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망우리공원에 귀환한 도산선생 묘비, 2016년 2월에 촬영했다.
 망우리공원에 귀환한 도산선생 묘비, 2016년 2월에 촬영했다.
ⓒ 이혁진

관련사진보기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도산 안창호 선생(1878-1938)이 서울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에 묻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도산공원에 도산 선생 묘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2월, 도산선생 묘비가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에서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귀환한 지 50년을 맞는다. 

1973년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이 개원하면서 도산의 유해와 묘비는 도산의 부인인 이혜련 여사 유해와 도산공원에 합장했다. 이후 당시 망우리 공동묘지(망우역사문화공원) 도산 선생 묘터에는 '도산선생 묘지터'라고 조그만 비석이 대신 세워졌다.

도산공원 도산 묘비는 2005년 한글 묘비로 새로 바뀌고, 기존의 묘비는 도산공원 내 도산기념관 지하창고에 보관됐다. 보관 중이던 묘비는 2016년 2월 망우역사문화공원 여상규 선생 묘지 옆으로 다시 왔다. 흥사단과 도산기념사업회가 묘비 귀환을 추진한 것이다.

도산은 서거 당시 망우리 공동묘지 태허 유상규(1897-1936) 지사 묘소 옆에 묻혔다. 유 지사는 3.1운동에 참여하고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도산의 비서관으로 활동했다. 도산이 세운 흥사단 멤버로도 활약했다.

도산은 1937년 흥사단 국내지부 격인 수양동우회 사건의 고문 후유증으로 1938년 3월 10일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지금 서울대 병원)에서 숨을 거두기 전 유 지사 묘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도산과 사제지간이기도 한 태허는 경성의전 외과의사로서 세균 감염으로 젊은 나이에 타계했지만 생전에 도산을 어버이처럼 섬겼다.

태허가 1936년 작고했을 때 도산이 그의 장례를 주관했을 정도로 둘 사이는 각별했다. 2년 후 도산 역시 죽어서도 태허를 정신적 아들이자 동지로 생각했다. 당시 도산선생의 장례는 일제 감시하에 극비리에 치러졌다. 일본은 요시찰 인물인 도산의 사망이 조선인들에게 분노를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서거 당시 도산 유가족은 국내에 없었다. 이에 도산이 자식 같이 사랑한 태허 곁에 묻히길 원한 것은 어쩌면 운명적이라 할 수 있다.

사제지간은 사제지묘로 이어져
 
망우역사문화공원에 귀환한 도산선생 묘비. 제막식 이전에 촬영한 사진이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 귀환한 도산선생 묘비. 제막식 이전에 촬영한 사진이다.
ⓒ 이혁진

관련사진보기


현재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도산선생 묘지터와 귀환한 묘비가 함께 있다. 도산과 태허 묘는 떨어져 있지만 묘비로써 '사제지간'이 '사제지묘'로 다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도산과 태허의 관계를 증명하는 일화가 많다. 유 지사는 아들 이름에 도산의 필명(山翁)에 들어간 '옹'(翁) 자를 넣을 만큼 도산을 존경했다. 태허 장남 옹섭씨는 어릴 때 어머니 따라 도산 병문안을 간 적도 있다.

태허 비석은 1990년 고인이 뒤늦게 건국훈장을 받은 후 새로 세워졌다. 훈장 또한 아들 옹섭씨가 제출한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추서됐다. 옹섭씨는 부친 묘와 함께 도산 묘도 돌보았다. 2007년에는 국가보훈처로부터 부친의 현충원 이장 허가를 받았지만 도산선생에 대한 부친의 마음 때문에 이장을 취소했다. 옹섭씨는 도산묘터 복원에 힘쓰다 2014년 별세했다.

한편, 필자는 1973년 11월 대학 1년생 흥사단 멤버로서 도산공원 도산선생 이장 운구요원으로 활동했다. 유감스럽지만 그때 도산과 태허 두 분의 깊은 인연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2016년 도산묘비가 망우역사문화공원에 귀환할 때도 필자 또한 그곳에 있었다. 이때 흥사단 멤버들이 태허 묘를 찾아 참배한 것은 물론이다. 생각해보면 태허야말로 도산의 아들이며, 제자이자 영원한 비서관이다.

도산 묘비는 망우역사문화공원과 도산공원 두 곳에 있지만 특히 망우역사문화공원 묘비는 태허 유상규 지사와의 특별한 인연을 상징하는 묘비다.

요즘 사제지간이란 말은 좀처럼 들을 수 없다. 100년 전 도산과 태허 두 독립운동가의 자식보다 더 가까운 사제지간이 새삼 돋보인다. 망우역사문화공원 도산묘비에는 도산을 칭송하는 말씀이 새겨져 있다.

"생각이 곧아 거짓이 없으며, 사랑으로 사람을 사귀어, 춘풍 같은 온화한 기운을 펼치게 했다."

오늘따라 거짓 없는 평화로운 나라가 되길 바라는 도산의 뜻이 그립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게재할 예정 입니다.


태그:#도산선생, #도산 안창호, #태허 유상규, #망우리공원, #도산공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