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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건강검진을 주로 하는 의사이다 보니, 치료를 필요로 하는 분들보다는 크게 병원 갈 일이 없는 분들을 더 많이 보게 됩니다. 하지만 건강했던 분들도 고된 일에 몸이 상해서, 나이가 들어서 치료가 필요한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의 질환을 확인하고 잘 말씀드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저의 중요한 일과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 중, 십중 팔구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약 꼭 먹어야 하나요? 한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던데, 부작용은 없나요? 술, 담배 끊고, 체중 줄이면서 좀 지켜볼게요. 약 말고 건강 보조 식품으로 해결할 수 없을까요? 아무 증상도 없는데 왜 먹죠?"

큰 문제 없이 건강했던 상태에서 이제 치료가 필요할 만큼 이상이 생겼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마음도 있고, 병원에 가거나 약 먹는 게 귀찮거나 불편하기도 할 거고, 부작용이 걱정되기도 하는 마음은 이해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약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거부감이 자리 잡은 듯합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약은 되도록 쓰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습니다. 그것이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의 약자)'라는 극단적 형태의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 적절히 치료받아야 할 아이들이 치료를 못 받아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네. 이제 좀 드셔야겠어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약을 먹기 시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표적으로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은 지금 당장 증상이 없더라도 서서히 몸을 상하게 하는 질환이기 때문에 증상이 없을 때부터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약은 걱정하는 것과 달리 복용법도 매우 간단합니다.

약 복용, 적절한 시기에 시작해야... 힘들 땐 진통제도 좋습니다

모든 약은 '1일 3회 매 식후 30분' 복용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상당히 많은데 고혈압, 이상지질혈증은 하루 한 번 식사와 상관없이 한 알만 먹어도 대부분 조절이 가능합니다. 비타민이나 건강 보조 식품 먹는 것만큼 간단하지만 건강에 대한 효과는 훨씬 큽니다. 또한 평생 먹어도 부작용이 없을 정도로 안정적인 약물이 이미 사용되고 있습니다.

술, 담배를 끊고 체중을 줄이는 것으로 노화의 일종인 만성 질환을 완벽히 조절하기는 매우 힘듭니다. 물론 생활 습관 관리도 함께 시작해야 하겠지만, 술, 담배, 좋아하는 음식을 그대로 즐기겠다면 약이라도 꼭 먹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적절한 때 시작하지 못한 약물치료는 나중에는 더 많은 약 복용과 더 힘든 치료를 필요로 할 수 있습니다.
 
필요할 때 쓰는 적절한 약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데 중요합니다.
 필요할 때 쓰는 적절한 약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데 중요합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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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땐 진통제라도 드셔야 해요."

수많은 노동자를 만나다 보면 "통증 때문에 잠도 못 자요"라고 호소하는, 다양한 통증으로 인해 고생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매일 반복되는 단순 작업으로 생기는 퇴행성 관절염, 각종 인대염, 근육통은 물론이고 오래 앉거나 서서 생기는 요통, 사무직에서 많이 호소하는 목과 어깨 통증, 두통 등 몸의 수많은 부위에서 대부분 한두 가지씩 통증을 호소합니다. 통증 대부분은 좋지 않은 자세로 너무 오래, 많이 일해서 생기기 때문에 작업 환경을 개선하거나 충분한 휴식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진통제 많이 먹으면 안 좋다던데요? 나중에 수술할 일 생기면 마취가 안 돼서 고생한다던데요? 진통제 먹어도 그때뿐이고 치료가 안 되잖아요. 약 안 먹어도 좀 쉬면 나아지겠죠."

간혹 심한 통증이 있지만, 진통제 먹기를 꺼리시는 분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약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거부감 때문에 좀 쉬면 나아질 거로 생각해 그냥 버티는 경우로 볼 수도 있습니다.

약에 대한 막연한 공포 버려야... 적절한 진통제 사용은 삶의 질에 도움 

하지만 아플 때 적절한 진통제 사용은 큰 도움이 됩니다. 외국 영화를 보면 두통 때문에 머리를 감싸 쥐면서 세면대 위 서랍이나 주머니에서 약통을 꺼내 물도 없이 씹어 먹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외국은 약물 오남용이 심하구나'라고 생각되는 장면일 수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진통제의 용도에 맞게 먹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통증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삶의 질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합니다. 충분한 휴식과 여가 시간 운동으로 잘 관리된 상태라면 통증을 예방하거나 호전시킬 수 있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적극적으로 진통제를 사용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흔히 발생하는 근골격계 통증이나 두통 등에 자주 쓰이는 약은 크게 타이레놀과 소염진통제(NSAID,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가 있습니다. 모두 의사 처방전 없이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구매가 가능할 정도로 안전한 약으로 하루에 한두 번 정해진 용량만큼, 먹는 상황에서는 문제가 없습니다. 아픈 부위에 직접 바르는 진통제나 붙이는 파스 종류도 안전하므로 함께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진통제들은 수술 시 마취나 극심한 통증에서 사용되는 약품과 작용 기전이 전혀 다르기에 자주 사용한다고 해도 수술과 관련한 문제가 생길 일도 없습니다.

많은 통증이 충분한 휴식과 찜질 등으로 약물 치료 없이도 나아질 수 있지만, 통증으로 인해 주변 근육이 더 수축하거나 염증이 오래 지속되면 통증이 더 심해질 수 있어서 무작정 기다리는 것보다 진통제를 통해 통증을 줄여주면서 휴식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간혹 단순 몸살감기에 다섯 가지 넘는 약을 처방하면서 '1일 3회 매 식후 30분'마다 복용하라는 약 봉투를 보다 보면 약에 대한 거부감을 의사들이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또한 그런 현실을 이용해 약에 대한 거부감을 조장하고 자신의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나 건강 보조 식품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필요할 때 쓰는 적절한 약은 하루 한 번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내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일 수 있습니다. 고된 노동 환경 탓에 더 빨리 찾아오고 더 관리되지 않는 만성 질환,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통증들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에게 노동 현실의 혁신적인 개선이 우선되어야 하겠습니다만 그와 함께, 필요할 때 쓰이는 적절한 약의 사용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빌어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권종호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으로, 직업환경의학전문의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에도 실립니다.


태그:#약, #만성_질환, #건강_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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