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오랜만에 한국 대표팀에 승선한 이강인이 21일 비대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이강인 ⓒ 대한축구협회


이강인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던 친정팀과 파울루 벤투 감독에게 마치 한풀이라도 하듯 화끈한 한 방을 작렬했다. 이강인이 리그 2호골을 터트린 마요르카가 발렌시아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10월 23일 오전(한국시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린 2022-23시즌 프리메라리가 11라운드에 경기에서 마요르카는 발렌시아에게 2-1로 승리했다. 상대인 발렌시아는 이강인이 지난 해까지 활약했던 친정팀이었기에 이날 양팀의 대결은 '이강인 더비'로 주목받았다. 공교롭게도 선발 출전한 이강인은 역전 결승골을 성공시켜 팀 승리를 이끌며 친정팀에 제대로 비수를 꽂았다.
 
양팀은 득점없이 전반전을 마친 뒤 후반 7분 사무엘 리노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에딘손 카바니가 키커로 나서서 성공시키며 발렌시아가 먼저 앞서 나갔다. 반격에 나선 마요르카는 후반 21분 은디아예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무리키가 마무리하며 똑같이 응수했다.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던 후반 38분 이강인이 해결사로 나섰다. 페널티지역 왼쪽을 침투한 이강인은 상대 수비를 제치고 왼발 대각선 슈팅으로 발렌시아 골망을 흔들었다. 좋지않았던 첫 트래핑과 불리한 각도에서도 침착한 볼컨트롤과 간결한 페인팅으로 수비를 뒤흔들며 끝내 슈팅까지 이어간 이강인의 축구센스가 돋보였던 장면이었다.
 
마요르카는 남은 시간 이강인의 결승골을 잘 지켜내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마요르카는 시즌 3승(3무5패, 승점 12점)의 성적으로 리그 12위로 올라섰고, 이강인은 프리메라리가 사무국이 선정하는 경기 최우수선수(MOM)에 이름을 올렸다.
 
이강인에게 발렌시아와의 관계는 '애증'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수 있다. 발렌시아는 이강인의 첫 소속팀으로 유스 시절을 거쳐 성인무대에서 프로 데뷔까지 함께하며 그의 축구 인생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는 팀이다.
 
이강인은 2019년 FIFA U-20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의 준우승을 이끌고 골든볼(최우수선수)까지 수상하며 세계 최고의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정작 발렌시아에서는 성인무대에서 통산 62경기 출전해 3골 4도움에 그쳤다.
 
1군에서 몇년간이나 출전시간과 역할 문제로 갈등을 빚는 패턴이 반복됐다. 복잡한 팀내 정치적 갈등과 선수단 파벌문제, 전임 감독들의 이강인에 대한 신뢰 부족, 팀전술에 맞지않는 이강인의 포지션과 플레이스타일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혔다. 현지 언론에서도 발렌시아가 이강인을 활용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여러 차례 의구심을 제기했을 정도다.
 
결국 발렌시아에서의 미래에 회의를 느낀 이강인은 2021년 구단의 재계약 제안을 거절하고 자유계약선수가 되어 마요르카로 둥지를 옮겼다. 첫 해에는 여전히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1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적응기를 마친 이강인은 올시즌 당당히 마요르카의 핵심 주전으로 정착했다. 현재 이강인은 올시즌 2골 3도움으로 팀의 에이스이자 간판 골잡이인 무리키(5골)과 함께 팀내 최다 공격포인트 공동 선두에 이름을 올리며 발렌시아를 떠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이강인이 마요르카로 이적한 이후 친정팀 발렌시아와의 대결에서는 3번째 만남만에 드디어 첫 승을 거두며 통산 전적은 1승 1무 1패로 균형을 맞췄다. 이강인은 지난 2021-22시즌 10라운드에서 이적후 첫 공격포인트를 바로 발렌시아(1도움)에서 기록한바 있다. 그리고 다시 1년만에는 결승골까지 터뜨리며 친정팀에 강한 면모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강인은 서운함이 쌓았을 친정팀에 대해서 절제된 예의를 잃지않았다. 이강인은 짜릿한 결승골 직후에도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다. 대신 관중석을 향하여 두 손을 모으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보통 축구선수들이 친정팀을 상대로 골을 넣은 상황이 벌어졌을때 기쁜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미안하다.'는 의미의 동작으로, 반드시 의무는 아니지만 일종의 불문율과 예의에 해당한다.
 
인터뷰 역시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강인은 경기 후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진다"고 복잡했던 감정을 드러내며 "발렌시아는 내가 성장한 곳이고 10년을 몸담았던 곳이다. 나는 그들이 잘되기를 바란다. 발렌시아에 감사하다"고 말하며 끝까지 전 소속팀을 배려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이강인의 활약은 카타르월드컵 최종엔트리 발표를 앞둔 시점에 축구대표팀 '벤투호'에게도 큰 영향을 줄 전망이다. 이강인은 마요르카에서의 맹활약을 앞세워 지난 9월 국내 A매치 2연전 명단에 소집되어 약 1년 7개월만에 대표팀에 복귀했으나, 정작 경기에는 1분도 출전하지 못했다.
 
벤투 감독은 이강인을 활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2연전에서 A대표팀의 경기력도 그리 좋지않았던데다, 선수를 소집해놓고 납득할만한 이유없이 제대로 기회도 주지않은 벤투 감독의 '불통'에 여론의 비판이 높아지기도 했다. 이로서 사실상 이강인이 벤투 감독의 '월드컵 플랜'에서는 배제되었다고 보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강인이 별다른 소득없이 대표팀에서 소집해제된 이후에도 소속팀에서 꾸준히 놀라운 활약을 이어가면서, 대표팀 재발탁 여론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스스로 다시 한번 되살리는 분위기다. 많은 전문가와 팬들은 여전히 이강인이 월드컵에서 벤투호에 중요한 자원이 될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한다. 창의적인 전진패스와 플레이메이킹, 세트피스에서의 킥 처리 능력 등, 후반에 경기 흐름을 바꿀수있는 '조커'이나 '크랙'으로서 이강인과 비슷한 유형의 선수는 현재 대표팀에 전무하다.
 
벤투 감독은 지난 21일 국내파 위쥐로 10월 대표팀 소집 훈련명단을 먼저 발표한 상황이다. 아직 유럽파가 포함된 최종엔트리는 확정되지않았다. 오현규나 양현준같이 아직 A매치 경험이 없는 국내파 신성들도 포함되었다. 이강인에게도 아직 '라스트 찬스'는 남아있다는 의미다. 마요르카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강인의 놀라운 퍼포먼스가 벤투 감독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까지 열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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