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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가을에 접어들었다. 공기냄새가 달라졌다. 낙엽 냄새가 섞인 시원한 향기가 났다. 구름은 높고 하늘은 더 높다. 에어컨은 이제 커버를 씌우고 리모컨도 잘 치워두었다. 가을을 알리는 무당거미와 버섯을 여기저기에서 자주 본다.

벌초하러 다녀온 시골 화단엔 맨드라미가 한창이다. 하지만 그 옆 텃밭에 고추 일부는 탄저병에 걸려서 시들해 고춧대만 남아 있었다. 8월 비가 자주 내린 것이 원인이었다.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고추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고추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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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다녀오니 필자의 어릴 때가 생각난다. 유아기 때 찍은 어느 사진에선 마당에 멍석을 깔아 빨간 고추를 말리고, 화단에는 맨드라미와 채송화가 피어있었다. 아직 반팔을 입고 있는 것으로 봐서 추석이 되지 않은 초가을인 것 같다. 건넛방에 불을 지펴 고추를 말리기도 했다.

그 방에 들어가면 고추의 매운 냄새가 진하게 베어 고추를 말리지 않을 때에도 고추냄새가 났다. 그 시절에는 고추, 마늘, 배추 등 모든 김장재료를 집집마다 농사로 마련했다. 그것이 일반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마늘도 머리를 땋듯 잘 엮어서 마늘 올리는 처마 밑에 수십 접을 말렸다. 아직도 마늘을 엮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난다.

옛날 집은 그 자체가 음식 창고였다. 뒷마당엔 큰 장독대에 종류별로 장이 들어있었고, 장독대 근처에선 철마다 생선을 말렸다. 앞마당엔 넓은 텃밭이 있어서 상추와 호박, 부추, 고추가 언제나 풍성했다.

매운 고추를 먹지 못하던 어린 필자에게 할머니는 풋내나는 작은 고추를 한주먹 따다가 주시곤 했다. 작은 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으며 점점 매운맛을 배웠다. 집을 둘러 서 있던 감나무에는 가을이면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건강한 먹거리를 바로 구해서 먹을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농사를 짓지 않으시면서 필자 집에선 더 이상 고추를 말리지 않았다. 직접 지은 고추로 고춧가루를 빻는 일도 없었다. 마늘도 엮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3대 독자인 아버지에게 농사를 시키지 않으셨다. 요즘은 고향에 가면 필자 어머니가 집과 좀 떨어진 텃밭에서 먹을 만큼의 농사를 지으신다.

예전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은 밭이지만, 밭이 있으니 거의 사계절 먹을 것이 생긴다. 냉이나 달래, 민들레는 심은 것도 아닌데 선물처럼 자라주니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간식거리로 산딸기와 호두도 심고, 제사상에 올릴 고사리도 심었다. 매년 봄, 밭을 갈아엎는 작업과 비닐 씌우기, 감자 캐기, 배추 나르기 등의 큰 일은 가족 중 남자들의 몫이다. 그 외의 일들은 어머니의 부지런한 발걸음으로 채우신다.
 
필자 어머니 밭에서 갓 수확한 옥수수 뒤로 함께 뛰놀며 웃고 있는 필자의 두 자녀가 눈길에 들어온다.
 필자 어머니 밭에서 갓 수확한 옥수수 뒤로 함께 뛰놀며 웃고 있는 필자의 두 자녀가 눈길에 들어온다.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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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때가 되면 감자나 옥수수를 보내주시고, 갈 때마다 밭에서 난 먹거리를 챙겨주신다. 어머니가 챙겨주는 음식에는 어릴 적 먹던 그 맛이 그대로다. 세포들은 주기적으로 죽고 다시 만들어진다는데, 어떻게 그 맛을 기억하는 걸까?

지금도 시골에서 가져온 고추를 먹으면서 생각한다. 우리나라 고추 자급률은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거의 중국산을 수입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김치와 고추장의 고춧가루 대부분이 수입한 것이다. 음식에 고춧가루를 많이 사용하는 우리나라에서 고춧가루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는 것은 문제이다.

병충해에 약한 고추농사는 그 성패가 매년 크게 바뀔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계속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겠지만,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도 좋은 고추, 고유의 매운맛과 단맛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고추, 많은 사람이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고추가 더 많이 생겨서 K-푸드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더 높아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활동가입니다.


태그:#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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