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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부산)강서노인종합복지관에서 펴낸 강서그림책 '예쁜 할매할배 이야기'에 실린 총 네 편의 이야기 중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출판 등록 되지 않은 비매품으로 소량 발간된 책자입니다. 저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20년 넘게 일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치매에 들더라도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고 다함께 살아가는 마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기자말]
[이전 기사] 설마하겠지만.... 치매여도 괜찮을 수 있습니다 http://omn.kr/208en 

꼬리 셋 달린 할머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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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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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변하면 죽을 때가 다 됐다 하지요?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는 목숨도 아홉 개라 하는 말도 있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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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 김말임(가명)은 아마도 전생에 꼬리가 셋 달린 여우였나 봅니다. 제가 세 번이나 크게 변하고도 아직 버젓이 살아있거든요. 꼬리 세 개 달린 나 김말임이 사연 한번 들어 볼랍니까?
 
그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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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은 저세상 구경이 그리 급했는지 나이 40에 먼저 세상 떠버리고요. 혼자 남아 삼남매 자식 농사 짓는다고 겪은 고생은 말도 다 못합니다. 큰아들은 서울에, 딸은 대구에, 막내아들까지 돈 번다고 경기도로 가버렸지요. 결국 제 혼자 고향 시골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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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누가 말했지요? 어서 빨리 떨어졌으면 싶었던 막내마저 떠나고 나니 온 가슴속이 텅 비고 큰 바람길이 나버립디다. 사람 온기가 그렇게 중한 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밥 차려 줄 애들도 없고 입맛도 없고, 잔소리할 사람도 없으니 입도 딱 붙어버리고, 어디 나가기도 싫데요.
 
그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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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장날이라 해서 읍내에 한 번 나갔는데 길을 잃었습니다. 헤매고 헤매다 안 되겠다 싶어 무작정 근처 경찰서 들어가서 읍소했더니 막내아들한테 연락이 간 모양입니다. 그리고 손에 끌려 검사를 받았는데 치매 진단이 나왔죠. 하~ 진짜 하늘색이 까맣대요. 그때가 저의 첫 번째 꼬리를 뗀 날 같습니다.
 
그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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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아무도 있어 줄 사람 없으니, 내 발로 요양원에 들어갔습니다. 근데 어찌나 낯설던지요. '이제 여기가 내 집이다 생각하고 살아라' 하는데 그게 말대로 됩니까? 방은 온천지 사방이 다 뚫려있고 사람들은 들락거리고, 내 옆에는 나보다 더 정신없는 노인네가 누워 있고... 절대 집이 아니지요. 지내면서 들었던 불안과 황당함은 말로 다 못 합니다.
 
그림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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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탈출 계획만 세웠던 것 같습니다. 눈이 벌겋도록 출구는 기본이고 탈출동선을 다 파악했습니다. 수중에 비상금도 챙겼고요. 밖에 슬며시 나가다가 잡혀 들어오기만도 수십 번이었죠.
 
그림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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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밤에 사달이 나고 말았습니다. 깜깜한 밤중에 볼일 보러 일어섰다가, 크게 한번 엎어졌습니다. 머리랑 손목을 깨먹었죠. 그때부터 위험하다고 기저귀를 차라고 하더군요.
 
그림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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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 내 인생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까칠한 기저귀가 허벅지고 엉덩이를 찌르는데 좀 살살 묶어 달라 해도, 안 그러면 샌다나? 사람들이 전부 귓등으로 듣고... 부아가 나서 팍 쥐어뜯어 버렸지요.
 
그림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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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 상황이 이상하게 변해갔습니다. 그 길로 사람들이 기저귀에 손대면 안 된다고 내 손에 장갑을 씌웠습니다.
 
그림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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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미치고 환장하지요. 옛날에 텔레비전에 분신 자살 뉴스가 나오고 하더만 그 양반 심정 딱 이해가 되더군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장갑도 확 뜯어버렸습니다. 속은 후련했습니다.

그런데 아차! 그 길로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막 말리는데요. 내 이렇게는 못 산다 싶어 그냥 이판사판 참았던 욕, 다 퍼붓고 내 좀 내버려 두라고 주먹도 내저었죠.
 
그림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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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신기하지요. 뭘 먹였는지 그 후로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잠이 한도 끝도 없이 쏟아지고 힘도 없고 계속 누워 지냈습니다. 그냥 내 인생 이래 끝나는가 보다, 그래 이렇게 끝나도 괜찮다, 이런 생각밖에 안 나더군요. 딱히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이때 두 번째로 내 꼬리가 떨어졌습니다. 그때 나는 이미 심적으론 죽었었지요.
 
그림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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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 번째 꼬리는 언제 뗐냐고요? 고약한 치매노인으로 찍혀 눈총받으면서 얼마를 지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참 뭔가에 취해서 살던 차에 막내아들이 불쑥 찾아왔습니다. '엄마, 이제 우리 집에 갑시다' 하면서 짐 보따리를 주섬주섬 쌌습니다.
 
그림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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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내 살던 고향마을로 내려왔습니다. 평생을 보냈던 내 집에 오니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요. 그냥 딱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이때가 마지막 남은 세 번째 꼬리를 뗀 날입니다. 심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날이니 당연하지요.
 
