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BS 드라마 <법쩐>과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카지노>에 출연한 배우 손은서.

최근 SBS 드라마 <법쩐>과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카지노>에 출연한 배우 손은서. ⓒ 저스트엔터테인먼트

 
좋은 작품이라면 등장인물들이 주인공이든 주변 인물이든 모두 소모적이지 않고, 존재 이유가 분명하다. 이 기준이라면 디즈니플러스 <카지노>, SBS <법쩐>은 충분히 좋은 작품 범주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을 긴장케 하고 괴롭히는 빌런이 그만큼 입체적이었기 때문이다. 전자에서 호텔리어 김소정으로, 후자에서 명 회장 딸 세희로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손은서는 그래서 훌륭한 빌런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카지노> 시즌 1과 <법쩐> 종영 시점인 8일 오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두 작품이 비슷한 시기 함께 공개된 것에 "대외적으로 제가 일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손은서는 기쁘게 홍보 활동을 소화 중이었다. 경력으로만 보면 벌써 20년 가까이 됐다. 그 시간 안에서 주연, 조연을 가리지 않고 작품에서 당위성이 있는 캐릭터를 소화하며 인정받아 오고 있는 그였다.
 
정면으로 욕망을 마주하다

 
"물론 극의 처음부터 같이 이끌어 가는 것만큼 좋은 기회는 없지.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주인공 역할로 보이는 것도 좋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각 작품마다 인물들의 임팩트가 있거든. 결국 얼마나 사람들 기억에 남는지가 중요한 것 아닐까 싶다."

 
특히 <카지노>의 경우 손은서가 맡은 호텔리어 김소정은 4화부터 7화까지 등장했다. 총 8화 분량 중 작다면 작을 수 있겠지만, 필리핀 카지노 왕이 된 무식(최민식)과 그 일당을 크게 긴장시킬 정도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초반엔 무식의 오른팔 정팔(이동휘)의 호감을 사는 걸 시작으로 결국 약 100억 원의 돈을 가로채기까지 한다. 승무원 출신이라며 카지노 경영진을 속이며 환심을 산 뒤 본격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는 과정이 흥미롭게 묘사된다.
 
"소정의 첫 등장신 기억하시나. 정팔이 우연히 호텔에서 그녀를 보고 무식에게 '제 아이를 낳아줄 사람을 찾은 것 같습니다'라고 하잖나. 원래 대본에 없던 건데 현지에서 생겼다. 소정과 그들의 만남이 우연이 아닌 필연적 우연임을 감독님께서 생각하신 거지. 그 대사는 이동휘님 애드리브였던 걸로 기억한다.
 
일단 이야기는 차무식의 시선을 따라간다. 처음 소정 역을 제안받았을 때 이야기 개입도나 밀도가 떨어지면 어떡하나 걱정도 있었는데 대본을 다 보고 나니 전혀 그렇지 않더라. 캐릭터의 임팩트가 센 것 같아 잘하고 싶은 욕심이 났다. 인간의 욕망을 담은 캐릭터라는 생각이었다. 사람이 자기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고, 숨기는 사람이 있는데 소정은 전자였다. 자기편을 만드는 데 능하지만 배신도 쉽게 할 수 있는 성격이었다."
 

이야기 특성상 필리핀 현지 로케이션 당시 동료 배우들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결을 잡아야 하는 게 필수였다. 손은서는 "(<카지노 연출>) 강윤성 감독님 또한 본인이 쓴 대본에 배우들이 충실하기보다는 배우가 해석한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나오길 원하셨다"며 "소정의 경우엔 정팔과 무식, 필립(이해우) 옆에 맴돌면서 원하는 걸 얻는 식이라 대놓고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은근히 묻어나게끔 대사 조절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준비 과정을 언급했다.
 
"배우들이 정말 합숙처럼 모여 있으니 지나가다가도 불러서 얘기하고, 만나서 얘기하고 정말 많이 붙어 다녔다. 이동휘 배우야 정말 순발력이 좋아서 재밌게 연기했던 것 같고, 최민식 선배 앞에선 제가 너무 작아지더라(웃음). 제 스스로 연기를 아무것도 모른다 생각하고 선배님이 하시는 얘길 귀담아 들었던 것 같다. 왜 대배우라 하는지 이번에 직접 뵙고 알 수 있게 됐다."
 

