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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경기도에서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지 13년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학생인권조례는 경기,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 6개 지역에서 제정·시행됐는데, 최근 서울, 충남 등지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기, 전북 등에서도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를 축소시키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지켜라 학생인권'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학생인권조례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모든 지역, 모든 학교에서 학생인권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고 지키도록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의 필요성을 전하는 글을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지켜라 학생인권' 서명주소: https://campaigns.kr/campaigns/851).[기자말]
지난 10일 오후 2시, 서울학생인권조례 지키기 공동대책위(공대위) 소속 청소년들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우리에게 물어는 봤느냐”고 외쳤다.
 지난 10일 오후 2시, 서울학생인권조례 지키기 공동대책위(공대위) 소속 청소년들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우리에게 물어는 봤느냐”고 외쳤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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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 탓에 학생인권조례가 폐지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관련 기사: 화 난 청소년들 "학생인권조례 폐지? 학생 학대선언" https://omn.kr/22oxb ).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조례가 제정되기 전의 학교가 떠올랐다.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주민발의된 2011년(2012년 시행)에 나는 중학교 과정에 있었는데, 당시 교실 안에서 교사가 학생을 때리는 일은 거의 일상이었다. 갓 입학했을 무렵 복도에서 머리채가 잡힌 채 끌려가는 친구를 보고 경악하는 우리에게 학생부장 교사는 말했다.

"너네도 이렇게 되기 싫으면, 머리에 장난질하지 마라."

그때도 지금도 교사들이 말하는 체벌의 이유는 다양하다. 머리를 염색해서, 치마가 짧아서, 수업시간에 졸아서, 교사를 보며 웃어서... 초·중등교육법에서 체벌이 금지되고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며 학생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체벌은 차차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벌점과 윽박지름은 여전히 남아 있다. '벌'의 방식은 달라졌더라도, 학생을 겁주는 학교의 본질은 변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 안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나 또한 처음 당한 체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수업 중이던 교실에서 하품했다는 이유로 뺨을 얻어맞은 날이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하품하는 게 왜 맞을 일인지, 나는 놀란 것인지 화난 것인지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채로 연신 교사에게 잘못했다고 빌어야 했다. 맞은 건 난데, 때린 사람에게 사과하는 경험이 몸에 각인됐다. 
 
지난 10일 오후 2시, 서울학생인권조례 지키기 공동대책위(공대위) 소속 청소년들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우리에게 물어는 봤느냐”고 외쳤다.
 지난 10일 오후 2시, 서울학생인권조례 지키기 공동대책위(공대위) 소속 청소년들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우리에게 물어는 봤느냐”고 외쳤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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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나는 것이 무서워 그날 이후로 나는 '모범생'이 됐다. 개근하고, 학업에 성실하고, 학칙을 잘 지키는 학생이 되려고 노력했다. 누군가는 교육이 성공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은 폭력의 질서에 순응하며 나를 잃어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어느덧 권위에 쉽게 굴복하고, 인권침해에 둔감해지고, 연대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학생을 이렇게 만드는 교육을 성공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불평하던 친구들도 매일 다 같이 맞다 보니 덤덤해졌다. 그렇게 아무도 이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게 됐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다른 학생을 보면서, '쟤가 맞을 만해서 맞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날엔가는 친구의 다리가 온통 멍으로 가득한 것을 봤다. 미술 수업 중에 머리를 빗어서 맞았단다. 그 다리를 보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친구들이 맞을 때마다 교육청에 신고하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친구들의 반응은 항상 같았다. "우리가 선생님을 신고해도 되는 건가?", "이 정도도 신고할 수 있나?" 친구들의 그런 질문들 앞에서 항상 말문이 막혔던 기억이 난다. 당시 우리에겐 이 상황이 부당하다는 자각도, 부당함을 이유로 시정을 요구해본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 이제 이러면 안 되지?" 하던 교사... 학생인권조례가 바꾼 것들

