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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일주일 앞둔 지난 3일, 인천 서구 마전동 야산에 자리잡은 미수복지구 경기도 개풍군 중면민회 애향동산(묘지공원)에서 면민회 청장년회원들은 동산에 잠든 부모님께 정성스레 차례를 드렸다. 이들은 성묘에 앞서 지난 8월 이곳을 찾아 벌초와 청소 등 추석맞이 준비를 마쳤다. 중면 실향민 후세들인 회원들은 부모님 대부분이 이곳에 묻힌 것을 계기로 명절과 기제가 있을 때마다 성묘하고 부모님의 은덕을 기리고 있다.

후손들은 아버지대의 친목을 이어가며 부모님 고향 중면의 가례와 전통을 계승하는 등 애향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아직도 생존한 1세대 피난세대를 포함해 중면민들은 이곳에서 매년 면민회 총회 겸 애향제를 지내고 있다. 벌써 이곳에 묘지가 조성된 지 60년 세월을 넘기며 후손범위는 3~4세대까지 늘어났다.
 
중면민회 청장년회원들이 지난달 애향동산에서 추석맞이 벌초작업을 벌이고 있다.
 중면민회 청장년회원들이 지난달 애향동산에서 추석맞이 벌초작업을 벌이고 있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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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조성된 실향민 집단묘지  

6.25전쟁통에 고향을 떠난 이북 실향민들은 이남에서 자신의 고향 등 정체성을 드러내놓고 살 수 없었다. 이남 타향에서 적응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어딜 가나 이북사람이라는 '딱지'로 차별과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타향살이'와 '나그네설움'은 바로 피난 실향민 신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런 처지는 휴전선 경계에 살다 강화·파주·서울로 이주해 피난살이를 시작한 20대·30대 중면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이북실향민이라는 신분을 떼고 서로 안부를 묻고 고향을 그리는 애향모임을 시작한 것은 정전 후 10년이 지난 60년대 초반이었다. 재회한 중면인들은 제일먼저 자신들과 가족들이 묻힐 묘지부터 마련했다. 묘지동산 조성비는 이남에서 갖은 고생에 굶어가며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이었다. 이때까지도 자식들에게 자신의 고향과 가족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채 이승을 접고 구천을 떠도는 실향민들이 많았다.

지금 중면민회 애향동산에는 200여 중면 출신들이 고히 잠들어 있다. 이점에서 명절 때 성묘할 수 있는 집단묘지가 있는 중면민회는 다른 실향민들에 비해 축복받은 편에 속한다. 후손들이 동산을 찾아 가족모임과 온전한 제사를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버지 피난 세대의 깊은 애향심과 면민회원들간 일체감 덕분이다.

개풍군 중면 애향동산은 통일을 기원하는 망향제단
 
2019년 면민회 총회 때 개풍군 중면민회원들이 애향동산에서 차례를 올리고 있다.
 2019년 면민회 총회 때 개풍군 중면민회원들이 애향동산에서 차례를 올리고 있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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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면민회 회원과 가족들이 김포 애향동산에서 추석성묘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면민회 회원과 가족들이 김포 애향동산에서 추석성묘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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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일(81) 중면민회장은 "전쟁을 피해 월남한 세대들이 어렵게 묘지공원을 조성하고 통일 될 때까지 이곳에서 묻히길 소망하면서 자연적으로 후손들도 친목과 애향활동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면서 애향동산 묘지를 소개했다. 중면 애향동산은 통일을 염원하는 망향제단이라는 것이다. 2세로서 묘지공원을 직접 관리하고 있는 중면 대룡리 김문환(70) 명예리장은 "후손들은 희망하면 누구든 이곳에 묻힐 수 있으며, 선조님들의 고향과 가족사랑에 늘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면민회와 비슷하게 묘지공원을 갖춘 곳은 개풍군 14개 면중에서 흥교면, 임한면 등 세 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타 면민회원들은 설과 추석 등 명절을 맞아 차례를 지낼 마땅한 곳이 없어 쓸쓸한 명절을 맞아야 했다. 혈혈단신으로 대부분 월남한 실향민들에게 명절은 이남사람과 달리 실향의 아픔을 반추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다. 때문에 이들은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임진각을 찾아 실향의 설움을 달래고 있다. 이곳에서는 잠시나마 고향땅 이북을 조망할 수 있으며 명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다양한 망향제단에서 매년 실향민 위로 행사 
 
