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범한 '불안정노동세대' 가족의 일상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정희와 영태 부부는 각자의 하루 일을 마치고 소주 한잔 기울여가며 저녁을 먹는다. 둘은 서로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며 각자 경력들을 쭉 늘어놓기 시작한다. 영태는 냉동 창고, 공사장, 택배, 각종 배달, 대리운전까지 "몸으로 하는 건 다 했어"라 내세운다. 이에 질세라 정희 역시 마트, 식당, 결혼식 뷔페 기타 등등 열거하며 만만치 않은 내공을 선보인다. 둘은 안정된 일자리를 잡지 못한 채 일용직으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지만 '삶의 질'과 '윤리'는 포기하지 않는 게 유일한 자부심이다. 가끔 여윳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삼겹살을 굽거나 회를 먹으며 반주 한잔 걸치는 게 낙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삶은 통 풀리지 않는다.
 
정희는 초등학교 강사 지원서를 메일로 발송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는다. 영태는 면접도 나가고 구인광고 연락도 해보지만 모두 불발이다. 그런 와중에 영태는 선배에게 아직 할부도 남은 풀 프레임 DSLR 카메라를 2주간 빌려준다. 정희는 그 선배란 사람이 영 미덥지 않다. 역시나 카메라 반납기일은 지켜지지 않는다. 영태는 애써 사정이 있겠지 하며 넘어가려 하지만 문자도 전화도 받지 않는 선배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간다.
 
그런 와중에 가계부를 정리하던 정희는 이번 달 지출을 수입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걸 발견한다. 정희가 켜놓은 컴퓨터 화면에는 서울 역 노숙인이 쫓겨난다는 기사가 떠 있다. 영태는 몇 년 만에 연락 온 친구가 동업제안을 하기에 살짝 기대해보지만 알고 보니 다단계 회유라 실망한다. 계속 거짓말을 하는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영화에서는 처음으로) 계속 점잖던 영태는 격분하며 멱살을 쥐고 거친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옛 친구는 "돈도 못 버는 백수××가!" 하며 본색을 드러낸다.
 
정희는 후배 미선에게 빌려줬던 돈을 갚아달란 연락을 받고 하루만 말미를 달라 청한다. 둘은 일과를 마치고 영태가 겪은 시련을 공유한다. "어쩐지 느낌이 이상하더라"하는 정희에게 영태는 "돈을 쉽게 벌 리가 없지"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루 종일 비가 올 것 같다며 창밖을 보던 둘은 이번 달 가계부 구멍을 염려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래도 "우리가 사채까지 쓴 건 아니잖아"라고 자족하며 자신들이 지켜온 윤리와 삶의 질을 포기하지 않으려 다짐한다.
 
하지만 끝내 대출이자도 연체되고 장모님 생신에 무심코 빈손으로 갔다가 다른 형제자매들이 선물과 돈 봉투를 챙겨온 상황을 놓고 아옹다옹하던 부부는 급기야 냉전에 돌입한다. 늘 하루 일과를 결산하며 반주를 나누고 한 침대에서 다정하게 잠들던 그들은 처음으로 각방을 쓴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그들은 더욱 절실하게 체감되는 빈곤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간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자전적 경험에서 우러나왔을, 현실적인 빈곤의 디테일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이야기는 한국독립영화에서 질릴 만큼 흔하게 볼 수 있는 빈곤가족 수난사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 흔할 대로 흔한 소재를 활용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서 놀라울 정도의 의외성이 발견된다. 우선 이 영화는 사실상 제작진과 출연진의 태반을 원향라, 박송열 두 '부부제작단'이 온전히 감당해낸다 (이들의 전작 <가끔 구름>부터 선보여온 방법론이기도 하다). 실제 그들이 지역에서 독립영화에 몸담으면서 겪었을법한 어려운 시절 일화가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대목이다. 자전적인 경험담을 옮긴 듯 영화 속에서 이들 부부는 북 치고 장구 치며 소박한, 때로는 궁상스럽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실제로 박송열 감독은 연출보다는 여러 독립영화에서 스태프로 이름을 자주 확인할 수 있다. 감독 본인의 창작욕을 자유롭게 펼치고 싶어 독립영화에 몸담았을 텐데 생계 때문에 늘 남의 영화 제작현장 뛰어다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인터뷰 등에서 부부제작단의 얼굴은 늘 해맑다. 현실은 하고픈 것 다 할 수 없다는, 포기할 건 포기하고 지킬 건 지키자는 결기가 서린 듯하다. 그런 조건의 제약을 감수하고 완성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제작비는 '독립영화'로 대접받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영화에 비해 몇 분의 일 제작비로 검소하게 완성되었다. 어쩌면 이들 부부제작단은 분신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면 온전히 둘 만으로 영화를 마쳤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들 정도의 모양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쳐 관객 앞에 곧 도착할 영화는 '빈티'보다는 미니멀리즘의 정갈함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들이 선보이는 가난은 흔히 '학생영화'로 불리는 독립영화들이 선보이는 극단적 위기상황과는 거리감이 꽤 있다. 하지만 처절함을 강조하는 수많은 타 영화들에 비해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가 섬세하게 표현한 우리시대 가난의 풍경은 그 설득력 측면에서 비교를 불허한다.
 
