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쳐

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쳐 ⓒ SBS

 
'학교폭력'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민감한 화두 중 하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극을 소재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몇 년 전에는 배구선수 이다영-이재영 자매에서 시작된 '학교폭력 미투' 운동이 체육계-연예계에서 들불처럼 번지기도 했다.
 
또한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의 투수 안우진은 과거 학교폭력 전력으로 인해 WBC 국가대표 출전이 불발되었고, 메이저리거 출신 추신수는 오히려 안우진을 옹호했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최근 국가수사본부장으로 내정되었던 정순신 변호사는 자녀의 '학교폭력' 사실이 알려지며 여론이 악화되자 부임 직전에 사의를 표명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학교폭력을 더이상 '철없는 시절의 과오나 지나간 해프닝' 정도가 아닌,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이자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 학교폭력으로 인해 끝내 안타까운 죽음까지 맞이해야 했던 또다른 피해자의 잊혀진 이야기는 시청자의 공분을 자아낸다. 지난 2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 1341회 '1216호에 갇힌 진실-정다금 사망 사건' 편에서는 여고생 고(故) 정다금 양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파헤치면서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고발했다.
 
지난 2009년 12월 18일 새벽, 전라남도 화순의 한 리조트에서 한 여학생이 추락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리조트 12층에서 떨어진 학생은 전날 화순으로 체험학습을 왔던 부산 K여고 2학년 정다금 양이었다. 온몸에 골절과 내부장기 손상을 입은 정다금 양은 병원 이송 중 끝내 사망했다.
 
다금 양은 유복한 집안 환경에서 자랐으며 공부도 잘하고 다재다능한 모범생이었다. 유족들은 다금 양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으로 찾아갔을 때 교사들이 "다금이가 술을 먹고 자살을 했다"는 뉘앙스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모친은 "다금이가 왜 자살을 합니까?"라고 반박하며 눈물을 흘렸다.
 
사망한 다금 양의 시신에서는 얼굴에 수상한 멍자국이 발견됐다. 유족은 경찰에 부검을 의뢰한 결과, 혈중 알코올농도가 면허정지 수준이었다는 것과 입 안에서도 상처가 대거 발견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는 추락으로 인한 것과는 별개의 손상이라는 소견이었다. 사고 직전에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었다. 그날 대체 다금 양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경찰은 당초 단순 변사 처리를 하려 했다가, 유족들의 요청으로 재수사에 나섰다. 당시 방에는 다금 양과 4명의 학생들(임가영, 이나은, 최다정, 송라현)이 더 있었고 함께 술을 마셨고 여기서 임가영과 다금 양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가벼운 싸움이었을 뿐 다금양을 폭행하지는 않았다는 게 임가영과 다른 세 사람의 공통된 진술이었다. 그들은 모두 다금 양이 술에 취해 신변을 비관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었던 유족들은 당시 다금 양의 동급생들을 만나 일일이 대화를 녹음해가며 조사한 끝에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임가영 일당이 다금 양에게 억지로 음주를 강요했고, 다금 양이 사망한 이후에도 입을 맞춰서 폭행 사실을 감추려고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재연한 당시의 상황은 이랬다. 다금 양이 술에 취해 잠든 사이에 그의 휴대폰을 몰래 본 임가영은, 다금 양이 친구들에게 자신의 험담을 한 것에 분노했고 자고있던 다금 양을 옆방(1216호)으로 끌고가 폭행했다는 것이다. 임가영은 폭언과 함께 다금 양의 머리채를 잡고 몇번이나 화장실 세면대에 부딪치게 했다.
 
