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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유통업체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한시도 쉴 새 없이 영업을 해 매출을 높이려 한다. 이로 인한 지역 소상공인들과 재래시장 상인들의 피해를 막고,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에 한 달 이틀의 의무휴업을 지정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 달에 고작 이틀 있는 휴일도 없애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으나, 서비스연맹 등 노동계와 소상공인의 반대로 의무휴업 조항을 당분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는 현재의 의무휴업 규제가 포괄하지 못하는 사업장들이 많다는 점이다. 백화점·아웃렛이라 불리는 복합쇼핑몰이나 OO닷컴 등의 온라인유통업은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고, 이들 중 많은 곳이 365일 연중무휴로 영업하고 있다.

이렇듯 최소한의 규제조차 적용되지 않는 복합쇼핑몰에도 의무휴업제 적용을 포함,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쉴 권리를 보장할 방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패션리폼중앙회 김복철 대표를 지난 9월 13일에 만났다. 한국패션리폼중앙회는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 대규모 점포 등의 사업장에서 수선업을 하는 이들이 모인 단체이다.

복합쇼핑몰 입점 업체의 휴일 없는 노동

김복철 대표는 서울의 한 대형 복합쇼핑몰에서 의류 수선업체를 운영 중이다. 소비자들이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에서 의류를 구매한 후 길이가 맞지 않거나 수선을 원할 때 찾게 되는 곳, 큰 건물의 한 층 구석에 있는 수선업체다.

아웃렛에 입점한 수선업체는 아웃렛이 문을 여는 시간 동안은 영업을 해야 한다. 영업시간 결정권이 복합쇼핑몰에 있기 때문이다. 하루 12시간 가까이 영업하고, 단 하루도 휴일이 없다. 이런 영업 형태는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대표 자신의 일상에 고스란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 복합쇼핑몰에 입점해있는 의류 수선실. 김복철 대표와 직원들의 모습
 서울의 한 대형 복합쇼핑몰에 입점해있는 의류 수선실. 김복철 대표와 직원들의 모습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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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아웃렛에 임대료를 내고 영업을 합니다. 근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평일 저녁 9시까지고요. 금, 토, 일에는 저녁 9시 30분까지 영업해요. 그리고 1년 내내 연중무휴입니다. 직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평일에 돌아가면서 쉬고요.

저는 날마다 나옵니다. 대표니까 날마다 나와야 해요. 저희는 입점해 있는 이 복합쇼핑몰의 영업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면 안 돼요. 이곳의 영업시간 안에 수선실 문을 닫으면 영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 돼 계약 위반이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1년에 단 하루도 영업을 쉴 수 없는 현실은 김복철 대표와 직원들에게 어떻게 문제가 될까? 또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직원들하고 다 같이 한 번에 쉬면 단합대회도 한 번씩 할 수 있고 야외에도 한 번씩 갈 수 있는데, 그런 게 안 되니 아쉽죠. 명절에도 못 쉬어요. 이번 추석에도 저와 저희 직원들 모두 못 쉬었습니다.

조상님들 제사상도 차리지 못하고, 또 그러니까 가족들도 아주 아쉬워합니다. 친지들이나 지인들이 결혼할 때 결혼식장도 못 가고 있는 현실이에요. 보통 결혼식을 주말에 많이 하잖아요. 거기다 1시에서 2시 사이에 예식이 많거든요. 그런데 그때가 업무로 바쁜 시간이다 보니 참여를 못 합니다.

사람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휴일이 필요한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에게도 월 2일의 휴무가 꼭 필요해요. 또 평범한 노동자들은 다들 주말에 쉬고 싶어 하거든요. 그래서 주말 휴무가 없으면 오려고 하질 않습니다. 사람 구하기도 힘들어요."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의 주말 노동은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높이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더욱 훼손한다. 복합쇼핑몰은 소비자가 언제든 쇼핑할 수 있게 한다면서, 입점업체 노동자들의 쉴 권리나 건강권은 내팽개치고 있다.

처음부터 복합쇼핑몰에 휴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복철 대표의 업체가 입점해있는 곳에서도 명절에는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에게 휴식을 보장하는 방향의 영업방식이 아닌, 오직 매출 상승만을 위한 더 치열하고, 더 쉬지 않는 영업방식이 도입되었다.

"예전에 아웃렛이 별로 많지 않을 때는 그래도 명절에는 쉬었어요. 그런데 대형 아웃렛이 많이 생기면서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제가 입점해있는 곳은 1년에 하루도 안 쉬게 된 겁니다."

