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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 2.18안전문화재단 이사가 딸 지은씨의 대학 졸업식때 함께 찍은 사진. 지은씨는 지난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화재참사로 생명을 잃었다.
 윤근 2.18안전문화재단 이사가 딸 지은씨의 대학 졸업식때 함께 찍은 사진. 지은씨는 지난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화재참사로 생명을 잃었다.
ⓒ 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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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늦게 전화가 왔어요. 지은이가 연락되지 않는다고..."

윤근(76) 2.18안전문화재단 이사는 20년 전 대구지하철참사로 사랑하는 딸 지은(당시 25세)씨를 잃었다. 지난 10일 대구 신천동 2.18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세월이 꽤 흘렀음에도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3시간여 인터뷰에서 윤 이사는 세월호·이태원 참사를 보며 느낀 무력함, 정부를 향한 불만을 쏟아냈다. 동시에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희생자 유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일방적인 모욕감을 언급하며 이 사회가 "참사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다"고 씁쓸해했다. 

하루만에 깨끗이 지워진 참사의 흔적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1079호 전동차가 대구 중구 중앙로역에 진입하는 순간 한 남성이 신변을 비관해 전동차 안에서 4리터가량의 석유에 불을 붙였다.

차량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이 남성을 저지하려 했지만 석유를 담았던 통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전동차는 불길에 휩싸였다. 맞은편에서 들어오던 1080호 전동차가 중앙로역에 멈췄고, 문이 열리자 연기가 빨려 들어왔다.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을 당한 대구지하철참사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됐다.

윤 이사는 당시 경남 창녕에서 재활용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줄도 몰랐다. 저녁 늦게 지은씨 동생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은씨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동구 신천동의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교사가 꿈이었던 딸은 학원 강의를 마친 뒤 신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중앙로역에 내려 고시학원에 다녔다.

그런 지은씨가 참사가 발생한 날 오전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동생들은 지은씨를 찾으러 학원에 갔지만 만나지 못했다. 지은씨가 타고 다니던 자가용은 경부선 철로 옆 주차공간에 있었다. 동생들은 지하철을 타고 가다 사고가 났다고 직감했다. 저녁 늦게서야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전화로 알렸다.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참사를 빚은 지하철 전동차 내부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참사를 빚은 지하철 전동차 내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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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와 대구지하철공사는 참사 당일 저녁 1079호와 1080호 열차를 월배차량기지로 옮긴 뒤 다음 날인 2월 19일 군인 200여 명과 중장비를 동원해 사고 현장을 치우고 물청소했다.

"(대구시·대구지하철공사가) 한심한 게, 주민등록증·지갑 등 유류품들을 다 쓸어버렸어요. 누가 흘린 게 아니라 사고자들의 유류품이 분명한데 다 쓸어버려 참담했습니다."

그는 사고 차량의 열기가 너무 높아 사망자들의 DNA 감식도 어려울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실종자 확인 방법이 전화통화 내역이나 지하철역에 설치된 CCTV, 유류품밖에 없었어요. 실종자 가족들이 유골이라도 확인하는 모습을 보면 부러웠어요. 내 딸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애만 타고..."

윤 이사는 그해 4월이 돼서야 딸의 시신을 대구 동구 안심차량기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참사가 발생한 지 두 달여만이었다. 그는 "기지에 쌓여 있는 300여 개의 포대를 뒤져서 딸의 시계와 팔찌, 자동차 열쇠, 안경테 등 몇 가지를 확인했다"라며 "딸의 DNA를 확인하기 위해 채혈하고 유류품과 사진을 대조해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딸의 하반신은 이미 타 버려 상반신만 조금 남아 있었다.

대구시는 그해 유니버시아드 대회(8월)를 앞두고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압박했다. 두류공원 야외공연장에서는 조수미씨를 불러 유니버시아드 성공 기원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유족들은 공연장을 찾아가 "당신들은 그날을 기억하느냐"고 울부짖었다.

유족들은 결국 대구시의 제안을 받아들여 2003년 6월 29일 합동영결식을 치렀지만 윤근 이사는 딸의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 그는 대구시에 추모공원 조성과 추모재단 설립 약속을 지키라며 딸의 장례를 미뤘다.

오래 버티진 못했다. 합동장례식이 끝나고 한 달 뒤 지은씨의 장례를 치렀다. 윤씨는 "한 달 동안 딸을 냉동고에 더 머물게 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면서 속상함을 드러냈다.

기록이 증명한 진실
 
윤근 2.18안전문화재단 이사가 지난 10일 대구지하철참사 대책위 가족들과 함께 대구시립묘지에 묻혀 있는 무연고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윤근 2.18안전문화재단 이사가 지난 10일 대구지하철참사 대책위 가족들과 함께 대구시립묘지에 묻혀 있는 무연고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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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이사는 다른 희생자 유족들과 함께 지난 2009년 10월 27일 새벽 3시 대구시립추모의집에 안치돼 있던 32명의 골분을 한지에 싸서 팔공산에 있는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안전상징 조형물 인근에 묻었다. 대구시와 '안전테마파크에 유골을 모시자'는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것.

