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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황토방에서 맞이하는 새벽녘 아릿한 물안개와 애틋한 태양의 눈을 보면 절로 가슴이 뛰누나.
 시골살이 황토방에서 맞이하는 새벽녘 아릿한 물안개와 애틋한 태양의 눈을 보면 절로 가슴이 뛰누나.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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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처음 강화도 교동도 '주말 시골살이'에 첫발을 디뎠다. 내가 사는 인천에서는 약 2시간 거리이니 짧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장소다. 구체적인 삶의 이정표도 목표도 없이 막연한 감정에 들떠 시작한 시골살이는 여름과 가을은 참으로 살만했고 행복했다.

여름엔 온통 개구리 울음소리에 마냥 개구쟁이가 됐다. 산으로 둘러싸인 황토방은 온통 파랑새들의 지저귐으로 충만했다. 저녁이면 귀뚜라미가 밤새 사랑을 나누고 무지개 황금 노을이 시간을 머금으면 바다 위에서 하늘 위에서 반딧불이가 별이 돼 찬란한 자유를 누렸다.

'오도이촌', 그야말로 5일은 도시에서 주말 이틀은 시골에서 한적한 쉼을 즐겼다. 월화수목금 직장에서 찌든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엔 정말 안성맞춤이었다. 물론 하나를 얻은 덕분에 나머지 모두를 버려야 했다.

가장 아끼던 친구와의 교류를 끊고, 친인척 경조사도 끊고, 직장 애경사도 모두 끊었다. 토요일이면 나가서 무조건 술에 찌들고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어깨동무하며 노래 부르던 못된 버릇도 모두 끊었다. 그야말로 봉쇄수도원 수사처럼 고독과 침묵에 투신했으며 기도와 명상으로 주말 이틀을 오롯이 내적 평화로 물들였다.

푸르른 들판에 바람의 미소가 그윽하고 벼이삭의 살결만 가득한 시골은 그곳 자체가 지상낙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자연에 의지하면서 무위자연으로 그들과 호흡하고 교감했다. 걷고 또 걷고 산책을 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버리고 사랑을 지웠다. 온전히 자연이 됐고, 오롯이 어둠이 됐다.

새벽은 새벽대로 잔잔하게 스며드는 물안개로 아침을 반겨주고, 저녁은 저녁대로 애틋하게 물들이는 저녁놀로 초승달을 반겨줬다. 아무도 살지 않는 오지마을이기에 고요의 아우라는 더욱 깊고 진했다. 청명한 보랏빛 캄캄한 은하수 세상은 온통 카시오페이아 그리고 북두칠성의 환희로 가득했다.

덕분에 6개월만에 포토에세이집 한 권을 출판했다. 물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하찮은 단편 수필이다. 그러나 남이 무슨 상관이랴. 내가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을 기록하면 그걸로 족한 것을. 책을 쓰면서 왜 사람이 자연의 철학자로 익어가야 하는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겨울의 시작... 아름다움이 조각났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시골살이의 아름다움은 겨울을 기점으로 무참히 조각났다. 거기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혹한기 시설물 관리와 난방비와 전기세 폭탄이 발목을 잡았다.

먼저 난방비는 10월까지는 그런대로 아껴쓰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11월부터 갑자기 확 뛰었다. 툭하면 수도가 얼고 물이 나오지 않았고, 황토방 곳곳이 균열로 무너졌다. 

한번은 너무 추워서 바깥 화로에 불을 때워 둔 적이 있다. 무심코 그 남은 나뭇재를 인근 야산에 버리고 나왔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순식간에 화염이 일었다. 숯검댕이 얼굴이 돼 불을 껐다.

그리고 시골살이 전입신고나 행정절차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도심에서는 지번만 있으면 신분증 하나로 전입을 마친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주택 사용승인과 건축물대장이 전산에 오르기 전까지 전입을 해주지 않는다. 더불어 면사무소 행정처리는 도시에 비해 소극적으로 읽혔다.

불과 6개월밖에 안됐지만 생각했던 시골살이의 낭만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어떻게 사람이 사랑이 마냥 좋을 수 있겠던가. 순진하고 순박하게 생각했던 시골에서의 여유로운 생활은 겨울이라는 난관을 만나 아주 혹독하게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

지난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난방비는 거의 100만 원 넘게 소요됐다. 그리고 전기세도 4개월 동안 약 40만 원 넘게 사용됐다. 나머지 이것저것 생활비를 포함하면 겨울 시골살이는 200만 원이 넘게 지출된 것이다. 최근 백수로 모든 업을 때려친 나에겐 너무 혹독한 겨울이었다.

강화 교동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이장 할아버지가 충고를 전했다.

"어떻게 세상살이가 마냥 좋을 수 있겠는가. 이런저런 상처도 받고 냉정한 현실도 부딪치고 하면서 조금씩 살아내는 방법을 배워가는 거지. 어렵게 생각하면 더 어려워지고 쉽게 생각하면 더 쉬어지는 법이니 항상 긍정적으로 자연 안에서 자연의 순리를 배우고 살게나."

요즘 같으면 정말 시골살이를 포기하고 아파트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갈까 생각하고 있다. 도심 월세에 시골 전세에 이중 생활비까지 불필요한 지출이 너무 많다. 괜한 오기와 허세로 남들과 다르게 살고자 했던 게 또 다른 집착이고 탐욕이었지 않나 싶다. 그러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잠언을 되새기며 다시 새봄의 향기를 포용하려 한다. 법정 스님의 맑은 가난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려 한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것이다. 무소유란 불필요한 것을 갖지 말라는 것...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자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태그:#강화도, #강화군청, #교동면사무소, #전입신고, #겨울 시골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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