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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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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시골서 국민학교 교사나 면서기라도 하면서 고생깨나 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차근차근 볼수록 그 단단함이 마치 선승(禪僧)이나 도사(道士)의 지력(志力)을 느끼게 한다.

한마디로 고난과 고민의 음조(音調)가 역렬히 배인, 성스럽기까지 한 용모 단아한 어른이시다. 역사와 권력으로부터 온갖 고난을 받고 수탈당할 대로 수탈당하여 부정축재적 군더더기 살이라곤 찔래야 찔 수 없이 수척해진 그분. 이 땅에 대학교수, 법률가, 문필가 등 많은 '지식인'들이 있지만 이처럼 고난을 함께 안은 지식인은 드물다. (주석 5)

1980년대 한승헌의 모습이고 평생 유지된 형상이기도 하다. 권력이나 명예ㆍ물욕 따위에 욕심이 없었기에 행보가 자유로왔다. 그래서 동류 자유인들과 자주 어울렸다. 난세(일수록)에도 자유인들은 있었고, 우연(또는 필연)의 만남도 나타났다.

'으악새 모임'에 이어 또 하나의 모임이 있었다. '개판'이다. 1981년 7월 어느날 여러 사람과 함께 설악산행이 이루어졌다. KNCC 인권위원회가 그동안 민주화운동으로 고생(옥고)한 사람들을 위로ㆍ격려하는 의미로 마련된 행사였다. 

모처럼 뜻 맞는 이들끼리 어울린 설악산 나들이는 즐거웠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 날씨에 옥살이로 허약해진 몸을 이끌고 산길을 오르자니 힘이 부쳤다. 앞에 가는 사람 뒤를 따라 그럭저럭 발을 움직이다가 도중에 파라솔 매점 그늘에서 쉬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박현채 교수와 조화순 목사 그리고 이해동 목사와 나, 이렇게 네 사람이 간이의자에 함께 둘러앉게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의 품에서 모두 해방감에 들뜨고 천진난만해져서 이런저런 방담을 나누었는데, 문득 우리 네 사람 모두 1934년생으로 개띠 동갑내기임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빵잽이 신세를 겪은 전과자 경력도 공통점이었다. (주석 6)
12일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도쿄 피랍 생환 33주년 기념행사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왼쪽부터 이해동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장, 한승헌 변호사, 이희호 여사, 김대중 전 대통령, 이동호 신부, 한화갑 민주당 대표.
▲ 12일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도쿄 피랍 생환 33주년 기념행사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왼쪽부터 이해동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장, 한승헌 변호사, 이희호 여사, 김대중 전 대통령, 이동호 신부, 한화갑 민주당 대표. 12일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도쿄 피랍 생환 33주년 기념행사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왼쪽부터 이해동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장, 한승헌 변호사, 이희호 여사, 김대중 전 대통령, 이동호 신부, 한화갑 민주당 대표.
ⓒ 연합뉴스 김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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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에 참여했던 이해동의 기록을 통해 좀 더 소상히 알아보자.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우리 네 사람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시국문제와 관련하여 징역살이를 한, 이른바 '빵잽이' 이력이다. 또 하나는 모두 개띠 동갑내기라는 사실이었다. 이내 우리는 동지의식에다, 동년배라는 동질감으로 마치 오래 사귄 친구들처럼 친숙해졌고 마침내는 "우리 자주 만납시다"라는 약속이 체결되었다.

그 후 우리는 서로 집을 돌아가면서 모임을 가졌다. 처음에는 개띠들 모임이라 '개파티'라고 이름을 붙였다가 역시 재기 넘치는 한 변호사가 "개들에게 무슨 파티냐, 개들에게는 '판'이란 말이 훨씬 어울린다."고 하여 '개판'으로 개명하는 데 만장일치 하였다. 이 '개판' 모임이 거듭되면서 자연스럽게 부인들 사이도 친분이 두터워졌고, 그러자 내외들까지 함께 어울려 음식과 정을 나누는 잔치판을 벌였다. (주석 7)

'개판모임'에는 얼마 후 <한겨레> 사장을 지낸 김중배 씨가 참여하여 모두 9명이 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그 잔학했던 군사독재 하에서 우리들은 오직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 즉 인간의 자유와 사회정의의 실현, 그리고 민족의 평화통일을 꿈꾸며 제각기 서 있는 자리에서 작은 몸부림을 친 대가로 감옥살이를 하게 된 동갑내기들이라는, 하나의 공통점만으로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의 농도는 짙을 수밖에 없었다. (주석 8)


주석
5> 최종고, 앞의 책, 69~70쪽.
6> <자서전>, 246~247쪽.
7> <이해동ㆍ이종옥의 살아온 이야기, 둘이 걸은 한길(1)>, 277~278쪽, 대한기독교서회, 2014.
8> 앞의 책, 279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한승헌, #시대의양심_한승헌평전, #한승헌변호사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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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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