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저녁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린 27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

14일 저녁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린 27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 ⓒ 성하훈

 
27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0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했다. 코로나19 이후 온전한 정상화를 목표로 했던 부산영화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주요 부문에 대한 시상과 폐막작 <한 남자> 상영으로 이어진 폐막식은 영화제의 성공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특히 마지막 날 이어진 '말의 성찬'은 여러모로 주목받았다. 결산 기자회견부터 폐막식 수상소감까지 진심을 담은 감사와 평가, 시적인 표현들과 감각적인 답변들이 이어졌다. 부산영화제에 대한 아시아 영화인들의 기대도 한몫하는 모습이었고, 여기에 성공적인 개최에 자부심을 느끼는 부산영화제 관계자들도 뿌듯함을 전했다.
 
부산영화제가 폐막하던 날 나온 말들을 정리해 본다.
 
"부산 관객의 문화적 소양과 통찰력, 식견에 감탄"
 
"부산영화제 관객들이 지닌 문화적 소양과 통찰력, 그리고 영화에 대한 높은 식견에 정말 감탄했다. 이와 같은 관객들이 주는 상을 받게 돼서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기에 관객들을 감동시키는 일이 제 소임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이곳에서는 부산의 관객들이 저를 깊이 감동시켰습니다."
 
폐막식에서 KB 뉴커런츠 관객상을 받은 인도의 아미르 바쉬르 감독은 수상소감의 대부분을 관객에 대한 감사에 할애했다. 형식적인 찬사로 보이지 않은 진심을 담은 감사로 느껴진 것은 부산영화제의 관객 수준이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아미르 바쉬르 감독

아미르 바쉬르 감독 ⓒ 부산영화제 제공

 
다큐멘터리 <축구광 자흐라>로 비프메세나상을 받은 샤흐민 모르타헤자데, 팔리즈 쿠쉬델 감독도 서면으로 보낸 수상소감에서 "영화를 관람한 관객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며 "솔직히 이처럼 열정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열렬한 관객들 사이에서 즐거웠고, 그들의 반응을 직접 보면서 질문을 받고 대화를 나누면서 큰 감명을 받았다. 4년 동안 이 영화에 쏟아부은 노력이 관객분들과 이 상으로 보상받은 듯하다"고 관객에 대한 찬사를 잊지 않았다.
 
결산 기자회견에서 이용관 이사장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은 관객분들이 어려움을 메워주셨다"고 한 것도 의례적 인사가 아닌 것은 구름처럼 모여든 관객들에 대한 깊은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시위로 인터넷 차단한 이란

"자유와 평등을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우리 이란의 용감한 여성들과 남성들에게 이 상을 바치고 싶습니다."

이란 샤흐민 모르타헤자데, 팔리즈 쿠쉬델 감독의 수상소감에서 관심을 끈 대목은 이란의 현실을 용감하게 언급한 부분이었다. 폐막식에 참석하지 못한 다른 수상 감독들은 영상으로 수상소감을 보내 왔으나 유일하게 이란의 두 감독은 서면으로 소감을 보내왔다.
 
 27회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메세나상을 수상한 샤흐민 모르타헤자데, 팔리즈 쿠쉬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축구광 자흐라>

27회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메세나상을 수상한 샤흐민 모르타헤자데, 팔리즈 쿠쉬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축구광 자흐라> ⓒ 부산영화제 제공

 
이들은 남동철 프로그래머가 대독한 메시지에서 "안타깝게도 현재 이란에서 발발한 시위로 인한 인터넷 차단 때문에 저희는 여러분께 영상 메시지를 보낼 수 없다"며 서면으로 보낸 이유를 설명했다.
 
관객들에게 감사를 전한 이들이 수상의 영광을 이란의 여성과 남성에게 돌리자 관객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이란 시위는 부산영화제에도 영향을 끼쳤다. 당초 참석하기로 했던 <비욘드 더 월> 바히드 잘릴반드 감독은 현지의 상황으로 부득이 불참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는 22세의 여성이 머리카락을 충분히 자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구타당한 후 사망한 사건으로 촉발된 히잡 시위에 대해 설명하며 국제적인 연대도 요청했다.  
 
영화제 기간 한국의 지인들에게 메일을 통해 현지 상황을 전달한 이란 영화인들도 여럿일 정도였다. 몇 해 전 보수정권의 정치적 탄압을 물리쳤던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표현의 자유뿐만 아니라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에 보루로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에 대한 헌사
 
 지석상을 수상한 개막작 <바람의 향기> 하디 모하게흐 감독

지석상을 수상한 개막작 <바람의 향기> 하디 모하게흐 감독 ⓒ 부산영화제 제공

 
개막작 <바람의 향기> 감독으로 폐막식에서 지석상을 수상한 이란의 하디 모하게흐 감독의 수상소감도 특별했다.
 
