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TAR 타르> 스틸컷

영화 스틸컷 ⓒ TAR 타르

  
세계적인 영향력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최초 수석 지휘자 타르(케이트 블란쳇)는 보수적인 남성 사이에서 여성이자 소수자로 업적을 이뤘다. 오랫동안 금기처럼 여겨진 남성의 전유물인 권력의 틈을 깨고 당당히 입성했다. 그래서일까. 스스로도 여성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중성적인 외모와 스타일은 남성과 닮아있다. 본인을 아빠로 소개하는 그런 인물이다.
 
남성 중심의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고 있다. 일과 사랑, 가정을 동시에 잡은 완벽함을 겸비했다. 겸손, 자비, 명석함을 갖춘 최고의 지휘자로 불린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자 일터에서는 완벽한 괴물로 하는 천재가 리디아 타르다.
 
타르는 클래식의 대중화에도 힘쓰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힘들었을 전 세계인을 위해 무료 음원, 공연, 자선 사업을 추진한다. 후학 양성을 위한 대학 강연도 다닌다. 학생들에게 늘 당부한다. 지휘자는 속마음을 말할 줄 알아야 하며, 좋은 지휘자가 되려면 작곡가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이라면 겉과 속이 다름을 알고 있다. 권력형 비리, 나르시시즘, 꼰대 근성도 가졌다. 은근한 무시와 우월감은 지나칠 정도다. 음악인의 도덕성과 윤리성을 강조하지만 말과 행동이 다른 인물이다.
 
주변이 모두 참고 있다. 일터에서는 비서 프란체스카(노에미 메를랑), 가정에서는 파트너 샤론 (니나 호스)이 대상이다. 최근 둘 모두에게 신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의 메일로 인해 위기는 현실이 되어간다. 악의적인 동영상 편집으로 캔슬 컬처를 당하고 설자리를 잃어가게 된다.
 
성공한 지휘자의 침잠하는 추락
  
 영화 <TAR 타르> 스틸

영화 스틸 ⓒ 유니버설 픽쳐스

 
< TAR 타르 >는 정점에 오르는 과정이 아닌, 추락하는 이야기다. 그것도 조금씩 고통스럽게 조여온다. 조용히 추락 과정을 들여다보는 잔인함이 우아하면서도 날카롭게 진행된다. 감독의 연출과 편집의 힘일 테지만 <타르>는 무엇보다 배우가 이끌어가는 힘이 크다.
 
케이트 블란쳇 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연기는 점차 히스테릭해지는 인물을 동정하게 만든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실존 인물인 것처럼 메서드 연기를 선보인다. 공연장의 공기마저 휘어잡는 카리스마, 집중력을 선보이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눈빛의 '리디아 타르'에 완벽 빙의했다. <캐롤>에서 동성연인을 사랑하는 복잡한 눈빛과 <블루 재스민>의 신경쇠약적인 모습을 섞은 캐릭터 분석력이다.   
 
실제로 오케스트라 지휘 영역은 영화와 다르다. 아직 여성 지휘자를 허락하지 않는다. '안토니오 브리코'가 있었지만 객원 지휘자에 머물렀을 뿐이다. 뚫기 어려운 유리천장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 <더 컨덕터>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어 함께 보기 괜찮은 전기 영화다.
 
윤리와 재능은 분리될 수 있나?
  
 영화 <TAR 타르> 스틸컷

영화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비선형적 서사구조로 불친절한 이야기다. 불안한 심리묘사조차 매우 상징적이다. 클래식 관련 정보도 홍수처럼 쏟아진다. 전공자 거나 관심이 많은 마니아가 아니라면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가 많다. 고도의 집중도를 요하며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초반부터 타르가 얼마나 고매한 인물인지를 그리는 데만 한 시간 이상을 할애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왕관의 무게를 버거워 하는 신경질적 심리를 다각도로 그려낸다. 가깝게 지내던 크리스티나의 사망 후 극심한 정신적 이상 증상을 경험한다. 환영, 환청이 들리고 작은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소포니아가 진행된다.
 
이름 TAR를 뒤집어 보면 RAT이 된다. 감독의 의도한 건지 모르겠지만 의미심장하다. 타르는 담배의 원료로 인체에 해로운 물질을 뜻한다. 성공은 연기처럼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는 허상처럼 느껴진다. 쥐구멍이라도 숨기 위해 외국으로 도망친 타르의 우스꽝스러운 그 모습은 마지막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허구의 인물이지만 권력과 인기에 취해 헛발질 한 수많은 인물이 겹쳐 보였다. 몇 해 전 성 추문으로 미투 운동을 촉발한 영화 제작자와 최근 시끄러운 한 배우의 사생활이 떠올랐다. 어렵게 쌓아 올린 커리어와 대의를 망친, 수긍할 수 없는 도덕성의 불일치 말이다. 과연 예술가의 윤리성과 재능은 분리될 수 있을까? 위대한 사람의 업적과 타락한 내면은 별개로 봐야 하는가? 극장을 나서자 여러 질문이 고개를 들자 복잡한 마음은 더해가기만 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장혜령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TAR 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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