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포스터.

영화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작품 중에서도 상징성이 강한 <블랙팬서>는 이 배우 없인 아마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2년 전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채드윅 보즈먼은 백인과 패권 국가 중심으로 진행되던 영웅 서사에 전환점이 됐고, 그 직후로 다양성과 양성평등은 MCU가 추구하는 하나의 가치가 됐기 때문이다.
 
4년 만에 공개되는 <블랙팬서>의 속편 <블랙팬서:와칸다 포에버>(아래 <블랙팬서>)는 그 자체로 온전한 추모 영화기도 했다. 9일 개봉에 앞서 지난 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언론에 먼저 공개된 작품은 채드윅 보즈먼 그 이후 세대교체에 대한 여러 진통을 상징함과 동시에 서사적으로도 한층 깊이를 더하려 한 흔적이 역력했다.
 
채드윅 보즈먼만 빼고 전작에서 활약한 감독과 배우들이 다 모였다. 1편을 통해 최연소 10억 달러 돌파 기록을 세운 라이언 쿠글러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았고, 티찰라 국왕(채드윅 보즈먼)의 동생 슈리(레티티아 라이트)를 비롯해 니키아(루피타 뇽오)·오코예(다나이 구리라) 등 이미 관객에게 얼굴도장을 찍은 주역들이 활약한다.
 
이야기는 티찰라 국왕 사망 후 국상 중이던 와칸다가 또다른 위기를 겪는 과정을 그린다. 아프리카 내 강소국으로 서방 세계로부터 비브라늄 공유를 강요받던 와칸다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또다른 문명국 탈로칸이 등장하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전 세계 유일한 비브라늄 보유국인 줄 알았던 와칸다였지만, 수 세기 전부터 수중 국가를 건설해 온 탈루칸 또한 외계 유성에 영향을 받아 비브라늄을 제련할 수 있게 됐고 비밀리에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탈로칸의 지도자 네이머(테노치 우에르타 메히아)는 마블 코믹스에선 그 역사가 오래된 캐릭터 중 하나다. 발목에 날개가 있고, 물속과 하늘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네이머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뿌리를 둔 마야 문명의 후손이었다. 스페인 등 대항해시대 유럽 국가의 무자비한 침략에 희생당한 선조들과 달리 주술사와 우주의 계시를 빌어 신적 존재가 된 그는 수 백년 간 소위 문명국에 대한 반감을 품고 있다.
 
그런 네이머가 와칸다에게 동맹을 제안하며 일종의 협박을 한다는 게 <블랙팬서2>의 한 축이다. 서방 세계로부터 독립만 외칠 게 아니라 호시탐탐 비브라늄을 노리는 그들을 먼저 치고 두 국가만의 왕국을 건설하자는 게 네이머의 논리였다.
 
이런 외부적 위기와 함께 와칸다 내에선 티찰라 이후 후계자를 정해야 하는 상황, 심지어 라몬다 여왕(안젤라 바셋)마저 네이머에게 살해당하며 대혼란에 빠진다. 영화 중후반부엔 운명적으로 후계자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 슈리 공주의 내면 갈등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고결한 블랙팬서였던 티찰라의 길을 갈 것인가, 강한 와칸다의 재탄생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다 반역자로 몰린 사촌 킬몽거(마이클 B. 조던)의 길을 갈 것인가. 여기에 더해 MIT 공대 재학생이자 비브라늄 탐지기를 개발해 낸 천재 학생 리리 윌리암스의 깜짝 등장도 영화 내에서 위기와 갈등 요인이 된다.
 
<블랙팬서2>는 그간 <어벤져스>로 대표되던 MCU 영화들과 결을 달리한다. 앞선 시리즈물이 서로의 연관성을 강조하며 이른바 밑밥을 던져온 횡적 확대에 기여했다면, <블랙팬서2>는 상대적으로 그 역사나 정체성이 희미했던 소수자 히어로에 집중하는 선택을 한다. 아프리카계인 와칸다 문명, 여기에 남미와 일부 아시안을 흡수한 탈로칸 문명의 전사를 제시함으로써 균형추를 맞추려 했다. 1편이 남아프리카 토속어인 코사어를 끌어왔다면, 2편에선 마야어를 더했다. 미국과 프랑스 등 패권국가가 <블랙팬서2>에선 야욕을 숨긴 채 명분만 내세우는 이기적 국가로 묘사된다는 것도 특징이다.

'블랙팬서2'가 주는 묘한 울림
  
 영화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한 장면.

영화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오롯이 제3 세계의 시점으로 진행되기에 <블랙팬서2>를 보는 내내 묘한 울림이 느껴진다. 티찰라의 사망처럼 실제 주연 배우가 부재하다는 사실 또한 기시감을 준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이 2편을 준비하며 가장 힘들었던 게 채드윅 보즈먼의 부재였다고 한 바 있다. 그렇기에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추모 자막과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정서적 무게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물론 다른 MCU 영화들이 그렇듯 <블랙팬서> 1편을 보지 않았다면,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는 데 진입장벽이 있는 건 사실이다. 다른 시리즈물을 볼 시간이 없다면 2018년 개봉한 1편만이라도 선관람하는 걸 추천한다. 장기 프렌차이즈라는 장애물만 빼놓고 본다면 <블랙팬서2>는 마블 코믹스 세계관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완벽하게 존재하는 추모 서사시가 되겠다. 메시지 또한 상업성을 강조한 게 아닌 정치적 올바름을 택했고, 여성 캐릭터들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끈다는 점에서도 양성평등에 대한 제작진들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쿠키 영상은 하나다. 엔딩 크래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리한나의 'Lift Me Up'까지도 이 위대한 추모 영화의 대미가 된다.
 
한편 8일 코엑스 메가박스 언론시사회에선 영화 후반부에 약 5초간 스크린 화면이 나오지 않는 영사사고가 있었다. 주최 측은 영화관 내 영사기 문제였다고 전했다.
 
한줄평: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위한 프렌차이즈 영화의 치열한 선택
평점: ★★★★(4/5)

 
영화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 관련 정보

원제: BLACK PANTHER: WAKANDA FOREVER
수입 및 배급: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러닝타임: 161분
관람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 2022년 11월 9일 전 세계 최초 개봉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 채드윅 보즈먼 마블 블랙팬서2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