그는 "대구시와 대책위가 추모탑을 실질적인 위령탑으로 하기로 합의했다. 안전테마파크 주변 상인들이 추모탑 건립과 유골 안장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강병규 부시장과 윤석기 위원장이 아무것도 안 한다는 거짓 기자회견을 했다. 추모탑을 추진하기 위해 극비리에 보안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희생자를 상징해 심은 192그루의 나무 가운데 고사목이 생겼고, 재식재를 한다는 명분으로 대구시가 미리 이들을 묻을 곳을 파두었다. 안전테마파크 담당자도 CCTV를 다른 쪽으로 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1년 후 대구시에 암매장 투서가 날아들었다. 시는 '암매장 사건을 조사해 달라'며 대구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대구지검은 윤석기 희생자대책위 위원장과 황순오 전 사무국장을 유골 암매장 혐의로 기소했다. 2년이 넘는 법정 공방 끝에 2013년 9월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윤 이사는 "대구시는 희생자대책위와 이면합의를 했는데 결국 모르는 체했다. 도덕과 양심이 없다. 너무 속상하고 안타까웠다"고 회상했다.

"지은이가 '아빠, 컴퓨터 하나 사서 배우세요' 했어요. 그때는 한마디로 거절했는데 사고 후 중앙로역에 조해녕 시장과 윤진태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논란이 된 적 있어요. 자기들은 없었다고 발뺌하고 거짓말하는데 당시 MBC 뉴스에 두 사람이 나온 사진이 보도된 게 있었어요. 그때부터 결심했어요."

윤 이사는 딸이 사망한 후부터 사고 현장과 대구시 등과의 면담, 희생자대책위 활동 등을 사진과 영상, 녹음으로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벌써 20년째다. 그는 디카(디지털카메라)와 녹음기, 캠코더를 사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녹음했다.

대구시와 싸우면서 누군가 기록을 증거로 남겨야 한다고 깨달았다. 그는 희생자대책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기록할 수 있게 된 게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CD에 저장하고 인터넷 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그동안 컴퓨터도 몇 번 바꿨다. 그러다 외장하드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기록이 중복되고 뒤죽박죽이 되기도 했지만 지울 수는 없었다. 지금은 조금씩 정리해가며 날짜별, 목록별로 기록하고 있다.

이런 끈질긴 노력이 결실을 내기도 했다. 암매장 사건으로 대법원까지 갔을 때 그가 기록한 동영상과 녹음파일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윤 이사는 "내가 담아둔 기록을 통해 진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보며 퇴보 느껴... 국가가 외면하고 있다"
 
중앙로역 기억공간, '지은아 보고 싶구나'라고 쓴 글이 있다.
 중앙로역 기억공간, '지은아 보고 싶구나'라고 쓴 글이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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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참사 이후 다시 몇 번의 참사가 반복됐다. 윤 이사는 "'우리 손으로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약속했고, 불쏘시개 전동차에서 안전한 전동차로 만들게 됐다는 자부심도 느꼈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를 수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퇴보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진도 팽목항 갔을 때 봤더니 우리가 지나온 과정을 (세월호 유족들이)똑같이 밟아오고 있었다. 젊은 부모들이 고생을 안 하길 바랐는데 우리보다 더 고생했다"라며 "그런데 이태원은 세월호보다 더하다. 국가가 외면하고 있다. 자식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에 공감하는 모습이 하나도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태원 참사도 그렇고 대형 참사가 날 때마다 우리 가족들은 중앙로역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때 '위장 조문'이라도 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유족의 손을 잡아주길 거부한다. 얼마나 퇴보한 것이냐. 참사에서 교훈을 갖자고 하면서 신경을 안 쓰면 (재난 예방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윤 이사는 "이게 나라냐. 국가는 없었다. 뻔뻔하다. 예전에는 부끄러움이라도 알았지만 지금은 부끄러움조차도 없다"고 정부를 맹비난했다. "위정자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 아무리 전문가들이 참사에서 교훈을 찾고 미래 참사를 예방한다고 하지만 지하철참사에서 찾은 교훈은 어떻게 됐나. 세월호에서 찾은 교훈은 어떻게 됐나. 아무 것도 없다. 백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도 지적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의 백서는 휴지조각으로 제지공장에서 폐기해야 한다"면서 "생명에 대한 중시, 유족에 대한 애틋한 측은지심, 그런 마음이 없이 어떻게 향후에 또 다른 재난이 닥친다면 예방할 수 있겠나"라고 물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사고 없는 세상을 만들어보자, 안전한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자는 바람으로 노력해왔다"며 "우리가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 이유 역시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태그:#대구지하철참사, #윤근, #희생자대책위, #2.18안전문화재단,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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