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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 중앙고등학교 이성원 교사의 ‘자연미술’ .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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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에는 온통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자연과 교감하며 그 속에서 또다른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있는 '자연미술' 수업, 관련해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서산 중앙고등학교 미술담당 이성원 교사를 지난 14일 학교 미술실에서 만났다.

관옥 이현주 선생은 자연미술에 대해 "자연이 최고의 스승인 까닭은 사람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라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말씀이 생각난다. 단순한 삶, 소박한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하나가 자연미술로 인해 새롭게 열리는 느낌"이라고 극찬했다.

'자연미술'은 198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 처음 생겨나 해외로 퍼진 현대미술의 한 갈래로 꼽힌다. 통상 자연 속에 있다 보면 변화무쌍한 느낌에 마음과 생각이 어느 방향으로든 이끌리게 된다. 자연미술은 그걸 받아쓰기 하듯 발견하고, 연결하고, 만들고, 설정하는 등의 표현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자연미술가 이성원 교사는 20여년 전 국내 최초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연미술 수업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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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올린(학생작품) .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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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미술이라는 게 조금 생소합니다. 어떤 것일까요?

"자연미술은 자연 속을 천천히 거닐거나 머물면서 자연에 반응하듯 현장에서 표현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좀 특이한 미술입니다. 40년이 넘었는데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아직도 생소하지요.

보통 미술은 작품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지만 자연미술은 자연 속에 있는 것 자체를 더 중시합니다. 적어도 제 경우엔 그렇습니다. 작품사진을 보시면 금방 이해가 되실텐데요. 산책, 휴식, 명상하면서 그때 그때 눈에 들어오는 상황이나 떠오르는 생각을 현장의 자연물이나 상황으로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다른 미술과 달리 인위성보다는 자연의 자연성을 드러내려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좀 소극적인 미술입니다. 자연 속에서 너무 적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자칫 폭력이 되기 쉽거든요.

소나무 밑에, 달팽이 옆에... 내가 그냥 있는 것, 저는 그것을 중시합니다. 그래서 학생들과 자연미술 수업을 할 때도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냥 나무 밑에 앉아있는 것도 자연미술'이라고 말하지요. 그러면 아이들도 편안해 합니다. 물론 아이들은 지루한 것을 못 참기 때문에 무엇이든 하기 시작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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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방(학생작품) .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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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을 유난히 강조하는 까닭이 있으실까요?

"자연을 강조한다기 보다는 자연 속에 있으면 편안해지잖아요. 저만 그런가요? 자연은 고민상담소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처럼 복잡한 시대에는 말 못할 고민들이 상당하잖아요. 자연이 항상 해결책을 주진 못하더라도 자연 속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마음이 밝아진답니다.

사람들은 해결하지 못할 고민이 있을 때 멍하니 산을 바라보기도 하고 공원 나무 밑에 앉아 손에 닿는 막대기로 땅을 끄적거리기도 하고, 이유 없는 글씨를 써보기도 하잖아요. 금방 지워버리기도 하지만요.

자연은 우리에게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지혜를 주는 것 같기도 해요. 수많은 철학자, 과학자, 예술가들이 자연 속을 걸었고, 산책을 통해 많은 좋은 생각들을 떠올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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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솜사탕(학생작품) .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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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미술에서는 모든 사람을 작가라고 하시는데, 그럼 그중에서도 특별히 소질이 있는 분들이 있나요?

"우리 모두 누구나 조금씩은 작가입니다. 뒷산에 있는 거북이 바위 이름을 지은 사람은 향토사학자도 아니고 미술가도 아닌 동네 사람일 겁니다. 자연미술은 '엄마, 구름이 돌고래 같아'라고 아이가 말하는 그 시각과 표현 동기가 같습니다.

아이들은 특별히 자연미술적 소질이 넘쳐나죠. 아무 거리낌이 없거든요. 어릴 땐 누구나 꽃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냥 모래나 돌을 가지고 놉니다. 아이들의 소꿉놀이는 일종의 설정이지만 의식하지 않고 다들 그냥 하는거죠.

