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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일. 10개월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일터로 돌아왔다. 참고로 내가 일하는 곳은 休서울이동노동자 합정쉼터다. 이동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긱 노동자가 와서 쉬며 모임을 하거나 각종 정보, 복지상담, 강의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복직해서 피부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쉼터 이용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대리운전 노동자의 달라진 위상이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과 카카오모빌리티가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자영업자 취급을 받던 대리운전 노동자가 플랫폼 기업으로부터 노동자 신분을 인정받게 되었다.

11월 22일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은 내가 일하는 합정쉼터 교육실을 대관해 카카오모빌리티와 체결한 '단체협약 설명회'를 진행했다. 공문을 받고 쉼터 이용자 3500여 명에게 문자를 보냈으나, 설명회에 참석한 대리운전 노동자는 겨우 두 명.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노동자들은 왜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헌신하는 노동조합의 활동에 관심이 없을까. 씁쓸한 마음으로 설명회에 참석했다.

참석자는 많지 않았지만, 교섭위원이었던 이창배 교육국장은 열의를 가지고 설명회를 진행했다. 교섭 과정이 쉽지 않았던 이유와 외부 정세, 집행부 내부 갈등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묻고 답을 듣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혼자 듣기에 너무 아까운 얘기여서 인터뷰 형식을 빌려 교섭 현장의 생생함과 교섭 과정을 기록해봤다.
  
"조합원들의 단체행동이 국면 해결의 열쇠가 됐다"
 
지난 10월 26일, 판교 카카오모빌리티 사옥에서 진행한 전국대리운전노조와 카카오모빌리티 단체협약 체결식
 지난 10월 26일, 판교 카카오모빌리티 사옥에서 진행한 전국대리운전노조와 카카오모빌리티 단체협약 체결식
ⓒ 카카오모빌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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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카오모빌리티와의 교섭에서 핵심 쟁점은 무엇이었고, 교섭 과정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프로서비스 유료화 폐지를 핵심 요구로 본교섭이 시작되었다. 사 측은 국회에서 맺은 성실 교섭 협약의 '프로서비스 유료화 폐지 등 개선방안을 모색한다'라는 문구를 들어 즉각 폐지 요구를 거부하며 단계적 폐지를 주장했다. 1년간 회사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경쟁 환경에 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경쟁사들도 '도착지 우선 배차' 등 비슷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자신들만 프로서비스 유료화를 폐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노조는 타협 불가 방침을 세우고 압박해 나갔다.     

프로서비스 유료화 폐지를 두고 공방을 벌이며 두세 달이 지나갔다. 그러던중 카카오가 교섭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투기자본 MBK에 매각을 시도했다. 노조는 즉각 대응했다. 카카오 IT 노동자로 이루어진 카카오 노조 크루유니온과 연대 전선을 구축했다. 매각 저지 공동투쟁 선포 기자회견엔 기자들이 앉을 자리 없이 터져나갈 정도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었고, 카카오의 사회적 약속 파기 시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노조는 점점 투쟁 수위를 높여갔다. 2022년 7월 25일 MBK 앞에서 200여 명이 집회를 개최하고 동반성장위원회 앞까지 행진했다. 이날 카카오는 매각을 유보한다는 발표를 했다. 노조는 완전한 매각 철회와 성실 교섭 및 사회적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8월17일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이날 카카오는 매각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노조는 프로서비스 유료화 폐지, 핵심 노동 조건인 요금, 수수료, 배차시스템에 대한 합의를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갔다.    

사 측은 플랫폼 노동의 노동조건과 관련해 노사가 합의한 전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핵심 노동조건인 대리요금, 수수료, 배차시스템(AI 알고리즘)에 대해서는 합의를 거부했다. 심지어 프로서비스 유료화 폐지 문제도 구체적 시일을 적시하는 것을 거부했다. 회사 경영권에 해당하는 사항은 합의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대리운전기사 서비스 이용 약관 변경 문제도 경영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합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사업의 지속성을 위해 경쟁 환경에 유연한 대응이 가능해야 하며, 자본시장(투자 환경)과 관련한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다만 합의라는 용어 대신 '노동조합의 의견을 청취하고 존중해 이를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라는 문구를 고수했다. 노동조합은 프로서비스 유료화 폐지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요구하며 1박 2일간 사 측 회의실을 점거하기도 했다.

8월 31일 플랫폼노동자대회와 판교 대리운전 노동자 문화제를 정점으로 투쟁 수위를 높여나갔다. 사 측은 결국 프로서비스 유료화는 2023년 상반기 중에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요금, 수수료, 배차시스템에 대해서는 현실화 및 개선을 하겠다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2023년 상반기에 추가 협상을 하는 것으로 잠정합의안이 나왔다. 잠정합의안은 조합원 총투표에서 74%가 투표에 참여해 85%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돌이켜보면 국면마다 조합원들의 단체행동이 국면 해결의 열쇠였다."

- 진행 과정에서 집행부 내부에서 이견도 많았을 것 같다. 어떻게 조율하며 해결했나.

"막판 프로서비스 유료화 폐지 시기 명시 문제를 두고 갈등이 있었다. 사 측은 '2023년 상반기까지 단계적 폐지하되 시기를 명시할 수 없다'고 버텼다. 결렬을 선언하고 더 행동에 돌입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합의된 것을 성과로 남기고 이후 시기 명시 등 문제는 과제로 미뤄 타협할 것인가? 시기를 명시하지 않는 합의는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 누가 보더라도 그런 합의안에는 합의할 수 없다. 다만 객관적 조건과 조직적 상황이 문제였다.

