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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첫날이었던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잠원IC 부근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의 모습.
 추석 연휴 첫날이었던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잠원IC 부근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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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또는 아버지 세대만 해도 '고향'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서울이나 인천에 사는 사람 중의 절대다수는 서울 이외의 지역이 고향이었다. 경상도에서 온 사람, 전라도에서 온 사람, 충청도에서 온 사람... 저마다 고향이 있어 명절 때면 고향 가는 인파들로 도로 곳곳이 마비됐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내가 어릴 적만 해도 '고향'을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이 제법 많았다.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와 같이 농촌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우리 어머니·아버지 세대에게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시골 어르신들을 찾아가 퀴즈를 풀거나, 자식들에게 영상 메시지를 보내는 예능도 큰 인기를 끌었다.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이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TV 프로그램에 울고 웃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마음이 사회 전반에 대중적으로 공유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생들이 부모가 되면서 고향이라는 개념이 무너져가고 있다. 아버지·어머니의 고향은 존재하지만 '나'의 고향은 서울이나 인천 등 대도시가 대부분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온 세대에게 시골에 대한 정서적 공감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대중매체에서도 과거에는 흔히 볼 수 있었던 '고향 프로그램'은 자취를 감췄다. TV 프로그램에서 시골을 배경으로 방송하는 것은 여행이나 맛 기행 정도가 대부분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10여 년 전부터 정년퇴직을 마친 노년들이 고향에 내려와 사는 귀촌이 늘고 있고,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소도시에서는 인구 정책의 일환으로 귀농·귀촌인에 대해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이마저도 지역의 인구를 늘게 하는 지속 가능한 정책이 되지 못할 것이다. 불과 10~20년만 지나도 '고향'을 그리워하며 지역을 찾을 사람이 없을 테니 말이다.

대도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지방소멸이 대수냐고 물을 수 있다. 우리나라 전체적인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력이 없는 지역은 통폐합해 행정을 운영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인 한 명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처럼 지역 하나가 사라지는 것은 하나의 문명이 사라지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오랜 세월 동안 고유의 문화를 축적하며 지역마다 서로 다른 특성을 형성해왔기 때문에 지역의 소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이 사라지는 일이기 때문이다(대표적인 예가 사투리다).

인류 문명이 생물의 다양성에 달려 있듯, 사회적·문화적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 또한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돼왔다. 여러 가치가 공존하고 다양성을 존중받는 사회가 그렇지 못한 획일화된 사회보다 유연한 사고와 건강한 토론이 가능하고, 폭넓은 논의를 통해 사회의 발전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지방소멸이라는 지역의 위기를 막는 것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것만큼이나 시급한 문제로 다가왔다. 불과 한 세대를 지나면서 '고향'을 잃었듯, 머지않아 우리는 '지역'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지구종말시계가 인류멸망 100초 전을 가리키고 있다고 하는데, 지방소멸시계는 1분도 채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임아연님은 인권연대 회원이십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태그:#지방소멸, #고향, #추억, #지방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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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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