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피터 본 칸트> 속 동성애는 한낱 장치일 뿐 뮤즈를 향한 보편의 욕망을 보여준다. 1972년 독일 쾰른, 유명 감독 피터(드니 메노세)는 칩거하며 새 작품을 구상 중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얼마 전 이별한 프란츠 때문에 힘들어하는 중이기 때문. 동거 중인 어시스턴트 칼(스테판 크레폰)의 극진한 수발에도 성에 차지 않는 피터의 요란한 심리 변화는 극에 달한다.
 
첫 작품을 작업했던 뮤즈이자 친구 시도니(이자벨 아자니)의 등장으로 겨우 힘을 얻는다. 그녀에게 신나게 헤어진 연인을 물어뜯었더니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도니와 함께 온 23살 청년 아미르(칼린 벤 가르비아)에게 첫눈에 마음을 빼앗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죽어있던 활력이 생겨났다. 광기에 사로잡혔던 피터는 어디 가고, 사랑에 빠진 과잉된 피터가 되살아났다.
 
사랑의 노예가 되어버린 유명 감독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새로운 영감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뮤즈와 예술가의 관계 이상으로 발전한다. 피터의 끝없는 집착으로 극명한 상하관계가 형성된다. 페르소나에 잠식된 신경쇠약 직전의 남자. 피터는 1분 1초도 아미르 없이는 살아갈 의미를 찾기 힘들어진 상태가 되어간다.
 
성공한 영화감독이지만 사랑 앞에 바보가 되어버리는 피터는 싱그러운 아미르에게 빠져 허우적거린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아름다움을 지닌 아미르에게 권력과 욕망을 뻗치며 다가간다. "널 스타로 만들어 줄게."
 
그렇게 둘은 잡지 1면을 장식하며 초신성과 유명 감독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다. 하지만 9개월 뒤 자유로운 영혼 아미르는 자신을 독점하려 드는 피터에게 염증을 느낀다. 이를 알아차린 피터는 아미르를 향해 관심을 갈구하지만, 이미 마음이 떠나 피터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결국, 권력의 추가 크게 기울어버린 관계는 파국을 맞이한다. 성공한 아미르는 피터를 가차 없이 버린다. 믿었던 연인의 배신으로 만신창이가 된 피터는 극심한 상처와 우울감에 젖어 스스로를 망치는 일에만 열중한다. 생일을 축하하러 온 딸과 어머니에게 주워 담지도 못할 거친 말을 내뱉으며 상황을 험하게 몰아간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불안과 슬픔이 잠식하며, 상실감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사랑에 빠졌고 시련 당해 분노와 허무 사이를 오가는 피터를 조용히 바라보는 칼은 관찰자이자 관객의 시선이다. 극한 자해를 반복하는 피터는 마초적인 외형과는 상반된 촉촉한 눈망울과 징징거림으로 시종일관 불안에 떨고야 만다. 사랑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만 거듭되어 간다.
 
존경하는 감독을 향한 러브레터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영화 <피터 본 칸트>는 사랑 앞에 무너지고 마는 권력관계를 유머러스하게 풍자하고 있다. 프랑스의 거장이자 악동으로 불리는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근친상간, 신성모독 등 금기를 넘나들며 날 선 풍자와 거침없는 이야기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번에는 코로나 시대에 만든 영화답게 한정적인 실내극으로 연극적인 요소가 뛰어나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이 개봉한 1972년을 배경으로 설정하면서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풍긴다.
 
평소 "파스빈더는 나에게 영화의 큰형과 같은 존재였다"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파스빈더의 외형과 비슷한 드니 메노세를 캐스팅해 몰입도를 높였다. 디자이너와 모델을 영화감독과 배우로 설정하고, 성별까지 바꾼 위대한 오마주를 선보인다. 특히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에서 모델을 연기한 한나 쉬굴라를 피터의 어머니로 캐스팅하면서 재미를 더한다. 눈이 아릴 듯한 집안 인테리어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풍이라 더욱 반갑다.
 
하지만 이런 정보를 알지 못하더라도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읽힌다. 감독과 배우 등 성별을 떠난 보편적인 관계의 권력관계로 보더라도 흥미로운 영화다. 사랑에 빠지면 이성을 잃고 마는 강렬함, 마약과도 같은 중독, 이별의 상처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보여준다. 집 안에서만 벌어지는 연극적인 연출과 미장센의 조합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하나의 캐릭터라고 볼 수 있는 피터의 집부터, 개성 강한 캐릭터의 향연이 돋보이는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장혜령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피터 본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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