교섭위원과 운영위원들은 1박 2일간 격론을 벌였다. 의장을 맡은 위원장은 찬반 표결로 결정하면 반드시 조직이 깨진다는 것을 다년간의 조직적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위원장은 찬반 표결 요구를 거부하고 상대방을 설득할 것을 요구했다. 찬반 주장을 투표로 결정하는 대신 서로 충분히 근거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 조직적 관점에서 토론을 지속하는 동안 찬성 반대 자체보다 조직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토론 결과 한계와 가능성, 성과와 과제를 확인하고 '아쉽지만 절반의 성과와 과제를 남기고 가능성을 열어 둔 합의'로 잠정합의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결정하는 과정에서 찬반 양측 모두 이를 자신들이 결정한 합의안으로 여기게 되었고, 조합원에게 합의안을 설명하고 조직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되었다."

"1박 2일간의 격론... 이제 노조는 선택 아닌 필수"
 
판교 카카오모빌리티 본사 인근에서 카카오모빌리티의 사회적 책임과 성실 교섭 이행을 촉구하며 노숙농성과 선전전을 벌인 전국대리운전노조 조합원들
 판교 카카오모빌리티 본사 인근에서 카카오모빌리티의 사회적 책임과 성실 교섭 이행을 촉구하며 노숙농성과 선전전을 벌인 전국대리운전노조 조합원들
ⓒ 전국대리운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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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랫폼 노동자들이 단체교섭을 한다는 건 특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다. 교섭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교섭이 열리고 어려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 2021년 12월에 기본협약을 위한 실무협의가 시작되었다. 기본협약에 3개월이 걸렸다. 사 측이 전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안정적 교섭을 위한 전임 인정을 거부하고 나섰다. 노조로서도 이후 플랫폼 노동 단체교섭의 전례가 될 것이기에 허투루 다룰 수 없는 문제였다. 전임비 문제로 교섭이 결렬된다면 현장이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우려도 있었고, 법에 따라 교섭을 1년 이내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조급함도 있었다. 사 측도 '기본협약조차 시간을 끈다'라는 비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조는 더 늦출 수 없어 기본협약 문제를 본교섭에서 다루겠다고 했고, 부담을 느낀 사 측이 수정안을 제시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교섭위원들의 생계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사 측의 교섭 활동 지원이 충분하지 못해 교섭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말해달라.

"협상 과정에서 카카오모빌리티 사내 주요 투자사인 사모펀드 TPG가 투자 계약에 따른 재무 및 경영과 관련한 권한을 가지고, 재무와 경영에 영향을 주는 사항과 관련해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TPG는 '노동조합과 합의해야 한다면 시장이 지속적 성장 가능성을 낮게 평가할 것'에 대해 우려하는 듯했다.

카카오모빌리티 사 측은 플랫폼 기업 최초 교섭으로 향후 플랫폼 노동 관련 선례가 된다는 부담도 있었다. 게다가 제대로 된 플랫폼 노동 교섭 사례가 없어 교섭이 쉽지 않았다. 사 측은 시시때때로 전속성 기준을 언급하며 '전속성이 없는 노동자의 단체교섭 사례가 없는데, 우리 일만 하는 것도 아닌데, 일반 사업장과 다른데, 17만 명 중 노조 조합원은 5천 명인데'와 같은 회피 논리를 세우곤 했다."

- 단체협약 설명회에 대리운전 노동자들의 참여가 저조했는데 서운하지는 않나.

"아직 현장 대리기사들이 단체협약을 자신들의 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단체협약이 아직 요금, 수수료, 배차시스템 등 핵심 사안과 관련해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의 반향일 수 있겠다. 노조가 더 소통하고 조직해 이후 있을 상반기 투쟁과 단체교섭과 법제도 개선 등을 자신들의 일로 여길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대리운전 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

"이제 노동조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이 없다면 업체들은 이윤을 위해 대리기사를 더 쥐어짜고 대리운전 노동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껏 노동 조건의 개악을 막고 사회·경제적 지위와 권익을 부족하나마 유지 개선해 온 것도 노동조합이 있기 때문이었다. 헌법이 노동3권을 보장한 이유도 국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단체를 만들고,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행동을 통해 의사를 관철할 권리는 헌법의 권리다. 노동3권은 단체로 참여할 때 보장될 수 있다. 존중받는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면 노동3권을 행사하기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

인터뷰하며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1박 2일간의 토론과 설득의 과정이었다. 편하게 찬반투표로 단협안을 결정지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안을 끝장토론에 붙인 노조 위원장의 결단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격론의 과정이야말로 조직의 단합과 성장에 필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의 제목인 '아, 살아있다는 건'은 일본의 여성 운동가이자 시민·정치 운동가인 나카야마 치나츠가 "살아있음이 무슨 의미일까?"에 대한 대답으로 내놓은 책인 <살아있어>에서 가져왔다. 작가는 살아있다는 건 "소리를 내는 거", "헤엄치는 거", "뛰어오르는 거", "열매 맺는 것"이자 "울고, 웃는 거"라는 사실을 그림과 함께 활기차게 표현했다. 나는 대리운전노조 이창배 교육국장과의 인터뷰에서 대리운전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진정 '살아있음'을 느꼈다. 살아있는 존재는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비록 더디지만, 언젠가 열매 맺고 웃을 날이 온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방승범 休서울이동노동자 합정쉼터 선임간사가 이창배 전국대리운전노조 교육국장을 인터뷰하고 쓴 글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2023년 1,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플랫폼, #카카오모빌리티, #대리운전노조, #단체협약, #사회적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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