긁고 우는 랑이
 아들 방문이 닫혀 있자 긁고 우는 랑이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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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변화 중의 하나는 아들이 자기 방문을 열고 산다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알겠지만, 아이들은 자기들 방문을 절대 열어 놓지 않는다. 행여 부모가 들어가려고 하면 싫은 내색을 한다.

고3 아이가 방문을 열고 산다. 이유는 랑이 때문이다. 방문을 닫으면 랑이가 자꾸 문을 긁고 소리를 낸다. 아들은 이런 랑이 행동을 보면서 과감하게 자신의 사생활을 포기했다. 아들이 무엇을 하는지 거실에서 볼 수 있다니, 기적이다.

중학생이 된 딸은 처음 입양할 때 내건 '고양이 화장실 청소' 규칙을 잘 지키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청소를 해주고,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꼭 확인한다.

자기 방 청소도 하지 않고 화장실에 올라오는 하수구 냄새에 민감한 아이가 고양이 변을 치우고 모래를 갈아주다니... 13년 동안 아이를 키웠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딸이 자는 발 밑에 앉아 있는 랑이
 딸이 자는 발 밑에 앉아 있는 랑이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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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밤마다 랑이와 함께 잔다. 일하다가 아이 방에 가보면 랑이가 딸의 발밑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이는 랑이가 있으면 잠이 잘 온다며 애걸복걸하며 데리고 들어간다. 

밤늦게 자는 아이가 랑이가 있어서인지 일찍 잠이 든다. 아침에는 새벽부터 온 집안을 뛰어다니는 랑이 덕분에 아이들도 일찍 일어난다. 엄마, 아빠가 깨우지 않아도 랑이가 알람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반려묘를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과 정성도 필요하다. 랑이가 집에 온 뒤로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라도 키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랑이는 누군가에게는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양이였다. 그러나 우리 집에 와서는 가족을 하나로 묶어 주는 애교 넘치는 막내가 됐다.

덧붙이는 글 | 본인의 '몬딱아재'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태그:#길고양이, #입양, #반려묘,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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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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