극중 등장한 강한 노출신에도 손은서는 나름의 이유를 찾았다. "대본을 읽으면 읽을수록 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며 "소정이란 캐릭터를 한 번에 잘 설명할 수 있는 신으로 이해했다. 나아가 <카지노>라는 작품이 갖고 있는 성격과도 닮아 있었다. 등장 인물이 품고 있는 각자의 욕망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최근 SBS 드라마 <법쩐>과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카지노>에 출연한 배우 손은서.

최근 SBS 드라마 <법쩐>과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카지노>에 출연한 배우 손은서. ⓒ 저스트엔터테인먼트

 
성장 발판, 그리고 변화
 
<법쩐> 속 명세희도 큰 틀에선 소정과 비슷해 보인다. 손은서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인물"이라며 본인이 잡은 해석을 밝혔다. "사채업자 명 회장의 딸로 큰 재산을 운용할 수 있지만, 나름의 자격지심이 있는 인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소정이 좀 더 즉흥적으로 지를 수 있고 감정적인 인물이라면 명세희는 직접 행동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계획을 세워 누군가를 통해 목적을 이루려는 인물이다. 돈을 쫓고, 이익에 따라 사람을 배신하는 건 공통점이다. 드라마 초반이 아닌 중반부터 나오는 캐릭터들은 특히 대본에 나오지 않는 전사(history)를 생각하려 한다.
 
세희는 자신과 재벌가와 구분된 어떤 선을 넘고 싶었던 친구고, 누구도 자신을 무시하지 않도록 행동하는 성향이 강한 인물로 해석했다. 소정은 한국에 아픈 엄마가 있는 캐릭터다. 그렇기에 100억 원을 목숨 걸로 훔치려 했던 거지. 둘 다 선한 인물은 아니지만, 드라마 안에서 나름 개연성을 주면서 입체적인 인물로 이해받을 수는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머리 모양이나 메이크업에서도 소정은 튀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려 했고, 세희는 요리연구가다 보니 깔끔한 손에 집중해서 준비했던 것 같다."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배우 나름 치열한 준비과정을 거친다고 볼 수 있다. 캐릭터 비중과 상관없이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역사를 만드는 노력 덕일까. 지난 2021년 네 번째 시즌까지 공개된 드라마 <보이스>에서 손은서는 배우 이하나와 함께 시즌 1부터 개근 중이다.
 
"<보이스>를 하기 직전까지 여러 드라마에서 했던 조연들은 일종의 감초 역할, 주인공을 뒷받침하는 정도였다면 이후부턴 이야기 자체에 깊이 개입된 역할들이었다. 솔직히 배우 생활하면서 '분량은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임팩트'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실감하긴 힘들었거든. 근데 이번에 <카지노>와 <법쩐>으로 그걸 아주 잘 느낄 수 있었다. 역할의 크기가 작더라도 사건의 도화선이 된다든지 큰 줄기 안에 있었다. 그래서 아쉬움이나 후회가 없다."
 
 SBS 드라마 <법쩐>의 한 장면.

SBS 드라마 <법쩐>의 한 장면. ⓒ SBS

 
스스로에게 관대하기 보다 냉정한 편이라며 손은서는 "작품마다 아쉬운 부분이 보이는데 그걸 평소에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그래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뭔가 목표를 이루려 하기 보단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작품과 인생 전반을 대하는 그의 가치관이었다.
 
"데뷔 무렵 땐 최대한 빨리 이름을 알려야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 차기작이 정해지지 않으면 참 불안했는데 요즘은 전전긍긍하지 않고 조금은 편하게 생각하려 한다. 또 다른 기회가 오겠지. 단순히 작품을 많이 한다고 제게 득이 되는 건 아니니까. <카지노>도 그래서 택했다. 저의 스펙트럼이 깊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하게 된 거다.
 
20대엔 타인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에 너무 신경을 썼다면 이젠 내가 맡은 것. 나 자신에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가 됐다.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스스로 만족하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OTT 플랫폼 작품을 처음 하게 됐다. 해외 반응도 확인할 수 있는 게 참 신기하다. 이제 해외에서도 동시기에 한국 작품을 보는 만큼 하나라도 허투루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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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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