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제생태발자국네트워크(Global Footprint Network)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이 유엔무역개발회의에 가입한 1964년 한국의 탄소발자국은 지구가 0.29개 필요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7년엔 지구가 3.86개 필요한 수준으로 53년간 13.3배 증가했다. - <기후미식> 47p
 
한 마디로 말해서 지금 한국인처럼 살면 3.86개의 지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구가 갑자기 4개로 늘어날 일은 없을 테니, 한국인은 지속이 불가능한 삶을 사는 셈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이 땅에서 벌이고 있기에 이런 데이터가 나왔을까? 앞으로 어떡해야 하는 건가?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이의철 교수의 책 <기후미식>에 원인과 대안이 나와 있다. '기후미식'이란 기후위기 시대를 사는 인류가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면서 즐길 수 있는, 그러니까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염두에 둔 음식을 준비하고 접대하는 행동을 말한다.

4부로 구성된 책은 1부에서 기후위기에 처한 지구의 현재를 보여주고, 2부에서 어떻게 식단의 변화가 지구를 구하는지 보여준다. 3부에서 인류와 지구에 재앙을 부르는 단백질 집착을 고발하고, 4부에서는 책의 핵심인 모두를 위한 기후미식의 개념과 실천 방법을 선보인다.
  
기후미식 표지
▲ 기후미식 기후미식 표지
ⓒ 위즈덤하우스

관련사진보기


1부에 나오는 지구 온난화, 폭우와 홍수, 해수면 상승, 반복되는 대형 산불, 식량위기 등의 재앙은 너무 중요하고 치명적인 문제이지만 이미 많은 매체에서 다뤄지는 문제라 이 글에선 생략하려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 이의철 교수는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선 당장 식단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의 식단과 기후위기가 무슨 상관인지 의문스럽고, 그것보다는 탄소배출을 근본적으로 억제하는 에너지 전환이 더 중요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법이 아닌 '흡수를 증가하는 방법'이 좀 더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효과가 있기에 결과적으로 '기후미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전 세계 모든 인류가 고기, 생선, 달걀, 우유 등 동물성 식품을 전혀 섭취하지 않고 식단을 순 식물성으로 바꾸면, 즉 완전 채식인 비건 식단으로 바꾸면, 2050년까지 매년 약 80억 톤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2018년 배출한 전체 온실가스양이 459억 톤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온실가스의 17.4퍼센트가 동물성 식품 섭취를 위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도로, 비행, 선박, 철도 등 모든 운송수단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전체의 16.2퍼센트 수준인 것을 생각하면,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려는 노력 그 이상으로 식단을 순 식물성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기후미식> 58p
 
우리가 지금껏 최선이라 배워온 탄소배출 감소 활동은 그 효과를 체감하기까지 60~70년이 걸리는 반면, 탄소 흡수 활동은 그 효과를 직접으로 느낄 수 있다. 다행스러운 건 실행 방법이 매우 간단하다. 우리의 식단을 최대한 식물성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앞서 전체 온실가스의 17.4퍼센트가 동물성 식품 섭취를 위해 발생한다고 했다. 고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 숲이 파괴되고, 연쇄적으로 가축들의 분뇨와 화학비료, 농약, 항생제에 의해 땅과 강, 바다가 오염되고, 대기 중 온실가스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다.

육류의 수요 증가는 식용유 수요 증가와 함께 오는데(식용 기름을 짜고 난 부산물이 가축 사료로 쓰이기 때문) 이를 위해 개발도상국은 숲을 없애고 농장을 만든다. 아마존 밀림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의 열대우림이 2002년부터 2019년 사이에 3분의 2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지금 당장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음식으로 지구를 구하지만
음식은 내 몸도 구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사람들에게 지구를 살리기 위해 기후미식을 하라고 권하면 딴청을 부릴 것이다. 무슨 지구 걱정까지... 천만다행인 건 기후미식이 지구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내 몸을 위한 가장 완벽한 선택이라는 사실이다.

현직 의사인 저자는 지금 인류를 위협하는 비만, 당뇨, 고혈압, 심혈관질환, 암, 치매, 알레르기 질환 등의 거의 모든 문제가 현대인의 과도한 단백질 섭취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언한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 아주 다른 식량 정책을 선택한 덴마크와 독일이 살아있는 역사적 증거다.

당시 "고기만이 고기를 만든다"는 선입관이 팽배한 독일은 매일 최소 118그램을 섭취해야 한다는 고기 중심 정책을 펼쳤고(현재 70킬로그램의 성인 권장량은 56그램), 덴마크는 반대로 단백질을 적게 먹을수록 건강상태가 개선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젖소를 제외한 돼지와 소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가축의 사료로 사용될 보리와 곡식을 사람이 먹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엄청난 양의 고기 생산이 필요했던 독일은 밀, 호밀, 감자 등 주요 작물의 생산량이 뚝뚝 떨어졌고 1918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민간인 40~70만 명이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했다. 반면에 덴마크는 1917년부터 1918년까지 식량위기 상황임에도 사망률이 이전 17년간 평균보다 34%나 감소했고, 당뇨병은 아예 사라졌다. 역사적 사례뿐 아니라 과학적 연구결과도 넘쳐난다.
 
2020년 발표된 가장 최근 연구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지역에 거주하는 당뇨병이 없는 45세 이상 성인 6,822명을 1993년부터 2014년까지 22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다. 일명 '로테르담 연구(Rotterdam Study)'로 불리는 이 연구에서 탄수화물을 적게 먹고, 단백질을 많이 먹을수록 인슐린 저항성과 당뇨병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것이 확인됐다. - <기후미식> 113p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위 실험에서 얘기하는 단백질이란 동물성 단백질을 말한다. 동물성 단백질을 먹을 때만 당뇨병이 증가하고, 식물성 단백질은 관련이 없다고 한다. 특히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먹을수록 심혈관질환으로 말미암은 사망이 증가했다.

준비된 기후미식 국가, 대한민국

<기후미식>은 여러모로 한국인이 싫어할 만한 책이다. 우리는 '먹방(Mukbang)'이란 걸 본격적으로 시작한 나라인 데다가, 무엇을 해도 1등을 놓치지 않는 국민성답게 세계에서 소와 돼지 사육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고, OECD 국가 중 질소와 인을 토양에 가장 많이 투입하는 나라다.

손님이 오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 후하게 대접하는 게 인지상정이라 믿는 나라에서 과연 이 책이 말하는 <기후미식>이 받아들여질까 싶다. 오죽했으면 저자는 우리나라를 '기후악당'이라고 표현했을까. 하지만 우리에겐 아주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
 
한국의 전통 식문화는 동물성 식품과 식용유, 설탕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서양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유제품을 사용하는 전통도 없었다. (중략)한국은 유제품을 허용하는 서구사회보다 훨씬 더 기후 친화적인 기후미식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밥, 순 식물성 김치, 나물, 쌈, 각종 순 식물성 찌개와 국 등은 훌륭한 기후미식 자원이다. -<기후미식> 203p
 
이미 전통 한식에 푹 빠진 서양인들의 찬탄에 가까운 평가가 온라인에 즐비하다. 준비는 되어 있는 셈이다. 어쩌면 우리야말로 '기후미식'에 최적화된 민족일지도 모르겠다. 이왕이면 배달의 민족 말고 기후미식의 민족으로 불리는 그날을 꿈꿔 본다.

기후미식 - 우리가 먹는 것이 지구의 미래다

이의철 (지은이), 위즈덤하우스(2022)


태그:#이의철, #기후미식, #환경, #비건, #식물성단백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구름과 책 그리고 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직장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