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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은 오래 전부터 악명이 높았다. 올해 1월 설 명절 기간에도 2명의 집배노동자가 과로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으며 매년 20명에 가까운 집배노동자가 장시간노동으로 인해 사망한 바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집배 인력을 확충했다고 하나, 현장에서는 변화를 체감하지 못 한다는 반응이다.

올해도 집배원 인력기준을 법제화해 과로를 방지해야 한다는 투쟁을 하고 있는 전국민주우체국본부 고광완 사무처장을 8월 25일 만났다. 고광완님은 현장에서 집배원으로 오래 일하다가 1년 반 전부터 노동조합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 집배노동자의 업무 일과는 어떻게 됩니까?

"우편물은 우편함에서 넣는 통상우편물과 직접 만나 전달해야 하는 등기우편, 그리고 소포(소포장)가 있습니다. 집배원의 주 업무는 이 우편물에 대한 수집(분류)과 배송입니다.

업무시간은 공식적으로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인데, 통상 1시간 일찍, 일이 많으면 그보다 더 이르게 출근합니다. 출근해서 우편, 등기, 소포 등 그날 배달할 물량을 분류작업 합니다. 아침에 먼저 배달해야 하는 우편물(빠른등기)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이후 우편물을 가지고 나가서 담당구역에서 오토바이 타고 배송합니다. 점심은 배송 중 알아서 먹는데 일이 많을 경우 못 먹기도 합니다. 배달을 마치고 우체국에 들어와서 내일 배송할 일반통상우편물을 구분하는 작업을 합니다. 배송을 마친 뒤에 다음날 배달할 편지를 구분하는 작업을 한다는 점이 택배 업무와 다르지요."
 
분류작업을 하는 집배 노동자. 전국민주우체국본부는 집배원 인력기준을 법제화해 과로를 방지해야 한다는 요구를 내걸고 투쟁 중이다.
 분류작업을 하는 집배 노동자. 전국민주우체국본부는 집배원 인력기준을 법제화해 과로를 방지해야 한다는 요구를 내걸고 투쟁 중이다.
ⓒ 고광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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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운 여름에 우편물 배달하느라 힘들겠습니다. 일하다 보면 어떤 점이 힘든가요?

"한여름 도심지 아스팔트 열기 속에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 더위로 어지럽기도 합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계단 오르내리는 것도 힘든데다 오토바이 주행 중에는 1kg 넘는 무거운 헬멧을 써야 합니다. 가벼운 헬멧은 안전문제 때문에 안 된다고 하네요. 헬멧을 썼다 벗었다를 하루에 수 백회 반복하기는 번거롭고, 그냥 쓰고 다니면 땀이 쏟아지지요.

우리 노동조합에서 봄에 전국 우체국 돌아다니면서 관리자들에게 폭염 대책을 잘 마련하라고 요구했어요. 사망 사고가 나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적용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제빙기도 구비하고, 아이스크림, 시원한 물도 주고, 옷도 와이셔츠 대신 땀 배출이 잘 되는 재질로 바꾸는 등 우체국에서 나름 대비를 했어요.

그 외에도 힘든 건 많지요. 하루 종일 걷고 오토바이 타고 다니니 신발 바닥이 닳아 구멍이 났어요. 그것도 모르고 물웅덩이를 지나다 물이 들어와 구멍이 난 걸 안 적도 있고요. 하루에 수 천통씩 분류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엄지손가락 지문이 닳아버리기도 합니다.

편지, 고지서 등의 통상우편은 우편함에 그냥 배송하면 되는데 내용증명 등 법적 서류를 보내거나 각종 중요 우편물을 배달하는 등기배달이 신경 쓰입니다. 수취인을 직접 만나지 못하면 다시 방문해야 되니 일을 여러 번 하기도 하고, 택배는 배달이 잘못되면 돈으로 배상이 되겠지만 등기는 배송 문제가 생겼을 경우 그 피해가 가늠할 수 없이 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집배원들한테는 등기배송이 스트레스입니다."

- 집배노동자 장시간 노동 문제가 제기된 지도 오래 되었는데, 현장의 변화가 있습니까?