폭력이 영원할 것 같던 학교에 갑자기 학생인권조례가 등장한 날이 기억난다. 늘 그렇듯 자는 학생을 때리던 한 교사가, "아 맞다. 이제 이러면 안 되지?"라며 사과하는 척하더니만 이내 학생인권조례를 욕했다. 학생인권조례라는 게 제정되면 학생을 때릴 수 없게 된다고 불평을 늘어놨다. 처음 '학생인권조례'의 존재를 알게 된 날이었다. 그 이후로도 교사들은 여전히 습관적으로 우리를 때렸다. 하지만 곧 당황하며 사과했다. 교사가 학생을 '때리지 않는 습관'을 익히는 동안, 우리는 어떤 사람도 맞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익혔다.

같은 교실에 앉아 있었지만 교실의 풍경도, 학생인 우리가 학교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져 갔다. 몸에 밴 복종의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어도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늘 문제로 지목당하고 규제당하는 존재였던 학생이, 이제는 무언가를 정의할 힘을 갖게 된 순간이었다.

2012년 2학기 무렵부터는 체벌이 사라진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변화가 우리 사이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부당하게 벌점을 받았을 때, 원하지 않는 방과 후 학습을 강제할 때, 치마 길이가 짧다며 교사가 강제로 아랫단을 뜯어낼 때 항의하는 학생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조례 제정 이후 학생들이 강제학습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자, 그때까진 의무·강제되던 야간자율학습도 슬그머니 선택으로 변경됐다. 그럼에도 온전히 자유롭게 야간자율학습을 결정할 순 없었지만, 학생들은 사유서를 제출하면 바로 하교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질문해도 되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학생들이, 인권조례 뒤 질문의 힘을 얻으며 만들어진 변화였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11년 전 과거로 역행하자는 건가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2010~2011년, 서울시민 97,702명의 청구 유효 서명으로 주민발의를 통해 제정되었다. 사진은 당시 조례안을 통과시키려고 서명운동할 때의 모습.
▲ 2011년 3월,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활동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2010~2011년, 서울시민 97,702명의 청구 유효 서명으로 주민발의를 통해 제정되었다. 사진은 당시 조례안을 통과시키려고 서명운동할 때의 모습.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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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라는 말이 있다. 사회학자 존 맥나이트의 말이다. 존 맥나이트가 말하는 혁명의 정의야말로 학생인권조례가 가져온 변화가 아닐까.

그동안 학교 안에서 학생은 문제라고 '정의된' 사람들이었다. '문제아'라는 노골적인 단어 외에도, 용의복장과 행동 하나하나에 벌점을 매기는 구조 자체가 학생을 문제적 존재로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학생인권조례의 등장으로 학생들은 자신을 문제아로 만들어온 학교의 문제를 제기할 힘을 얻게 됐다. 10여 년 전 학생들에게 학생인권조례는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서울·경기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여러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거나, 학교 규정을 보다 인권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개정 움직임이 뒤따랐다. 그리고 2023년, 제정 11주년을 맞은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위기에 놓였다. 게다가 서울뿐만이 아니라 경기, 충남 등에서도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관련 기사: 대전학교민주시민교육 조례안, 시행 1년만에 폐지).

처음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경기도 지역, 거기에 2022년 취임한 임태희 교육감은 같은해 7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교사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라며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기까지 했다. 11년 전에 교실에서 들었던 교사의 불평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못한 문장이다. 이는 학생도 인권을 가진 존재임을 부정하려는 시도와 다름없다. '학생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기본적인 요구는 언제까지 끝없는 역행과 맞서야 할까.

학생도 사람이라는 학생인권조례의 선언을 통해 10년 전 학생들이 경험했던 변화를 우리는 계속 만들어나가야 한다. 벌점을 받을까 노심초사하며 '죄인이 된 기분'으로 교문을 들어서야 하는 학교에서는, 어떤 참된 교육도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학생을 '문제'로, 수동적 존재로 만드는 교육으로 되돌아가자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태그:#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 #인권, #청소년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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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운동과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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