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이대호 선수의 은퇴경기에서 롯데 팬들이 응원타올을 들고 응원을 펼치고 있다. 응원타올에는 "영원한 조선의 4번타자", "거인의 자존심" 등의 문구가 담겼다.

8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이대호 선수의 은퇴경기에서 롯데 팬들이 응원타올을 들고 응원을 펼치고 있다. 응원타올에는 "영원한 조선의 4번타자", "거인의 자존심" 등의 문구가 담겼다. ⓒ 박장식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절대로 오지 않았으면 했던 날, 10월 8일이 왔다.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선수의 은퇴식, 그리고 그의 등번호 10번을 롯데 자이언츠의 영구결번으로 남기는 날. 

부산 사직야구장은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쾌청하게 맑았다. 롯데의 포스트시즌 진출은 비록 좌절되었다지만, 2만 2,990개의 티켓은 경기가 시작하기 한참 전 다 팔린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사직야구장 주변에는 혹시나 남은 표가 있을까 서성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불혹이 한참 넘은 나이. 다른 선수들은 그 나이도 전에 에이징 커브로 허덕이는데, 이대호는 마지막 시즌 타이틀 홀더에 도전할 정도로 역대급이었다. 그래서인지 팬들은 더더욱 이대호를 보낼 수 없었다. 한 타석이라도 더 보려고 상대 투수를 응원하는가 하면, 결국 찾아온 은퇴식은 이대호도, 팬도 눈물바다의 장이 되었다.

투수로 나선 이대호, 응원으로 화답한 팬들

이날 은퇴 경기의 슬로건은 < RE:DAEH10 >. 슬로건의 앞글자를 딴 붉은색 응원타올이 좌석마다 마련되었고, 적잖은 팬들 역시 이대호 선수의 은퇴 기념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을 찾았다. 7월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을 시작으로 8개 구장, 9개 구단을 만났던 은퇴 투어의 마지막답게 현장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이대호 선수의 후배들인 수영초 야구부 선수들의 애국가 제창을 시작으로 이대호 선수의 현역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었다. 1회부터 첫 타석에 오른 이대호 선수는 관중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바로 2루타를 때려내며 관중석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경기장은 이대호 선수의 응원가로 가득 찼다.

이대호 선수는 나이를 잊은 듯한 팬 서비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경기 종반 불펜에서 몸을 풀며 기대감을 높이던 이대호는 롯데가 1점 차로 앞서나가던 8회 초 투수로 등판해 사직야구장이 일순간 들썩이게 만들었다. 이대호는 타석에 선 LG의 고우석을 상대로 땅볼을 잡아내며 아웃카운트까지 만들었다.

8회 말, 이대호의 타석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나 했지만 바로 앞 타순에서 야속한 아웃카운트가 하나 더 차고 말았다. 9회 말 이대호 선수의 타석을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서였을까, 현장의 팬들 중 몇몇은 9회 초 LG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동점을 내심 바라는 눈치를 보이기도 했다.

경기 결과는 롯데의 승리. 롯데의 마무리 투수 김원중이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따내며 3-2로 승리했다. 비록 팀이 그토록 원했던 가을야구에 가지는 못했지만 팀의 레전드가 치르는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만들었기에 사직야구장의 관중들은 환호하며 승리를 축하했다.

이대호는 눈물 참고, 팬들은 대성통곡하고
 
 8일 열린 이대호 선수의 은퇴식 및 영구결번식에서 야구 팬들이 핸드폰 플래시로 이대호 선수를 응원하고 있다.

8일 열린 이대호 선수의 은퇴식 및 영구결번식에서 야구 팬들이 핸드폰 플래시로 이대호 선수를 응원하고 있다. ⓒ 박장식

 
이어진 은퇴식 및 영구결번 행사는 눈물바다라는 말이 어울렸다. 경기장이 암전되고 이대호 선수가 단상 위에 오르자 이대호 선수의 은퇴를 축하하는 동료, 선후배 선수들의 영상 메세지가 흘러나왔다.

