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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자마자 부리나케 학교로 달려오느라, 2교시만 되면 배가 고팠다. 다른 친구들의 뱃속에서도 하나둘 우렁찬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늦잠을 자서, 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등등 각자의 이유로 아침을 챙겨 먹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점심 시간만을 기다렸다. 간혹 아침밥을 싸 온 친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한 입씩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아침에 음식을 들고 오기 시작했다. 초코파이, 핫초코, 김밥, 귤. 메뉴도 가지각색이었다. 웬 음식이냐고 물으니 이원재 국어 선생님이 '사랑해 모닝카페'에서 무료로 아침을 나눠준단다.

"현주야, 어서 와서 이거 하나 먹고 가."

국어 선생님은 조금 이상한 사람이었다.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는 것은 기본이고, 아이들의 작은 부탁 하나를 거절한 적이 없었다. 등교 시간마다 어김없이 나와 정문에서 손을 흔들었고 수업시간에는 직접 수기로 만든 선생님 표 국어 프린트를 복사해서 나눠주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이제는 카페를 차려서 아이들에게 음식을 준다는 것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선생님이 남다른 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3년이 흐른 지난 11월 14일과 12월 1일, 두 차례 이원재 정선고등학교 선생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선생님은 왜, 이런 일들을 해오셨던 걸까.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이원재 교사가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어묵꼬치를 나눠주고 있다.
▲ 학생들에게 어묵꼬치를 나눠주는 이원재 교사(오른쪽) 이원재 교사가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어묵꼬치를 나눠주고 있다.
ⓒ 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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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학생들을 위한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강원도 최북단 지역의 특성화고등학교에 발령받았던 일을 상기했다.

"첫 학교를 근무하기 힘든 학교로 발령받은 게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발령받기 전에는 EBS나 사설 학원 강사처럼 입담 좋게 '수능' 수업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거기는 공부는커녕 여러 가지 의미로 참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유난히 애쓰는 그에게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

"처음 담임을 맡았던 아이가 2014년에 사고를 당해서 하늘나라로 갔어요. 근데 그 친구가 좀 어려운 친구였거든요. 어머니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아버지는 폐지 줍는 일을 하시고. 하여튼 여러 가지 외부적인 조건이 어려운 아이였죠.

다른 선생님들과 회식하러 가는 길에 제가 조수석에 앉아 있는데 누가 창문을 똑똑 두드리더라고요. 얘가 오토바이 타고 일하러 가다가 저를 본 거예요. 담임 선생님이니까 반갑다고 인사를 한 거죠. (아이가) 헬멧을 안 쓰고 있는 것을 보고 내일 가만두지 않겠다며 보냈는데, 그날 사고가 나서 하늘나라로 갔어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지금 내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이 얼마나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소중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원재 교사가 학생을 위하는 방법
 
이원재 교사가 직접 손글씨로 만든 책갈피이다.
 이원재 교사가 직접 손글씨로 만든 책갈피이다.
ⓒ 이원재교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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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학생들에게 학교가 즐거운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는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잖아요.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많은데, 원하는 대로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았어요. 학창시절에는 절박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너무 많죠.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그게 전부인 듯 느껴지고 힘들잖아요. 그때 격려하고 용기를 줘서 인생의 다음 단계로 잘 넘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믿을 만한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이원재 선생님은 학생들을 위한 이벤트를 기획한다. 교문 앞에 부직포 레드카펫을 깔아놓고 아이들을 맞이하는 것, 사랑해 모닝카페라는 이름으로 아침밥을 챙겨주는 것, 모두 그의 아이디어다. 이벤트에 필요한 돈은 대개 학교 예산 내에서 해결하지만, 그것을 구체화하고 실현하는 것은 그의 몫이다.

"그냥 물건만 툭 주거나 행사만 벌이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진정으로 자기를 생각해준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려고 신경을 쓸 때가 많아요. '사랑해 모닝카페' 얘기로 예를 들어보면 전교생이 천 명인데 아침에 이용 가능한 학생 수가 대략 300~400명 정도 되니 간식을 그 정도에 맞춰서 준비해요. 물품 사겠다고 문서로 결재받고, 마트에 가서 물건 사 와서 정리하고, 전날에 필요한 것 준비하면 대략 반나절 정도는 걸리는 셈이네요. 책갈피 손수 만들고 그러는 건 며칠도 걸려요. 천 개 정도 만들어서 뒤에다가 힘 나는 문구 같은 것 써서 나눠주고 그랬죠."

학생을 위한 일을 하고 난 뒤 그에게 주어지는 보상

그가 학생들을 위한 이벤트를 기획한다고 해서 특별히 주어지는 보상은 없다. 

"(금전적 보상은) 바라지도 않아요. 공무원이 무슨. (웃음) 토이의 좋은 사람이라는 노래 아세요? 거기 후렴구에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라는 가사가 있어요. 익명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선생님 덕분에 학교가 재미있어요', '선생님 수업이 기다려져요', '선생님 말씀 듣고 힘이 났어요' 이런 말 들으면 그걸로 된 거죠."

이렇게 성인군자 같은 그도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당연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으니 나를 봐달라라는 마음이 매 순간 들어요. 저는 남 몰래 선행을 하는 인격자와는 거리가 멀거든요. (웃음) 남들 앞에 나서는 일이 부끄럽고 민망할 때도 많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다가 아이들이 마음이 힘들 때 말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힘들다고 위클래스(교내 상담·교육 프로그램) 갈 정도는 아닌데 친구한테 얘기하자니 쪽팔리고 그럴 때. 어느 정도 나의 상황에 대해 알면서 좀 해결해줄 수 있는 재량이 있는, 그렇지만 너무 밀접해서 쪽팔리지 않을 만한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모든 아이가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거예요. 다만 한 명이라도, 그 해에 딱 한 명이라도 나쁜 생각을 하다가 저와 인연이 되어 자기 삶의 궤도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면 좋은 거죠. 제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가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학생이 이원재 교사가 준비한 어묵꼬치를 들고 있다.
▲ 이원재 교사가 준비한 어묵꼬치를 먹는 학생 학생이 이원재 교사가 준비한 어묵꼬치를 들고 있다.
ⓒ 이원재교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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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일, 이원재 선생님은 정선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어묵꼬치를 준비했다. 한파에 오들오들 떨면서 등교할 학생들이 따뜻한 음식을 먹고 조금이라도 힘을 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원재 선생님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학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학교가 좀 일이 적어졌으면 좋겠어요. 창의력도, 공부도 좀 한가해야 그 능력이 발휘가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지금 우리 학교들은 하는 게 너무 많아요. 학교에서 분명히 개선해야 되는 것들이 있는데 너무 전방위적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학생들은 그 변화를 다 강제적으로 받아들여야 되니까 혼란스럽고 힘들죠. 사실 학교에 영향을 주는 정책이나 제도에 학생들이 얼마나 참여할 수 있고 또 얼마나 참여했는지 생각해보면, 여전히 학교는 학생이 소외되는 곳에 가까워요.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학교이면 좋겠습니다."

태그:#이원재, #정선고등학교, #정선고, #국어교사, #아침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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