실향민들은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지척의 이북고향땅을 직접 조망할 수 있다.
 실향민들은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지척의 이북고향땅을 직접 조망할 수 있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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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 '임진각 망배단'에서는 통일경모회가 해마다 명절을 맞아 이산가족을 위한 합동경모대회를 주관하고 있다. 실향민과 탈북민을 위한 명절 차례상을 마련하고 있다. 별도 차례음식을 준비해오는 실향민들도 많다. 명절 때마다 이곳을 참배하는 한기달(90) 개풍군 명예군수는 이북 고향에 잠드셨을 부모님과 형제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고 있다. 한 군수는 임진각을 방문할 때는 언제나 자녀들과 함께 오는 데 자신의 고향을 후손들에게 직접 알리기 위한 것이라 말했다.

개성 출신의 박광현(88) 개성시민회 명예회장도 가족을 대동하고 한해도 거르지 않고 명절때마다 '오두산통일전망대'를 찾아 개성시를 바라보며 생전의 부모님과 고향의 추억을 회고한다. 박 회장은 전망대 인근에 조성된 '동화경모공원'도 들러 함께 월남한 고향사람들과의 애향활동을 떠올리며 참배하고 있다.

동화경모공원은 이북실향민과 이산가족들이 잠든 실향민 성지다. 지난해 타계한 '노태우 전 대통령'도 이곳에 안장돼 주목받은 곳이다. 이북도민사회가 운영하는 동화경모공원에는 실향민 2세 등 후손들이 명절마다 공원을 찾아 성묘하는 동시에 이곳을 참배하는 실향민들에게 안내와 서비스를 도맡고 있다. 해마다 추석성묘 자원봉사를 하는 임장원(54) 개풍군 청년회장은 "이곳에 영면하고 계신 고향 어르신들이 대부분 통일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지만 후손들이 통일 될 때까지 보살펴 드리는 것이 도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사)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는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이북5도청에서 재북고향선조님을 위한 망향제를 열고 있다. 행사는 '이산가족의 날'인 '추석전전날'에 진행한다.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는 올해 추석망향제를 8일 오전 이북5도청에서 성대히 개최한다. 행사에는 이북5도민 연합회원, 이북5도 지사, 일천만이산가족회원들이 참석할 계획이다.

추석, 이산가족 재회와 남북통일 소망하는 날
 
강화평화전망대 망배단에 마련된 개풍군 광덕면민회 추석 차레상(2020년)
 강화평화전망대 망배단에 마련된 개풍군 광덕면민회 추석 차레상(2020년)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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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실향민들에게 추석명절은 어떤 의미일까. 실향민들은 이남사람과는 달리 진지한 명절 분위기와 풍경을 연출한다. 실향민들은 추석 본연의 의미대로 자신들이 타향에서 대를 이어 지금껏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조상들의 은덕이라는 믿음이 확고하다. 실향민 스스로 망향제를 올리거나 국가가 실향민 집단묘역에서 명절행사를 위로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또한 실향민들은 명절을 맞아 모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재차 되새겨보는 시간을 갖는다. 해외로 입양간 아이가 성인이 돼 자신을 나아준 부모와 고국을 찾는 모습과 유사하다. 이산가족의 재회와 남북통일에 대한 실향민들의 간절한 소망은 명절 때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정전 후 70년 세월이 흘렀지만 대를 이어도 잊을 수 없는 것은 헤어진 가족과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비록 고향을 찾아 갈 수 없지만 추석명절은 실향민들에게 절절한 날이다. 끝으로 다가오는 추석, 이북실향민들에게 가슴 따듯한 명절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가 이북5도청에서 추석맞이 이산가족의 날에 올리는 합동망향제(2018년)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가 이북5도청에서 추석맞이 이산가족의 날에 올리는 합동망향제(2018년)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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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개풍군중면애향동산, #오두산통일전망대, #강화평화전망대,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이산가족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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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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