충분한 휴식 없이 보장되지 않는 건강권

한국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투쟁을 통해 노동 시간을 단축해왔던 역사도 있다. 그런데 유통물류 업계에는 그 역사가 비껴가고 있다. 오히려 휴일 없는 노동이 유지, 확장되고 있다. 그런 업계에서 일하는 대형마트 및 배송 노동자들의 과로 및 건강 침해 문제는 익히 알려져 있다. '소비자를 위한' '빠른 배송'이라는 명목으로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는 노동자들이, 휴일과 새벽에 무리해서 일하고 있다. 유통산업 전체가 이런 과로의 망에 빠져 있다.

수선업체 역시 '소비자가 맘껏 쇼핑해야 한다'는 이유로, 하루 12시간 가까이 일을 하고 휴일에 쉬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휴식 없는 장시간 노동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대형마트에 적용되고 있는 월 이틀 의무 휴업제는 간신히 버티고 있는 방어선과도 같다. 마트를 포함한 유통물류 업계 노동자들은 한 달에 고작 이틀이 아닌, 주말에는 쉴 수 있도록 휴업이 확대돼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유통물류 업계 노동자들이 주말에 쉬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신체 시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잘 쉬어야 피로회복도 되고, 하루이틀을 좀 쉬어야 한 주를 또 지내고 하는데 그런 게 어려운 거죠. 또 대형 쇼핑몰 같은 경우는 이제 골목 상권을 지키는 자영업자들을 위해서라도 좀 쉬어야 해요. 그런데 의류 계통은 주말에 쉬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백화점이나 아웃렛 같은 데는 고객들이 전부 다 주말에 쇼핑을 나오니까요."

모두의 건강을 위한 의무휴업 확대가 필요하다

이마트, 홈플러스 같은 대규모 점포에도 수선업체가 입점해 있는데, 이들에게는 의무휴업이 적용되기 때문에 한 달에 이틀을 쉴 수 있다. 복합쇼핑몰과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김복철 대표는 대형 유통업체 자체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어느 요일이든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온라인 쇼핑을 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일주일, 1년 내내 대형 쇼핑몰에서 쇼핑하진 않았다. 김복철 대표는 건강한 노동과 건강한 삶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대규모 점포에만 적용하는 의무휴업을 모든 유통업체에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패션리폼중앙회 김복철 대표
 한국패션리폼중앙회 김복철 대표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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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만 의무휴업을 시행할 게 아니라 일반 백화점, 아웃렛에 전체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쇼핑몰에 해당하는 몰이라면 전부 확대해 시행해야 합니다. 백화점이나 아웃렛에 입점해있는 수선업체에서도 의무휴업제와 관련한 질문을 많이 올립니다. 단체 대화 메신저를 보면 의무휴업이 언제 되는지 묻는 말들이 많아요. 수선업체 운영자들은 대부분 휴무제를 원하고 있습니다."

복합쇼핑몰 입점 업체도, 수선업체도,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 모두 적정 시간 일을 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한다. 현재 이곳의 노동 시간과 영업 일수를 결정하는 주체가 쇼핑몰이기 때문에, 복합쇼핑몰을 의무휴업제 적용 사업장으로 포함하는 것이 급선무다.

대형마트에서만 아슬아슬하게 적용되는 월 2일 의무휴업제를 없앨 것이 아니라, 다른 유통업체에도 확대해 시행해야 한다. 또한 고작 월 이틀이 아닌 더 많은 날을 휴일로 제공해야 한다. 대형 유통업체의 주장처럼 쇼핑몰이 매일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의무휴업일을 유통업체 전체에 확대하는 것이 모두가 건강하게 일하며 사는 길이다.

"휴일을 정하고 처음에 계도기간을 좀 가지면 점차 소비자들도 익숙해질 거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도 구매할 사람들은 다 살 거라고 봐요. 백화점·아웃렛도 정기 휴무가 한 달에 두 번 있다는 게 인식이 되면 소비자들도 미리 금요일에 와서 다 옷을 준비해 갈 것이고 큰 애로사항은 없을 것 같아요.

처음에 실시할 때가 문제지 그렇게 일요일 휴무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쇼핑은 다른 날 하면 되니, 일요일에 쉬는 거는 처음에만 힘들지 괜찮다고 봅니다. 대형마트 재벌들은 자기들 매출 때문에 의무휴업제 폐지를 주장할 테지만 노동자 휴식 보장 차원에서는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건강을 최우선으로 순위로 둬야 하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청희씨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 '일터' 10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의무_휴업, #쉴_권리, #노동시간, #유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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