이러한 폭행은 무려 몇 시간에 걸쳐 이뤄졌다고 한다. 다금 양의 모친은 "어마어마하게 큰 비명이 들렸다고 한다. 투신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그렇게 비명을 질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동급생 신소연(가명) 양은 "다금이가 투신하고도 살아있었는데, 당시 옆에 있던 아이들이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다. 나 이렇게 죽으면 안 된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금이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 자기 발로 뛰었겠느냐.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쳐

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쳐 ⓒ SBS

 
다금 양의 사망 의혹과 관련된 당시 1216호 학생들의 입장은 어떨까. 일당 중 한 명인 최다정은 당시 다금 양에게 억지로 술을 권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과음했고, 화장실에서도 폭행은 없었고 물을 뿌렸을 뿐이라고 증언했다. 다금 양의 문자메시지가 다툼의 발단이 된 것은 맞지만 그저 해명을 듣기 위한 자리였고, 정신이 들게끔 세수를 시켜준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또한 사고 직전에는 다금 양이 추락했던 1216호에는 최다정만이 남아있었다. 최다정은 다금 양이 갑자기 베란다로 나가자마자 비명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최다정은 곧바로 옆방으로 달려가 임가영 일행에게 다금 양의 추락 소식을 알렸다. 4인방은 다금 양의 투신 이유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주장했고 다금양의 시신에 남은 폭행 흔적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경찰은 CCTV 등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임가영이 다금 양의 머리채를 잡은 것을 확인했지만, 이 정도로 추락과 인과관계를 연결시키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눈 쌓인 난간에서 다금 양의 발자국이 발견된 것도 누가 민 것이 아닌 스스로 올라갔다는 정황으로 해석됐다.
 
경찰은 임가영에게만 우발적 단순폭행으로 인한 상해 혐의만을 적용시켜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고 다른 일당은 혐의 없음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전수민 변호사는 "통상적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준의 폭행이었고 그것으로 가해 학생에게 사망의 책임까지 물을 수 없다. 가해자인 임가영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부분이다. 폭행 뒤 한참 후에 투신이 이루어져 사망과 폭행 사이에 시간적-장소적으로 단절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경찰의 수사결과를 분석했다. 그렇게 다금양의 죽음은 극단적 선택으로 결론내려졌다.
 
하지만 다금양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납득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금 양 친구들의 증언을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 만일 폭행이 이루어졌다면 1217호 욕실이 아닌 다금 양을 데리고 온 1216호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문제는 그 시간-그 장소에 다른 증인없이 오로지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만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리조트에서 근무했던 제보자는 다금 양이 사망한 날 고층 베란다 위에서 여자들이 격앙된 목소리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로부터 약 10분 정도 뒤에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제보자는 당시 들은 말투가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기 보다는, 장난치며 낄낄대는 소리였다고 증언했다. 다금 양이 투신한 이후, 제보자는 불과 몇 분 전까지 베란다에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갑자기 추락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다른 학생들도 새벽에 추운 날씨에 굳이 베란다로 나와야 이야기를 해야할 이유가 있는지 의구심을 제기했다.
 
제작진은 당시 다금 양이 추락하던 현장 상황을 3D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했다. 전문가들은 족적의 위치와 시신의 상태 등을 근거로 일단 다금 양을 누군가가 떠밀어 추락시켰을 가능성은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다금 양의 몸이 베란다 밖으로 나와서 손으로 잡은 상태에서 오른쪽 손을 먼저 놓아버렸을 때 다금 양이 발견된 곳과 추락 지점이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누군가가 다금 양의 손에 외력을 가해 추락시켰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다금 양의 친구들은 당시 다금 양의 핸드폰 속 문자를 확인한 임가영이 했던 말을 증언했다. 다금 양은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임가영은 "뭘 어떡해, 나가 뒤지든지. 학교 가서 아는 척도 하지 마라"라는 폭언을 했다고 한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쳐

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쳐 ⓒ SBS

 
임가영과 다금 양은 어떤 관계였을까.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다금 양은 학기초에는 친구들과 서먹한 관계였다고 한다. 혼자 다니던 다금 양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임가영이었다. 학급 내에서 영향력이 있던 임가영은 4인방의 리더 격이었다. 다금 양은 임가영과 가까워지면서 4인방 모두와 친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정상적인 친구 관계와는 달랐다. 임가영은 다금 양에게 무리한 일을 요구하는가 하면 물건을 빼앗거나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다금 양의 어머니는 다금 양이 내색을 하지 않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체험학습을 가기 싫어했다고 증언하며 눈물을 흘렸다.
 