예를 들어보자.
 
정희는 다이어리에 가계부를 정리한다. 화면에 클로즈업된 내역을 통해 영화 속 부부의 실 지출현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부분의 생활비 지출은 카드결제하고 공과금 등 고정 지출은 통장이체 처리한다. 이들의 지출수단은 현금사용이 거의 사라진 풍속도를 그대로 반영한다. 부부의 지출내역 중 고정경비는 방세(200,000원), 관리비(20,000원), 학자금(130,000원), 핸드폰(63,000원), 보험료(126,000원), 건강보험(49,000원 등이다. 가변경비는 전기세(전월 4,900원 ⇒ 현월 7,000원), 가스비(20,100원 ⇒ 13,000원), 카드 값(500,000원 ⇒ 640,000원), 수도세(22,500원 ⇒ 미상) 등이 있다. 부부는 전월 총 지출 1,135,500원에서 이번 달에 거의 카드 값 10여만 원을 추가로 지출한 게 전부다. '과소비'를 했다고 보기엔 턱없이 부족한 '낭비'다.
 
영화 속에서 부부가 누리는 사치는 기껏해야 휴대용 가스버너에 삼겹살 몇 점 구워먹고 마트에서 할인판매로 저녁에 풀릴 회 한 접시 사먹는 게 전부다. 그게 그들의 '삶의 질'을 사수하는 최저선인 셈이다. 이 조건을 지키기 위해 부부는 처갓집에서 반찬을 얻어오고 마트 할인전단지를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본다. 어렵게 얻은 수업 대타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 택시비를 지출하는 것도 망설인다. 이번 달 가스요금 좀 아껴야 했나? 하며 자책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이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장래를 위해 투자하지 않았다고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으랴.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가 선보이는 우리시대 가난의 풍경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보편적이기에 더 진한 호소력을 갖는다. 어쨌건 영화 속 주인공들은 밥을 굶지 않고 어떻게든 꾸역꾸역 끼니를 챙긴다. 거기에 곁들이는 소주 한잔, 일당을 벌면 사오는 노점상 꽈배기 한 개가 '생활의 기쁨'이 되는 존재들이다. 그랬던 그들이 점점 벼랑 끝으로 밀려나면서 툭툭 나누는 한마디가 아프게 감겨든다. 속상한 나머지 함께 쓴 소주를 과음한 끝에 다음 날 숙취에 시달리자 영태가 정희에게 '꿀물이라도 태워줄까?'하자 정희가 힘겹게 내뱉는 말. "꿀이 없잖아" 빈곤의 풍경은 그렇게 스며들 듯 다가온다.
 
이야기를 전하는, 낯설지만 오래된 테크닉의 힘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여기에 추가로 본 작품은 고도로 양식화된 패턴에 따라 정교하게 계산된 형태를 취한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톤이나 카메라의 방향은 과거 흑백영화의 문법을 절로 떠올리게 만든다. 고전영화를 섭렵한 이들에겐 너무나 익숙하지만 근래 독립영화 관객들에겐 생소한 영역일 테다. 영화 속 대부분의 시점은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둘의 상황과 감정은 흑백 스틸 컷을 응시하는 구도를 잡는다. 예전 무성영화 시절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된 인물들의 표정을 재연하는 분위기다. 이를 통해 두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그들이 처한 상황을 관객은 고도로 집중된 상태로 응시할 수 있다.
 
몇 장면은 예외적으로 간혹 제3자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이 컷들은 이들 부부의 소박하지만 단단한 신념을 잔인한 세상이 어떻게 천대하고 무너뜨리려 하는지를 상징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함께, 혹은 각자 화면의 중심에 서지 않는 순간들은 대충 다음과 같다.
 