정훈, 한동희 등 현역 선수들을 비롯해 '추억의 얼굴'이 된 강민호(삼성), 손아섭(NC)의 메세지가 흘러나온 데 이어, 카림 가르시아, 조성환, 제리 로이스터 감독 등 롯데의 전성기를 함께한 선수들의 영상이 나올 때에는 사직야구장이 떠나갈 듯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특히 롯데 팬으로 유명한 배우 조진웅 씨는 영상메세지 말미에 이대호 유니폼을 입고 뒤돌아 우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공감어린 눈빛을 샀다. 그리고 이어진 '깜짝 메시지'는 가족들의 메시지. 이대호 선수의 아내 서혜정 씨와 이예서 양, 이예승 군의 진심어린 메시지가 나오자 이대호 선수는 눈물을 꾹 참는 듯 했다.

결국 이대호 선수는 고별사에서 꾹 참아왔던 눈물을 흘렸다. 이대호는 "사실 오늘이 세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이라며, "그 날에 은퇴식을 한다는 것이 감회가 느껴지기도 하고 많이 슬프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며 이대호는 "덕아웃에서 보는 사직야구장 관중석만큼, 또 사직야구장 타석에서 들리는 부산 팬 여러분의 함성만큼 멋진 풍경과 힘나는 소리는 없을 것"이라며 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역시 이대호만큼이나 눈물을 참아왔던 팬들의 눈물샘도 터졌다. 야구장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대성통곡을 하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이대호라는 세 글자가 부산 야구 팬들에게는 얼마나 깊은 존재인지 알 수 있었던 눈물이었다.

이대호 선수는 고교 시절 별세한 할머니 오분이 여사를 그리며 "늘 걱정하셨던 손자 대호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받고 박수를 받으면서 떠나는 선수가 됐다."며 "가장 보고 싶고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어 "배트와 글러브 대신 맥주와 치킨을 들고, 아들딸을 데리고 야구장으로 오겠다."며 약속하며 고별사를 마쳤다.

팬들과 함께했기에 더욱 의미 깊었던 그의 은퇴식

이날 이대호 선수는 많은 선물을 품에 안았다. 신동빈 구단주가 마련한 은퇴 반지와 팬던트는 물론, 팬들이 전달한 케이크와 모자이크 액자, 선수들의 메세지북까지 선물들도 다양했다. 하지만 가장 뜻밖의 선물은 그의 등장곡 <오리 날다>를 부르기 위해 등장한 밴드 체리필터였다.

고별사를 마친 후 은퇴식의 다음 순서로 넘어가나 싶더니 잠시 암전된 경기장. 팬들이 술렁이는 사이 갑작스럽게 퍼레이드 카가 들어왔고, 그 차에는 체리필터 멤버들이 올라탄 채였다. 보컬 조유진 씨가 차에서 내려 "이대호 선수께 무대를 헌정해드릴 수 있게 되어 너무 영광스럽다"며 그의 등장곡 <오리 날다>를 열창했다.

관중석의 술렁임은 환호로 바뀌었고, 조유진 씨가 가사 중 '날아 올라'를 열창하자 팬들 역시 이대호 등장 때의 추임새를 넣는 등 팬들과 체리필터 멤버들이 합작해 이대호 선수에게 어느 때보다도 큰 헌정 무대를 선물했다.

그렇게 헌정 무대와 헹가래를 마친 뒤 카퍼레이드로 그의 은퇴식과 영구결번식이 마무리되었다.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도는 카퍼레이드가 진행되는 와중에는 이대호 선수의 응원가 원곡인 < A Lover's Concerto >가 피아노 선율로 깔리며 팬들이 그의 응원가를 열창할 수 있게끔 도왔다.

공식적인 은퇴 행사가 끝난 뒤에도 팬들의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야구장 안에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추어 응원가를 흥얼거리는 이들도 적잖았고, 아예 사직야구장 앞에는 많은 팬들이 모여 그의 응원가를 열창하기도 했다. 한 지역, 그리고 야구라는 종목을 상징하는 선수의 이별은 이렇게도 쉽지 않았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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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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