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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사춘기와 갱년기'는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얼마 전 2박 3일간 사내 강사 역량 강화 교육을 다녀왔다. 전국 각지에서 근무하는 동료 강사들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회사에는 살짝 눈치가 보였지만 과감하게 부서장 결재를 득했다.

교육 첫날 일정을 마치고 오래간만에 저녁 회식을 하기로 했다. 특별한 성과 보수도 없는데 그저 강의가 좋아서 본인 의지로 사내 강사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끼'가 남달랐다. 시끌벅적 웃음이 끊이지 않던 중 강원도에서 온 B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교육할 때는 있었는데, 이상했다. 평소 술이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그였는데... 무슨 일이 있나 궁금했다. 그래서 같은 방을 쓰는 C에 물어보았다.

"B 어디 갔어요?"
"그 사람 아들에게 갔어요."

"아들이요? 아들이 여기 있어요?"
"기술 배운다고 이 근처에 있는 기술학원에 다닌다네요. 혼자 자취하며 지낸다는데 대단해. 아들 밥 사주고 온다고 했어요."


그 말에 나뿐 아니라 주변 동료도 놀랐다. 1차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얼큰히 마시고 2차로 호프집에 갔다. 그때 불쑥 B가 나타났다. 우리의 온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호기심 가득한 강사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아들에 관한 질문이 쏟아졌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학교를 자퇴한 동료의 아들
▲ 학교를 자퇴했다는 동료의 아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학교를 자퇴한 동료의 아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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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평소에도 공부에 큰 관심이 없던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시점에 학교를 그만두고 기술을 배우겠다고 했단다. 주저없이 그러라고 했더니 본인이 직접 알아보고 경기도 쪽에 있는 기술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고. 그래서 학원 근처에 방을 얻어 주었고, 혼자서 밥도 해 먹으며 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이 더욱 놀라웠다.

"옛날부터 공부에 크게 관심이 없더라고. 무얼 하려나 지켜보았더니 기술을 배운다고 하네요. 일단 가서 부딪쳐 보라고 했어요. 해보다 안 되면 또 다른 길이 보이겠죠. 저는 그냥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멋진 부모와 자녀를 보았나. B는 결혼 전부터 그런 생각을 가졌었고, 아내와도 같은 마음이라 어릴 때부터 공부보다는 아이들 데리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다양한 체험을 하려고 노력했었다. 모두가 공부하는 획일적인 삶을 살 필요 없지 않냐며 되묻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그래도 학교는 마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자퇴를 떠올리면 여전히 부정적 이미지가 떠올랐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자퇴하는 경우는 학교에 부적응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흔치 않은 일이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 주변엔 그런 친구조차 없었다.
 
유튜브에 자퇴 브이로그를 검색하면 동영상이 쏟아진다.
▲ 자퇴 브이로그 유튜브에 자퇴 브이로그를 검색하면 동영상이 쏟아진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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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최근 10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자퇴 브이로그'를 본 적이 있다. 자퇴하는 학생이 올린 영상에는 마지막 날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칠판에 작별 인사를 적고 자리에는 과자, 우유, 초콜릿 등 간식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마지막에는 자퇴원을 제출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자퇴를 당당히 드러내고, 주변 친구들 역시 오히려 응원하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솔직히 영상 속 아이가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도 제도권 안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성가족부가 2021년에 발표한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 밖 청소년 중 29.6%가 '다른 곳에서 원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학교를 관두었다'라고 응답하였고, 2018년 조사 때보다 6.2%P가 상승했다.

10명 중 3명은 원하는 것을 배우고 싶어서 학교를 떠난다는 의미였다. 이쯤 되면 나 역시도 자퇴란 부적응 학생이란 인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 목표를 위한 하나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회사 동료 B의 아들처럼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그 길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아이들도 있으니깐.

만약 우리 아이가 자퇴한다고 선언하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동료 B처럼 쉽게 허락할 수 있을까. 내가 학교 다닐 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아니 오히려 더욱 심한 교육열에 치여 허덕이는 아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선뜻 다른 길을 가려는 모습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없다.

더군다나 그저 학교가 싫다고 떠난다면 더욱 주저할 것 같다. 비록 공교육의 위기라고 하지만 여전히 학교가 가진 의미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관계를 맺고, 규칙 안에서 생활하고, 안정적으로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발판이었다. 물론 지금처럼 학교가 학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그런 의미조차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다른 선택지도 하나 새겨 놓아야겠다. 혹여나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아이에게 확고한 목표가 있다면 조금만 당황하고 그 길을 믿어주기 위해서라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
태그:#입시, #자퇴, #꿈, #목표, #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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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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