그림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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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없고 자꾸 잊어버리는 건 여전하지만 그래도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들이 꾸벅~ 아침 절도 해주고 일 나갔다 돌아와 같이 밥 먹을 때는 밭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해주고요. 저도 마당에서 고추도 말리고 마당도 쓸고 소일거리도 하면서 재미있게 지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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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병원에서는 천하에 악독한 치매 할멈이었는데, 이제 우리 아들 녀석의 예전 엄마로 다시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옛날 병원 간호사들이 지금 내 모습 보면 못 알아볼 겁니다. 하하... 병원에선 왜 그렇게 고통스러웠을까요? 왜 그리 불평, 불만으로 지냈을까요? 아득한 꿈만 같아요.  끝. (책 <아름다운 후퇴>에서 모티브를 딴 이야기입니다.)

치매 공포라는 불행이 예약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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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에 '치매'를 치면 거의 치매가 얼마나 무서운 질병인지, 얼마나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그래서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먹고 또 어떤 보험에 들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정보일색입니다. 치매공포 마케팅의 범람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필요한 내용일 수 있습니다. 치매에 대한 심각성을 일깨워 미연에 예방하는 것이나쁜 건 아니니까요. 단, 치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됩니다. 각종 매체에서 알려주는 방법대로만 해서 치매를 100% 막을 수 있다면 편견이랄 것도 없이 역사 무대에서 사라지겠지요.

치매는 원인을 완전 박멸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닙니다. 치매는 인간의 노화와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늘어난 수명만큼 더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초고령사회는 바로 치매가 보편화된 치매사회와 동의어입니다. 그런데 치매를 몹쓸 천형으로 인식하는 사회라면 참으로 불행이 예약된 사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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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도에 책 하나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책의 부제는 '똥꽃' 입니다. 농부 전희식이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겪었던 에피소드를 기록한 책입니다. 도시생활 중 저자는 어쩔 수 없이 치매든 어머니를 시설에 모실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저자는 귀농을 결심하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찾았는데, 시설에서 본 어머니의 모습은 전형적인 치매노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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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과 의심에다가 욕을 퍼붓고 할퀴는 어머니 증상 때문에 요양원 직원들이 너무 힘들어했습니다. 이 책은 이런 치매노인을 지극한 효심으로 지극정성 돌봐드렸더니 어머니가 좋아졌다, 이런 식으로 자랑하는 책은 아닙니다. 이런 식상한 스토리였다면 이 책은 세상에 얼굴을 들이밀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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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간 우리가 치매에 대해 얼마나 잘못 알아왔는지를 느끼게 해줍니다. 치매에 대한 편견을 하나하나 깨는 놀라운 일들이 펼쳐집니다. 이 책은 약으로만 조절 가능하다고 여겼던 치매의 전형적인 증상들, 즉 망상, 의심, 폭언, 폭행, 섬망이 점차 사라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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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이야기에서 치매에는 주증상이 있고 주변증상이 있음을 말씀드렸지요? (주변증상은 '정신행동증상'이라고도 합니다) 치매는 뇌의 기능이 정상보다 빨리 퇴행하는 질병입니다. 뇌의 핵심 기능은 기억하고 감각하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뇌기능의 퇴행이 이루어질 때 나타나는 주증상은 기억과 감각을 잃고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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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의 모든 증상은 주변 증상입니다. 사람마다 천차만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요. 우리가 치매의 핵심증상이라고 믿었던 망상, 의심, 폭언, 섬망은 사실은 케어방식에 크게 영향을 받는 치매의 주변증상에 불과했던 겁니다. 치매에 대한 편견의 핵심은 바로 치매의 주변증상을 본질적인 주증상으로 여기는 것, 즉 치매에 들면 무조건 나타나는 증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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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증상만 있고 주변증상은 없는 치매를 소위 '예쁜 치매'라고 부릅니다. 농부 전희식이 했던 일은 24시간 지극한 효성의 간병 모범사례가 아닙니다. 그저 어머니를 어머니로 대한 것입니다. 아침 밭일을 갈 때 큰 절로 인사드렸고, 점심 나누며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드렸고, 일과를 마치면 하루 있었던 농사일을 소상히 들려드린 게 다였습니다. 바로 관계성의 회복입니다. 치매노인이 아닌 그냥 어머니로 대한 것뿐입니다. 

치매노인 역시 안전한 곳에서 존중과 인정을 받으면서 살고 싶은 똑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요양원에서 악독한 치매노인으로 낙인 찍혔던 어머니는 이런 관계성의 회복 속에서 예쁜 치매로 변해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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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이 '똥꽃'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어머니의 똥을 꽃으로 표현합니다.  어머니를 그저 어머니로 모신 공경의 표현입니다. 하루 24시간을 돌보면서도 치매노인의 실수에 대해 면박과 야단으로 일관한다면 온종일의 바친 수고는 반감될 수밖에 없죠. 하루 두세 시간의 짧은 돌봄밖에 못해드려도 존중과 편안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똥꽃의 기적은 우리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치매에 대한 편견을 깨는 힘은 약물이 아니라 행복한 관계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최근' '휴머니튜드(선진 치매 돌봄기법)'라는 돌봄 철학을 통해 알려지고 있습니다. '휴머니튜드'에 대한 소개는 다음 이야기에서 들려드리겠습니다.

 

똥꽃 -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전희식.김정임 지음, 그물코(2008)


태그:#예쁜치매, #정신행동증상, #똥꽃,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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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동물, 식물 모두의 하나의 건강을 구합니다. 글과 그림으로 미력 이나마 지구에 세 들어 사는 모든 식구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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