1) 영태에게 유럽에서 앤티크 가구 수입사업 동업을 미끼로 다단계를 제안하던 친구가 거절당하자 본색을 드러내며 그를 모욕하는 순간
2) 끝내 구멍 난 가계부를 메우기 위해 후배에게 소개받은 사채업자를 만나러 간 정희를 업자들이 눈으로 스캔하듯 살피는 순간
3) 대리운전을 하던 영태에게 괜한 시비를 걸던 진상 고객이 끝내 분을 참지 못한 영태가 박차고 나가버리자 뒷모습을 응시하는 순간
 
이 장면들은 공통적으로 자기들끼리는 소박하게 행복을 유지하는 정희와 영태 부부를 바라보는 자본주의 세상의 시선이 지배적인 순간들이다. 아무리 둘이 세상이 뭐라고 하건 자신들의 소신을 지키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며 살아가려 해도 세상은 그들을 체제가 강요하는 기준에 강제로 끼워 맞추는 세태를 극명하게 상징화하는 대목이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길 가던 나그네를 고문하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격인 셈. 팔다리가 침대 밖으로 삐어져 나오면 잘라버리고 모자라면 강제로 비틀어 맞추던 그 고문 기구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이러니를 조성하는 장치는 또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동선이나 배경이 되는 날씨는 그 자체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은 물론 스토리텔링으로 기능한다. 이들은 종종 자신들의 집에서 창밖을 쳐다본다. 하늘이 흐리고 비가 내릴 것 같으면 둘은 마치 바깥 세계와 '대면'하듯 화면을 좌우로 분할해 반대편을 응시한다. 자신들을 향해 비바람을 몰아칠 세계에 맞서는 태도다. 그 순간 그들은 다가올 시련을 예감하지만 시선은 결연하고 자세는 곧바르다. 당당함이 느껴지는 풍모다.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닥칠 진정한 위기는 남들은 아랑곳하지 않을 화창한 순간에 비로소 도래한다. '안나 카레니나'의 인상적인 도입부처럼 불행은 너무나 개별적인 것이다. 날씨가 좋아 사람들이 나들이할 때 이들은 카드결제 시한을 걱정해야 하고, 절대금기였던 사채업자를 찾게 된다. 다들 너무나 무심하고 태평한 가운데 오직 주인공들만이 막막할 뿐이다. 정희는 비도 안 오는데 화창한 날 사채업자를 만나러 가면서 장우산을 한손에 꼭 움켜쥐고 있다. 마치 세상의 유혹에서 자신을 방어하려는 것처럼(하지만 결국 우산으로 막을 수 없다는 걸 직감한 관객에게 이 소품장치는 더없이 운명론적이다).

그런 가운데에서 또 다른 주목해야할 지점은 이들이 수시로 화면 가장자리에서 중앙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오거나 혹은 반대로 등을 돌리고 어디론가 향하는 순간들이다. 이 찰나들은 각각이 이야기 전개와 주인공들의 심경을 풀어내는 코드와 통한다. 
 
무심코 지나치면 별 것 아니지만 화창한 날씨가 가져오는 역설처럼 이들에게 진정한 파탄은 경제적 위기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한 존엄성의 붕괴, 내면의 함락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늘 마시던 소주에서 어느 순간 주종이 맥주로 바뀐다. 그리고 이전에 느끼던 돈 몇 푼 때문에 겪던 굴욕감을 초과하는 실존의 위태로움이 그들에게 엄습한다. 그게 이들에겐 더 결정적 '위기'의 순간으로 다가온다. 
 
타인과의 비교는 주인공들에게 위기로의 입구와 같다. 영태가 살펴보는 (카메라 먹튀한) 선배의 인스타그램은 그로 하여금 평정심을 잃게 만드는 촉매와도 같다. 나는 이렇게 성실히 폐 안 끼치고 살려고 고생하는데 저들은 대체 뭐지? 하는 혼란함은 곧 분노로 전환되고 만다. 영태가 종종 답답할 때 찾던 동네 천변에서 개울 너머로 우연히 포착된 선배의 광경은 '강'을 건너면 영태도 누릴 수 있을법한 쾌락의 정원과도 같다. 도덕과 윤리를 버리고 '강'을 건너는 순간 금방 얻을 수 있는 부와 여유로움의 유혹이 그들 사방에 펼쳐진 격이다. 그렇게 정교한 세공으로 마무리된 모양새는 마치 영화 전체가 포토에세이 조합인 것처럼 상상하게 만든다.
 
