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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원회는 11월 23일 오전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사무실에서 과거 군부독재정권하에서 부당하게 강제징집을 당하거나 군복무 중 이른바 '녹화공작(프락치 강요)'을 당한 피해자에 187명에 대해, 국가에 의한 불법 피해자로 진실규명한 결과를 발표했다.
▲ 기자회견 진실화해위원회는 11월 23일 오전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사무실에서 과거 군부독재정권하에서 부당하게 강제징집을 당하거나 군복무 중 이른바 '녹화공작(프락치 강요)'을 당한 피해자에 187명에 대해, 국가에 의한 불법 피해자로 진실규명한 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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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 정근식 위원장)가 지난 23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퇴계로 남산스퀘어 사무실에서 과거 군부독재정권 아래서 부당하게 강제징집을 당하거나, 군복무 중 이른바 '녹화공작(프락치 강요)'을 당한 피해자에 187명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자로 인정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군부정권들은 1970, 1980년대 학생운동을 벌이던 대학생들을 강제로 군대에 끌고 가 고문·협박·회유를 통해 전향시킨 뒤 '프락치(정보망원)'로 활용한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의 실체인데 이번에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 조사로 군부의 불법행위가 공식 확인된 것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강제징집 및 녹화·선도 공작 관련자 2921명 명단이 확인돼 피해자 규모는 지금까지 알려진 1980년대 초 강제징집 1152명과 녹화사업 피해자 1192명(강제징집 921명 포함)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도 처음 드러났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결론 내리고, 1차로 신청인 권형택(서울대) 등 187명에 대해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로 인정했다. 그동안 강제징집 및 프락치 사건의 전체 윤곽을 파악하는 조사는 이뤄졌지만, 국가가 개인별 피해 사례를 대대적으로 조사해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실화해위는 ▲위수령(1971년)과 대통령 긴급조치 9호(1975년), 계엄 포고령 10호(1980년) 등은 위헌‧위법 조치로 무효인데 이를 어겼다는 이유로 강제징집했고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국가안전기획부, 경찰에 불법 체포‧감금(형법 124조)한 상태에서 군에 끌고 갔거나, 가혹행위(형법 125조 위반)와 강요(형법 324조)로 휴학계나 입대지원서를 쓰게 한 후 입영시켰고 ▲군 복무 중 사상 전향과 양심에 반하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 것 등에 대해 모두 불법으로 확인했다.

진실화해위는 2021년 5월 조사개시 의결 후 1년 6개월 동안 군사안보지원사령부(5공화국 당시 국군보안사령부, 현 국군방첩사령부)가 국가기록원에 이관한 개인별 '존안자료' 2417건(11만3768쪽)을 비롯해 보안사 선도대상자 명단 등 관련 문건을 확보해 분석하는 등 다각도로 조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강제징집 및 녹화·선도 공작 관련자 2921명 명단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원회가 남산스퀘어빌딩 사무실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정근식 위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기자회견 진실화해위원회가 남산스퀘어빌딩 사무실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정근식 위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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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는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의 강제징집자 명단, 병무청 병적기록표, 각 대학 학적부 등의 자료를 입수해 종합적으로 자료조사에 활용하고 신청인 진술조사를 진행했다. 또 12월 9일 진실규명 신청을 마감한 후 강제징집자 전수조사를 포함한 진실규명 과제에 대해 폭넓게 논의할 방침이다.

이번 진화위 조사는 이전 과거사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던 여러 사실을 밝혀냈다. 우선 국가기관에서 강제징집과 녹화·선도공작 피해 사실을 개인별로 상세히 밝혀내고 진실규명 대상자로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과거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와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사건의 전반적인 실태와 양상만을 주로 확인했다.

또 이번 조사에서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기인 1971년부터 1987년까지 강제징집의 전체적인 실태와 양상을 규명해낸 것도 큰 성과로 보여진다. 특히 프락치 강요 공작의 경우, 전두환 정권이 '녹화공작'을 추진하던 보안사 심사과 폐지 후에도 노태우 정권이 '선도업무'라는 명칭으로 1987년까지 공작을 계속했다는 사실이 보안사 문건을 통해 밝혀졌다.

이른바 녹화공작이란 '좌익으로 빨갛게 물든 학생들의 의식을 푸르게 한다'는 의미로서 군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한 희생자들이 나오면서 녹화공작은 사상전향 강요라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보안사 심사과가 1984년 12월 해체되지만, 보안사 정보처 주도로 '선도업무'라는 이름의 운동권 병사 관리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 것이다.

강제징집은 국방부·병무청·경찰·문교부·법무부·대학 등 국가기관의 합작품

박정희 정권에선 1971년 위수령 발동 이후 대학생들이 집단으로 강제징집을 당했다. 입대 후 강제징집된 대학생들의 병적기록표에는 ASP(Anti-goverment Student Power, 반정부학생세력)라는 표식을 붙여 일반 병사들과 따로 분류해 집중 감시했다.

한편 5공화국 시기의 강제징집은 국방부-내무부-경찰-병무청-법무부-문교부-대학 등이 총동원된 조직적 합작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체포 등을 통해 입영대상자의 신병을 확보하고 문교부의 지시로 대학은 학사처벌을 한 후 병무청에 군 입영대상자 명단 및 입영예정시기를 통보하는 역할까지 했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기관들이 대거 동원되어 대학생 강제징집의 '행동대' 역할을 한 것이다.

