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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11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11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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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윤석열 정부에서 국방백서에 '북한정권과 북한군'을 주적으로 명시한다고 한다. 과거 2007년 내가 군에 근무했을 때도 주적 논쟁이 치열했다. 역사 공부를 좋아하던 나는, 한 번은 역사책을 쓴 저자를 초빙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초빙받아서 온 저자는 나를 보자마자,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왜 국방부는 주적개념을 국방백서에 넣지 않으십니까?"라고 내게 따졌다. ​

나는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지만 이렇게 반문을 했다. "당신은 집에서 개를 키우실 때, '저 사람만 보면 짖어' 하실 것입니까, 아니면 '평소에는 조용히 있다가, 누가 담을 넘어오려고 하면 그게 누구든 짖어' 하실 것입니까?" 저자가 한참 말이 없더니 내 말에 동의하면서 주적 논쟁이 끝났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의 당시 답변에도 어폐가 있다고 본다. 당시에는 당황해서 그렇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인공지능 경비로봇이라는 비유가 더 적절할 것 같다. 성능이 좋은 인공지능 로봇에게는 "누구든 상관없이 담을 넘어오면 도둑"이라고 교육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를 소화하지 못하는 로봇이라면, 특정한 딱 한 명만 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더 능률적일 수 있다.

국방백서와 주적

일각에서는, 이 주적 표현이 과거의 비상식을 상식으로 바로 잡은 것처럼 주장하는 여론이 있다. 몇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첫째, 국방백서에 주적 표현이 없으면 군에게 주적이 없는 것인가? 둘째, 국방백서와 작전계획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는 점. 셋째, 대통령과 안보부처는 국가와 미래지향적인 안보정책을 수립해야하며,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국방백서에 주적개념이 없었다가, 1995년부터 2004년까지는 '북한은 주적'이 반영되었다. 이후 몇 년간 북한은 '직접적'이거나 '심각한' 위협으로 표기되었다. 여러 과정을 겪은 끝에 2010년에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하였다. 현재는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

현 정부도 이전 정권에서 북송시킨 탈북자에 대해서 우리 국민이라는 취지로 말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을 포함한 북한 자체가 우리의 적은 아닐 것이다. 적은, 국가이익을 침해하는 나라가 적이 되어야 한다. 독도같이 명백한 한국 영토를 자기 영토라고 하려는 나라가 오히려 주적이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일본은 우방, 북한은 주적이라는 이분법의 구시대적 안보관에 매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늘 우방? 현 정부의 구시대적 안보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는 모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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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백서에 '주적' 표현이 없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군대의 주적은 북한군대이다. 현재 한반도는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 잠시 총성을 멈춘 정전 상태라는 현실은 전 세계가 아는 사실이다. 통상 주적 개념은 군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며 없으면 '가적' 개념을 가지고 작전계획을 수립한다. ​​작전계획 5015와 작전계획 5027 등에는 분명하게 북한군이 주적이라고 돼 있다.

군대라할지라도 중소대장 수준의 초급지휘관이나, 훈련과 경험이 부족한 신병들에게는 주적개념을 알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국방백서는, 군사적으로 비밀문건이 아니고 국민과 외국에 알리려고 만든 외교적 성격이 더 큰 문서다. 옆집이 원수라면 집 안에서 원수라고 생각하고 대책을 세우면 되지, 그걸 굳이 온 동네방네 떠들 필요가 없는 이치 아닌가.

냉전 시대 미·소 진영 사이 대결을 제외하고, 외교와 안보에서 적을 명시하는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은 '미국 국가안보전략(NSS)'에 명시한 4대 핵심 이익은 '미 본토 보호, 미국 번영 추진, 힘을 통한 평화유지, 미국 영향력 확대'이다. 도전요소로는 '중·러와 같은 수정주의 세력, 북한·이란과 같은 불량정권, 독재자와 지하드 테러주의자'로 명시한다. 즉 도전요소로 세력, 정권, 테러주의자를 명시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는 물이 끓어서 폭발하지 않도록 자국을 둘러싼 군사적 대치 상황을 해소해야 한다. 군사적 대치를 유지하더라도, 긴장이 높아지면 이를 정치적으로 극복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군을 문민통제해야 할 정부가, 마치 군인 그 자체인 것처럼 '선제타격', '주적' 등을 얘기하는 것은 과거 1,2차 세계대전에서나 있던 상황으로 보인다.

과거 여러 국가의 흥망성쇠 등 역사 속에서, 문제해결을 오직 전쟁을 통해서만 보는 군인은 국가를 전쟁으로, 확전으로 몰고갔던 경우가 잦다. 문민지도자와 군지휘관의 차이, 그리고 나아가 과거와 현재의 차이가 무엇인가 물어보고 싶다.

태그:#국방백서, #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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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해군 제독 정치학 박사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 전)서울시안보정책자문위원 전)합동참모본부발전연구위원 저서<관군에서 의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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