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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다. 머릿속이 텅 비고 멍하다. '무엇을 어떻게 할까?' 갈피를 잡을 수도, 주제로 삼을 거리조차 떠올리기도 힘들다. 난감한 상황이라는 걸 인지하고 왜 그런지 이것저것 핑곗거리를 찾아보지만 소용없다. 게으름이 발목을 잡는구나.
 
게으름의 시간과 달리 봄은 오고 있다.
 게으름의 시간과 달리 봄은 오고 있다.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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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여느 해보다 눈도 많이 내리고 추웠던 지난겨울, 어느 날은 눈이 많이 와서, 어떤 날은 날이 너무 추워서, 또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서, 바빠서 등등 집 밖을 안 나갈 궁리를 찾았고 그런 궁리는 잘도 찾아졌다.

무언가 할 거리를 찾는 부지런한 남편도 지난 연말부터 바빠진 회사 일에 스트레스가 심한지 집에 오면 난로 앞에 앉아 꼼짝하지 않았다. 덕분에 함께 빈둥거리며 산책 못 해 우울한 강아지의 애절한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자책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울 동안 산책한 횟수를 손가락으로 꼽아도 다 꼽지 못할 만큼 게으름을 피우며 자연과 멀어져 지냈다. 그 몇 달 사이에 얻은 건 두툼한 뱃살과 급격히 떨어진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다.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머릿속에서도 멀어졌다.

아직도 내 몸과 마음은 겨울을 붙잡고 있는데, 자연의 시계는 쉬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날은 하루하루 따뜻해지고 햇살은 온기를 품어가며 점점 길어진다.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보며 이제 게으름을 그만 피워야겠다 마음 먹고 있던 차에 둘째 아이가 엄마 아빠가 꼭 읽어보면 좋겠다며 책 한 권을 추천해줬다. 제목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였다.

어류에 대한 단순한 자연과학과 관련된 이야기인 줄 알고 이과 성향의 엄마를 위해 책을 추천하는 아들 녀석을 기특하게 생각하며 주문한 책을 받아 읽었다.
 
필자의 게으른 마음을 위로해준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필자의 게으른 마음을 위로해준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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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의 느낌은 전자기타를 사용하는 해비메탈 음악과 함께 랩을 하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처음 보았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랄까?(스포일러 때문에 책을 줄거리를 이야기하진 못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논문처럼 진지하고 세밀히 분석한 주인공의 감동적인 성장드라마를 본 것 같았다.

그러면서 과학적인 사실 또는 치밀한 분석을 통한 자아 성찰은 필자에게도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양자역학을 설명하기 위한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Double slit experiment)을 통해 전자가 물질이냐 파동이냐는 의문에 대한 해답보다, 관찰이라는 행위로 인한 그 상호관계에 따라 실험 결과가 달라짐을 배운지 30년이 다 돼서야 아이들과 함께 본 영화 덕분에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생태수업을 하며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지구의 역사와 진화론을 통해 결국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로 시작했고, 함께 변화해온 동등한 공생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됐다. 경쟁하고 계급을 나누는 것은 큰 의미가 없으며, 그 어떤 것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생각해보기도 했으니 참으로 대견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귀차니즘과 빈둥거림에 대한 죄책감이 덕분에 많이 사라졌다. 나도 어느 정도 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겨우내 빈둥거림으로 인해 비록 몸무게가 늘어났을지언정 결국 내가 좋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이 아닌가. 결국 삶이라는 것이 사랑하고 행복하기 위함이니 지금 난 잘살고 있노라는 결론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부랴부랴 남편에게도 책 읽기를 강요했다. 빈둥거리더라도 각자 스마트 폰을 보기보단 뭔가 공통점을 갖고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고, 필자가 느낀 것과 다른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다 읽은 남편은 말했다. 어릴 적 수학 시간에 문제를 풀어주다 갑자기 수식에 빗대어 인생 이야기를 해주었던 선생님의 자칭 개똥철학의 현대 또는 외국 버전이라고. 둘째 녀석이 방에서 기타로 연주하는 어설픈 너바나(Nirvana)의 곡이 오히려 정겹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송미란 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활동가 입니다.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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