국군보안사령부는 강제징집당해 군대에 끌려온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치밀한 계획과 실행프로그램을 가동해 전향시키고 양심에 반하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에도 보안사는 강제징집된 대학생들을 사찰한 사실이 내부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1971년 위수령 발동 후 강제징집한 대학생들을 'ASP'로 분류해 동향을 관찰하고, 전역 후에는 학원분야 요주의 인물로 동향 관찰을 하며 '전력자원카드'를 만들어 관리했다.

전두환 정권 들어 보안사의 강제징집자 관리는 더 심해졌다. 당시 명칭은 '녹화공작' '녹화침투공작'이었다. 보안사는 1982년 5월부터 1984년 12까지 ASP, 특수학적변동자 등의 명칭을 바꿔가며 복무 중은 물론 전역 후에도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프락치 공작을 해 나갔다. 복무 기록에 별도 표시를 한 후 '근원발굴'이라는 명목으로 학원·노동·종교 분야에 '침투'시켜 정보수집 활동을 실시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확인한 보안사 녹화공작 문건만 20건에 달한다.

보안사는 특수학변자들의 신병을 확보해 보안사 분실로 강제로 끌고 가 보통 일주일 이상 동안 대학 서클 가입경위, 시위참여, 의식화 학습과 활동 등 학생운동 전반에 대한 조사를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고문과 협박·회유가 이뤄졌다. 신청인들은 강제징집과 녹화공작 과정에서 불법체포·구금, 폭력, 고문으로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었고 고통 속에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신청인들도 많았다.

보안사 조사 후에는 곧바로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투입돼 학교서클 동향과 지하서클 연계조직을 파악해 보고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친구와 동료, 선후배를 배반하도록 강요하는 반인권적인 일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벌어진 것이다.
 
진실화해위원회가 남산스퀘어빌딩 사무실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강제징집녹화 공작 피해자 대표들이 참석했다. 맨 앞쪽 사람이 80년 9월 강집된 서울대 권형택씨
▲ 피해자 진실화해위원회가 남산스퀘어빌딩 사무실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강제징집녹화 공작 피해자 대표들이 참석했다. 맨 앞쪽 사람이 80년 9월 강집된 서울대 권형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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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관에 의한 중대한 범죄행위

보안부대의 이같은 행위는 형법 제123조 공무원의 타인의 권리행사방해이자 같은 법 124조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의 불법체포, 불법감금, 같은 법 125조 폭행, 가혹행위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라고 진실화해위는 강조했다.

진실화해위가 확보한 보안사의 개인별 존안자료 중에는 교사, 검정고시 준비생, 직장인 등 민간인들도 47명이나 포함돼 있다. 또한 유시민, 박래군, 이강택, 오동진 등의 사회 저명인사를 비롯해 윤영찬, 기동민 등 현역 국회의원의 존안자료 및 명단이 확인됐다.

진화위는 "강제징집 피해자들은 국방의 의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당한 후 다시 사회와 격리되는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국가[국방부, 행정안전부(경찰청), 교육부, 병무청]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각 해당기관은 회복조치 및 재발 방지책으로 병역법 등을 개정해 권리 보장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프락치 강요 공작으로 인한 피해자들은 국가의 위법한 공권력에 의해 불법구금, 불법조사, 사찰 강요, 폭력 등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며 "정권유지 목적으로 '전향'을 강요하고, 대좌경화 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프락치' 임무를 부여한 강요 행위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각 해당기관은 이들의 경제적·사회적 피해에 대한 회복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의 사과와 배·보상 등 명예회복 조치 필요"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에 대해 조사 후 정부의 사과 방안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과도, 피해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국방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교육부, 병무청 등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는 "위원회의 조사활동 종료 후에도 장기적으로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의 개인별 피해 사실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조사기구를 설치하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및 배·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피해 회복을 실현해야 한다"고 국방부에 권고했다. 이와 함께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의 피해자들이 현재까지도 신체적·정신적 고통 치유를 위해 '의료 접근권'을 강화해 실질적으로 피해가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자신도 피해자여서 진화위에 조사신청 했다"고 주장하는 김순호 경찰국장에 대해서 "김순호 국장도 이미 진화위에 조사신청 한 것이 맞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다른 피해자와 동일한 기준으로 진실규명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발표가 끝난 후 1980년 강제징집되고 녹화공작 피해자인 권형택씨(서울대 74학번)는 "이번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는 이전 군 과거사 조사때보다는 많이 노력한 모습이다. 하지만 3000명에 가까운 전체 피해자에 대한 전수조사와 가해자 책임라인 규명, 10여 명의 의문사 피해자들에 추가 조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불법적 신체와 정신적 폭력에 대해 국가는 사죄하고 피해에 대한 배·보상이 이뤄지도록 특별법이 신속히 제정 돼야 한다"과 요구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보안사령부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강제징집녹화 공작 피해자 현황표. 총 피해자가 2,921명으로 나와 있다.
▲ 보안사 자료 진실화해위원회가 보안사령부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강제징집녹화 공작 피해자 현황표. 총 피해자가 2,921명으로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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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진실화해조사위원회, #강제징집녹화 피해자 공식 인정, #공식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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