"집배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가 사회적 이슈가 되어 우정사업본부가 노동조합, 전문가들과 함께 2017년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라는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1년의 논의를 거쳐 권고안이 만들어졌는데 장시간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소 2000명 이상 정규직으로 추가 고용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우체국 택배를 전담하는 노동자만 증원하였습니다. 우체국 택배 업무는 위탁으로 계약을 맺고 건당 배송비를 받는 특수고용노동자입니다. 작은 포장(소포)은 우리 집배원이 배달하고 큰 물품은 위탁으로 배달하는 겁니다. 우정사업은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니 흑자를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택배가 수익이 난다고 생각하고 택배를 확대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위탁 택배 인원 증원은 늘어난 택배 업무를 감당하는 정도로, 현장에서 인력 증원에 따른 노동시간 감소 효과는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대신 이메일이 편지를 대체하고 고지서도 온라인으로 받는 추세라 통상우편물량은 감소하고 있습니다. 우편물 구분 작업을 도와주는 기계가 도입되기도 했고요. 코로나의 영향도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반통상우편을 제외한 등기우편물, 소포는 대인배달이 원칙으로 서명도 받았습니다. 등기우편은 여전히 대면배달이 원칙인데 소포는 비대면 배달이 한시적으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취인 만나서 서명 받는 시간이 없어져 업무량이 다소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가 끝나도 비대면 배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우정사업본부에서 이에 대한 확답을 주진 않고 있습니다."
 
전국민주우체국본부 고광완 사무처장. 집배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방지를 위해 투쟁 중이다.
 전국민주우체국본부 고광완 사무처장. 집배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방지를 위해 투쟁 중이다.
ⓒ 고광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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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로로 인한 사망사고는 줄었다고 보십니까?

"전국적인 사망 건을 확인 중인데 크게 줄진 않은 것 같습니다. 뇌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많은데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산재승인이 된 건만 통계를 냅니다. 올해 1월 명절을 앞두고 서인천, 대구에서 두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두 분 다 전날까지 큰 문제없이 지내다가 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저희는 명절을 앞두고 늘어난 업무량에 과로로 돌아가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산재승인 받기는 어려웠습니다.

최근 4월에도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코로나 감염으로 인력이 줄자 겸배 업무로 동료의 일까지 도맡아 했습니다. 늘어난 업무로 힘들다고 호소했다고 합니다. 사망 당일도 힘들어 하여 조퇴하고 집에서 누워 있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저희는 과로사로 확신하고 있습니다만 투쟁으로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노동조합에서 '겸배 관행 철폐'를 주요 과제로 내걸었습니다. 겸배는 우리 업계의 오래된 관행입니다. 겸배는 질병이나 사고, 휴가로 인원이 빌 경우 동료가 그 업무를 대신하는 걸 말합니다. 한 팀이 10명인데 한 사람이 일하다가 다쳐 출근을 못 한다면, 나머지 9명이 다친 사람의 업무를 나누어 하는 거지요. 우편물은 정해진 기간에 배송이 되어야 하니 담당자가 출근하지 않았다고 일을 내일로 미룰 수 없습니다.

9명이 한 사람 일을 나누었으니 10% 정도 업무가 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평소에 내가 배달하던 구역이 아닌 다른 구역을 배달하게 되니 익숙지 않아 시간도 더 걸리고 안전사고도 발생할 수 있어요. 겸배 때문에 휴가도 눈치가 보여 잘 못 가고 여름휴가를 가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합니다. 예비인력이 필요하다고 저희는 주장하지만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지금의 인력이 충분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거지요. 겸배는 장시간 노동하게 만들고 안전과 건강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입니다."

- 어떻게 노동조합을 하게 되었습니까?

"우체국에서 10년쯤 일했을 때였어요. 그때는 일이 많아서 배달을 10시에 나가서 밥도 못 먹고 저녁 8시에 들어와 분류작업 하고 밤 10시 이후에 퇴근했습니다. 잘 아는 동생 하나가 배달 나가다가 버스에 치여서 사망했습니다. 여유가 있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사고였다고 봅니다. 올해로 10년 되었네요. 이후 장시간 노동을 철폐를 위한 팀을 만들었습니다. 집회도 하고요.

기존 노동조합 안에서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를 해결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복수노조가 허용된 후 2016년 100명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20배 이상 조합원이 늘었습니다. 초기에 현장에서 일하면서 노동조합 업무를 병행할 때는 힘들긴 했지만 현장에서 조금씩 변화가 보이니까 보람 있고 즐거웠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을 남겨 주세요.

"우체국 내에는 별정우체국(별정직)집배원, 농어촌택배배달원, 아파트전담집배원 등 여러 직종이 있습니다. 우정본부가 비용을 줄이려고 공무원 신분인 집배원 대신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겁니다. 같이 일하는 직장인데 비정규직이라는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평등한 일터에서 과로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장영우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9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집배인력기준법제화, #집배과로사방지, #전국민주우체국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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