신념을 지키는 우직함이 숭고함에 도달하는 영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그렇게나 공들인 이미지 전달을 통해 부부제작단이 전하려는 이야기는 더없이 소박하지만 도덕적이다. 가난과 차별 속에서 이들은 끊임없이 시험을 당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 역시 자신들이 설정한 존엄성을 놓지 않으려 일상의 투쟁을 이어간다. 그런 주인공들의 투박하지만 단단한 저항의 이야기가 영화 내내 펼쳐진다.
 
그런 의지가 상징적으로 구현되는 순간이 두 번의 악수다. 부부간에 악수를 할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단순히 연인이 아니라 같은 삶의 지향을 공유하는 '동료'로서 둘의 악수는 더할 나위 없이 무게감을 지닌다. 첫 번째 악수는 그렇게 무거운 느낌은 아니다. 주변에서 소개받은 면접장에 나가면서 어떻게든 스스로의 힘으로 먹고 살자는 결의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요즘처럼 성실히 묵묵하게 일하는 '노동'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세태에선 이 또한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모두가 코인이다 주식이다 광란의 소용돌이에 빠질 때 영화 속 주인공들은 '돈 벌기가 무섭다'고 말한다. 돈 벌기가 어렵다는 게 아니라 무섭다는 것이다. 몇 푼 남짓한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버려야 하는 순간이 두려운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우리가 남의 돈 벌려면 자존심 버려야 된다며 당연시하는 것에 도전하는 의문이다. 반대로 자신이 정해놓은 기준에 어긋나면 당장 몇 만원이 절실해도 이들은 포기를 감수한다. 지각해서 폐를 끼쳤으니 소개해 준 이에게 돈을 안 받겠다고 말한다. 전화 속 상대방은 '노동의 대가'를 포기하지 말라고 오히려 다그친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돈의 노예는 되지 않겠다는 결연한 태도는 '부드러운 직선'의 형상 그 자체다.
 
두 번째 악수는 좀 더 본격적이다. 영태는 어떤 경로로 부당한 추가소득을 얻었다. 정희는 그게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대가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영태가 마음이 편하지 않다면 돌려주자고 한다. 정희의 허락에 영태는 감사해하며 서로 악수를 나눈다. 이들은 누구도 뭐라 할리 없는 그 많지도 않은 돈에 몇 시간, 어쩌면 며칠을 끙끙 앓아가며 고민했을 테다. 세상의 부당한 질서에 찌들대로 찌든 우리에게 꽂히는 비수 같은 장면이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마치 디킨스의 산업혁명기 영국사회에 대한 풍자나 구로사와 아키라의 초창기 작업에서 선보이는 휴머니즘 가득한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것 같은 기운이 반세기를 훌쩍 뛰어넘어 21세기에 도착한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그런 위트 넘치는 드라마 속에서 이 인간미 넘치는 부부가 겪는 시련의 강도는 결코 약하지 않다. 이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 시험에 흔들리면서도 끝내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윤리를 놓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의 표정은 점점 더 슬퍼질 수밖에 없다.
 
몇몇 장면에서 특히 이들이 화면 너머로 관객을 빤히 응시하는 순간, 우리는 구경꾼을 넘어 가슴에 손을 얹고 영화 속 주인공들의 고뇌를 자신의 속내로 연결하게 될 테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부부제작단이 간절히 전하고픈 주제의식의 정수다. 자신들이 지금 현재도 직면한 시험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숙제를 이렇게 몇 분 동안 정면으로 도망갈 구석도 없이 '대면'하게 만들기란 쉽지 않다. 언뜻 소박해 뵈는 겉모양 속에 고전을 재해석한 경이로운 찰나와 우리가 애써 외면해오던 도덕을 숨겨둔 영화가 방금 도착했다.
 
<작품정보>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Hot in Day, Cold at Night
2021|한국|드라마
2022.10.27. 개봉|90분|12세 관람가
감독 박송열
주연 원향라(정희 역), 박송열(영태 역)
출연 신원우(명수 역), 손민희(선생님 역), 이태리(사채업자 역),
김효진(사채업자 남편 역), 서철(영태친구 역), 주경순(정희 모 역)
특별출연 원미라(미선 역)
PD 원향라
각본 박송열, 원향라
촬영/조명 박송열
편집 박송열, 원향라
녹음 박송열, 류한규
제작 사랑하자
배급 필름다빈
 
2021 26회 부산국제영화제 KBS독립영화상, 크리틱b상
2021 47회 서울독립영화제 장편 최우수작품상
2022 10회 무주산골영화제 영화평론가상
2022 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 공식초청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박송열 원향라 가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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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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