'내가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데 40년이 걸렸다'고 피카소가 말한 것처럼,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그 감각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미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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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학생작품) .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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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미술을 하다보면 굉장한 보람도 있었을텐데요.

"이렇다하게 가르쳐 준 것이 없는데도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작품들을 해내는 아이들을 보면 '전해 주는 일만으로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자연미술 수업을 시작한 이후 교육과정이 몇 번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추구하는 인간상이 자연미술과 다 연결돼서 신기했습니다.

저는 자연미술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해보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끔 자연미술을 알리는 강의를 다니기도 합니다. 창의성, 인성, AI시대 대비, 기후위기, 마을교육, 공생 같은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언제든 자연미술과 연결시켜 풀어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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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벌의 비행(학생작품) .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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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미술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을텐데요. 무엇일까요?

"자연미술을 하기 위한 준비물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 사진기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점을 둬야 할 사항은, 목적을 갖지 말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죠. '훌륭한 작품을 꼭 하고 말거야' 라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잘 안됩니다. 그냥 아이들과 산책을 자주 하세요. 그러면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그냥 동행하는 사람이 되면 좋습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아이들은 가만히 있질 못하지요. 이것을 두고 어른들은 단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세상에 그만한 착각도 없을 겁니다. 그 아이들은 가르칠 필요가 없거든요.

중학교 이상의 아이들은 처음에는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럴 때 가장 쉽게 가르치는 방법은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먼저 해보는 겁니다. 어른이 유치한 행동을 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처럼요.

아이들이 아무리 유치한 행동을 해도 기특하게 보셔야 합니다. 이 복잡하고 바쁜 시대에 아이들이 실잠자리 한 마리를 오래 바라보는 일, 나뭇잎 하나를 주워 드는 일! 정말 기특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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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 발(학생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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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20여년 동안 자연미술 수업을 해 본 결과, 이 활동은 단점이나 부작용이 없어요. 아이들의 자연미술 표현방법 중 가장 흔한 것이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것을 연결하는 방법입니다. 방사형으로 퍼진 풀과 막대기를 연결하여 불꽃놀이를 만드는 것처럼요. 간단해 보이지만 이런 행동은 쉽지 않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을 일컬어 '관계 없는 것을 연결하는 능력'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아주 쉽고 빠르게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훈련법으로 이만한 게 없습니다. 게다가 재밌기까지 하잖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미술을 알게 되고 하게 되길 바랍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요즘 혼자 산책하는 사람들이 늘었는데 산책을 좋아하는 어른들이 취미로 시작해봐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한다면 더 좋겠죠.

끝으로 한말씀 더 드리자면 자연이 항상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늘 다니던 공원이나 산책로라면 괜찮겠지만 숲속이나 들판으로 가실 생각이라면 계절마다 있을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알고 조심해야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자연미술을 한번 해보시길 진심으로 권합니다. 100번의 산책 중, 한 3번 정도만 시도 해보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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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꽃놀이(학생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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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레들의 낙서(학생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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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소파에 앉아 빈둥거리고 있는데 베란다에 세워 둔 자전거가 "내 이름은 자전거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자전거 모양에서 자전거라는 글자가 보인거죠. 그래서 그걸 조금 더 연구해서 용접으로 만들어봤습니다. 아이들은 장전겅이라고 불러요.(이성원 교사 작품)
▲ 자전거(이성원 교사 작품) 어느 날 소파에 앉아 빈둥거리고 있는데 베란다에 세워 둔 자전거가 "내 이름은 자전거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자전거 모양에서 자전거라는 글자가 보인거죠. 그래서 그걸 조금 더 연구해서 용접으로 만들어봤습니다. 아이들은 장전겅이라고 불러요.(이성원 교사 작품)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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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태그:#자연미술, #서산중앙고등학교, #이성원미술교사, #자연미술은새롭게배우는것이아니라회복하는것, #자연미술은힐링과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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