또한 임가영은 이미 초등학교 때도 학교폭력을 저지른 전력이 있는 가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제보자들은 동생을 보는 앞에서 피해자를 구타하거나, 다른 학생과 강제로 싸움을 붙이고 즐거워하는 등, 교묘하게 악독했던 임가영의 만행들을 폭로했다. 임가영에게 당했다는 피해자는 한두 명이 아니었고 지금까지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문가인 김태경 상담심리학 교수는 "임가영이 1216호에 정다금을 데려가놓고 혼자만 1217호로 돌아온 것은 목적이 있다. 임가영이 여기서 폭탄을 던져놓고 옆방으로 피한 것이다. 그 폭탄이 무엇일까. 그건 이 아이들이 그 방에서 다금 양에게 했던 행동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김 교수는 가장 마지막 목격자인 최다정이 다금 양의 투신 이후 곧바로 임가영을 찾은 것을 주목했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112에 신고하거나 선생님을 찾는게 정상이다. 몸이 없어도 임가영의 영향력이 그 방안에 미치고 있었고, 그래서 최다정은 임가영에게 사실을 알려야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당시 관련자 4인방은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4인방은 각자 가정을 꾸리거나 평범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제작진은 이나은, 송라현 등을 찾아가 직접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모두 취재를 거부했다. 그들은 다금 양이 자살했다고 주장하며 친분관계와 폭행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주동자로 거론되는 임가영은 개명을 하고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임가영은 제작진의 지속된 연락 시도에도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임가영은 사건 직후 다금 양 모친과 대화를 나눈 녹취록에서 "다금이를 친구로 생각했다. 머리채를 잡거나 나가 죽으라고 한 사실도 없다"고 부인했다.
 
전문가인 도진기 변호사는 경찰 초기 수사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중요한 건 투신하기 10분 전 상황이다. 가해 학생들의 진술을 나노 단위로 아주 세밀하게 받아서 검증했어야했다"고 지적했다. 도진기 변호사는 "사망할 때 현장에 가해 학생이 없었고 그 당시에 폭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과관계를 부인했다. 경찰이 이를 세세하게 조사하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더구나 제작진은 사고 당시 교사들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했던 정황을 포착했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입단속을 지시하며 오히려 가해자들을 비호하려는듯한 모습까지 보였다고. 제보자들은 당시 교사들이 학생들의 주류 반입이나 음주단속도 제대로 하지 않고 오히려 학생들과 같이 술을 먹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담임과 생활지도교사는 임가영이 어떤 학생인지 몰랐고 은폐 의혹은 사건을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를 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피해사실을 밝혀내는 것보다는 사건이 커지는 것을 회피하는 데만 급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담당 교사들은 사건 당시 모두 경고 조치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전문가들은 교사들이 피해자를 보호한 게 아니라, 피해자를 오픈했다고 지적하며 정다금 양에게는 학교와 교사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승혜 아동청소년문제연구소 대표는 "남들이 봤을 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생각할만큼 처절한 고통이었다는 걸 몰랐던 것"이라고 당시 어른들의 무책임한 행태에 일침을 날렸다.
 
남겨진 유족과 친구들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시간을 돌려서 정다금 양을 지켜주지못한 죄책감과 회한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해자들과 그 공범들이 가장 느껴야할 감정을 애꿎은 이들이 대신 치르고 있는 셈이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다금 양을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가 밝혀진다면 형사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형법 252조 '위력에 의한 살인'은 다른 살인죄와 마찬가지로 공소시효가 없다.
 
최근 <더 글로리>가 큰 화제와 인기를 모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망가지는 일은 흔하고, 가해자들은 제대로 처벌받는 일은 드문 현실에서 이런 복수극이 대리만족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도 할수 없는 고통에 지금까지도 시달리고 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가해자들에 대한 엄벌 못지않게 그날 1216호에 갇혀버린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다. 그것이 말 못하는 피해자와 그날의 상처로 아직까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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