"그대의 가슴에 화살이 관통할 때, 내 등에는 단도가 내려꽂혔지.
그 순간, 무라카미의 벚나무는 그대를 볼 수 없다는 절망감에 영원히 피지 않기로 결심했다더군.
허나, 그대가 다가와 부드럽게 속삭였지.
'이번에는 다시 꽃을 피우셔요! 새들은 체리를 좋아하거든요' 라고..."

 
영화에 이란의 거장 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에 대한 헌사를 담았듯 한 편의 시를 읊은 감독은 "제 영화를 선택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부산영화제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폐막작 <한 남자>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

폐막작 <한 남자>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 ⓒ 부산영화제 제공

 
"컵에 한 방울씩 서서히 물이 쌓이는 느낌으로..."

폐막일 오전에 열린 폐막작 <한 남자> 기자회견에서 주연배우 츠마부키 사토시의 답변도 인상적이었다. 영화 내용 중에는 재일교포 차별에 대한 부분이 있으나, 감독은 원작 소설을 그대로 차용했다고 했다.

츠마부키 사토시는 재일교포로 설정된 배역에 대해 "재일교포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았고, 정신적으로 많은 부분이 축적됐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컵에 한 방울씩 서서히 물이 쌓이는 느낌으로 연기했다"고 다소 은유적인 표현으로 답변했다.
 
"다른 조건은 모르고 오직 작품만 평가"
 
 14일 오전 부산영화제 결산 기자회견에 참석한 뉴커런츠 심사위원 배우 카세 료

14일 오전 부산영화제 결산 기자회견에 참석한 뉴커런츠 심사위원 배우 카세 료 ⓒ 부산영화제 제공

 
"여성 감독인지 남성 감독인지 다른 조건은 알지 못 했고, 오직 작품만 봤다."
 
뉴커런츠 심사위원을 대표해 결산 기자회견에 나온 일본 배우 카세 료는 말은 간단명료했다. 부산영화제 대표적인 경쟁부문 뉴커런츠는 지금까지 남성 감독들의 독무대나 다름없다. 27회까지 44명이 나온 뉴커런츠 수상작 중 여성감독 수상은 6명에 불과하다. 비율로 따지면 15%가 채 안 된다.
 
영진위의 국내 지원사업에서 여성 가산점 적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황인데, 부산영화제 수상이 한쪽으로 편중됐다는 지적은 나오지 않고 있다. 심사위원들이 다른 조건을 따지지 않고 오직 작품으로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무지를 탓한다"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 이영애 배우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 이영애 배우 ⓒ 부산영화제 제공

 
"제가 아직까지 이렇게 훌륭한 배우를 몰랐다니 제가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으로 시상을 위해 나선 배우 이영애가 수상자인 김금순 배우를 향해 보낸 찬사는 울림이 있었다. <울산의 별>에 출연한 김금순 배우는 이영애 배우와 비슷한 연배로 2살 어리다. 그간 연극과 드라마 독립영화 등에서 활동해 왔다.
 
이영애는 심사평에서도 "바다같이 넓고 깊고 푸른 연기를 보여준 그녀에세 희망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며 "이분은 충분히 젊고 새롭고 신선한 배우이자 올해 주목받아 마땅한 찬란한 배우입니다"라고 극찬했다.
 
스스로의 무지를 탓한다는 스타 배우의 평은 수상자인 김금순 배우를 향한 격려이자 최고의 헌사였다.

"저비용 고효율 커뮤니티비프"
 
 남포동 야외무대에서 구혜선, 안서현 배우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커뮤니티비프 조원희 운영위원장

남포동 야외무대에서 구혜선, 안서현 배우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커뮤니티비프 조원희 운영위원장 ⓒ 부산영화제 제공

 
"예산은 8천만 원에 상영작은 160편이었습니다. 웬만한 국내 영화제 상영작 편수와 비슷합니다."
 
결산 기자회견이 끝난 후 커뮤니티비프 조원희 운영위원장이 밝힌 올해 커뮤니티비프 예산 규모다. 부산영화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은 커뮤니티비프가 저예산으로 매우 높은 효율성을 나타낸 것이었다. 커뮤니티비프 예산 규모는 부산을 찾은 국내 영화제 관계자들의 주요 관심사이기도 했다.
 
전주와 부천을 제외한 일반적인 국내 영화제의 상영작이 150편 안팎인 것과 비춰볼 때, 상영 편수만으로 만만치 않은 규모의 영화제가 별도로 열린 셈이다.
 
조원희 운영위원장은 "동네방네비프 등에 부산시 각 구청의 물품 지원이 있었던 덕분이다"라며 "구청 등 지자체가 부담한 비용을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소요된 예산은 대략 5억~7억 원 정도" 될 것으로 추산했다.
 
그렇더라도 비슷한 규모의 영화제들이 최소 20억~30억 정도의 예산이 투입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비용이다. 상대적으로 주민만족도가 높다는 점에서 실무진의 보람만큼이나 커뮤니티비프의 역할과 비중이 점점 커지는 모습이다.
부산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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