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목사라는 이가 있었다. 이름보다는 자인 자공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자공은 공자의 손꼽는 제자 가운데 하나로, 그와 얽힌 일화가 많다. <사마천> 사기에 따르면 그는 큰 부자로 일가를 일궜는데,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재상을 지냈고 집에 천금을 쌓아둘 만큼 성취가 있었다고 한다.
 
실력이 있고 언변이 뛰어나며 돈이 많은 데다 따르는 이까지 있는 성공한 사내를 시기하는 이 없었을 리 없다. 그가 재상을 지낸 위나라엔 극자성이란 대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자공을 이렇게 깎아내렸다 한다.
 
"군자가 바탕이 좋으면 될 일이지, 겉치레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를 들은 자공이 남긴 말은 일찍이 공자가 그에게 가르친 것이다.
 
"무늬가 바탕을 이루고 바탕 또한 무늬를 이룬다.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에 털이 없다면 개나 양의 속가죽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자공의 이 같은 일화는 그대로 예술과도 통한다. 무늬는 바탕만큼, 바탕은 무늬만큼 중요하니, 예술에 있어 내용과 형식 가운데 어느 하나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서치 포스터

▲ 서치 포스터 ⓒ 소니픽처스코리아

 
무늬는 바탕만큼, 형식은 내용만큼
 
2017년 작 <서치>는 스릴러의 형식이 얼마만큼 감상을 증폭시킬 수 있는가를 입증한 작품이다. 잃어버린 딸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그 기본적인 얼개는 10년 전인 <테이큰> 이후 수두룩하게 쏟아져온 아버지의 딸 구하기 영화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세상 많은 작품들이 <테이큰>의 아류쯤으로 불리는 가운데, <서치>는 그와는 전혀 다른 입지를 얻었단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말하자면 <서치>는 새로운 영화다. 그 새로움은 내용이 아닌 형식, 바탕이 아닌 무늬에 있다.
 
데이빗(존 조 분)은 딸 마고(미셸 라 분)를 홀로 키우는 아버지다. 아내 파멜라(사라 손 분)가 떠난 뒤 데이빗과 마고 사이엔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서로를 가까이 대하지 못하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부녀,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 마고는 어느덧 고등학교 학생이 되었다.
  
서치 스틸컷

▲ 서치 스틸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부녀의 균열로 영리하게 파고든다
 
데이빗은 속으로 아내를 그리워하며 제가 겪는 어려움을 바깥에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저는 마고를 지켜야 하는 아버지이고 가장이니까. 그러나 딸 마고에겐 함께 어머니를 그리워할 가족이 필요했던 것일까. 갈수록 멀어져가는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영화는 무척 섬세하게 잡아낸다.
 
영화는 어느 날 갑자기 마고가 사라져버리는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마고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데이빗이 그녀의 뒤를 캐며 영화는 속도를 낸다. 제게는 매주 간다고 한 피아노 교습을 벌써 6개월 째 건너뛰었단 사실을 확인한 뒤 데이빗은 충격에 휩싸인다. 심지어는 마고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 한 명조차 그는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제 역할은 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데이빗은 정말 형편없는 아버지였던 것일까.
 
<서치>는 노트북과 태블릿, 휴대폰 화면을 그대로 관객에게 띄우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데이빗과 마고의 영상통화로부터 시작하여 페이스북과 지메일, 여러 온라인 플랫폼들을 거치며 딸의 흔적을 쫓는다. 디지털 시대 온라인상에 흩뿌려진 온갖 정보를 수집하여 한 사람의 신상을 알아가는 일은 더는 새롭지는 않을지라도 충분히 흥미로운 감상을 일으킨다. 때로는 우리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혹은 간과한 위험들을 영화가 효과적으로 일깨우는 것이다.
  
서치 스틸컷

▲ 서치 스틸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연출의 참신함과 반전의 영리함
 
아버지가 확인하는 디지털기기의 화면이 거듭 옮겨가는 동안 영화는 차근히 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마고의 실종 뒤에 숨겨진 모종의 사연이 드러나기까지 제법 신경을 써 꾸린 게 분명한 반전이 모습을 내보인다. 스릴러의 적당한 긴장이 파격적 형식 가운데서 버무려져 관객은 이렇다 할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다.
 
흔히 사람들은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하길 즐기는 듯하다. 그러나 <서치>가 이뤄낸 성과를 목격하고 있자면, 과연 형식이 내용보다 중요치 않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이 일어난다. 파격적 형식이 주는 새로움이 다소 식상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는 걸 신예 아니쉬 차간티의 이 영화가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차간티는 곧 개봉하는 <서치 2>의 연출 자리를 놓쳤으나 직접 각본을 맡아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서치>가 이룩한 성과를 그 속편은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먼저 이 참신함 영화부터 보는 게 순서일 테다.
   
서치 스틸컷

▲ 서치 스틸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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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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