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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오이지오이 한 박스가 도착했다. 얼마 전, 동네 마트에서 오이지오이는 언제쯤 오냐고 했더니 아저씨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요즘 오이 값이 따따블로 올라서 우리도 못 갖고 와요."

할인 가격으로 오이 세 개가 들어있는 한 봉지가 2천 원이다. 따따블이면 저 한 봉짓값이 8천 원. 암튼 너무 비싸다. 집에 와서 컴을 켰다. 온라인은 좀 쌀까 싶어서다. 오이지오이를 검색했다. 무게도 다양하고 값도 제각각이다. 그러다 OO시장에서 온다는 40개 포장오이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값은 3만 2천 원. 40개를 나누면 한 개 8백 원꼴이다. 꽤 비싸다. 나는 따따블에 비하면 지금 가격도 부담스럽긴 하지만 맛있게 담아서 먹기로 했다. '바로구매'를 클릭하고 결재를 하기 전, 수량에 '+'를 한 번 더 눌렀다.

엄마가 준 돌멩이
  
오이를 넣고 물 없이 소금과 식초, 물엿, 소주 등으로 담아보는 오이지.
 오이를 넣고 물 없이 소금과 식초, 물엿, 소주 등으로 담아보는 오이지.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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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아래를 섞어 파란 기운이 있는 오이를 아래에 둔다. 서서히 물이 생기며 오이에서 수분이 빠져 나와 쭈글쭈글해진다.
 위 아래를 섞어 파란 기운이 있는 오이를 아래에 둔다. 서서히 물이 생기며 오이에서 수분이 빠져 나와 쭈글쭈글해진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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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를 열어보니 포장오이 두 뭉치가 나란히 누웠다. 연두와 초록이 골고루 섞인 오이는 크기가 썩 고르지 않았다. 안쪽엔 작은 게 많았다. 싱크대에 오이를 다 쏟아놓고 물을 세게 틀었다. 수세미에 굵은 소금을 묻혀 오이 하나씩을 정성들여 닦았다.

채반 위에 올려 물기가 빠지길 기다리는 동안, 김치통 두 개와 소금, 식초, 물엿, 소주 등을 준비했다. 얼마 전, 물 없이 끓이지 않고 만드는 오이지 레시피를 메모해뒀다. 그리고 베란다에서 오이 위에 질러놓을 돌멩이를 챙겼다. 야구공 두 개를 합쳐놓은 크기의 차돌멩이는 둥글납작하다. 표면이 거친데 없이 아주 매끄럽다.

"이게 얼마나 요긴한지 몰라. 우리 항아리에 얘가 들어가서 딱 자리 잡고 앉으면 아주 그만이야."

돌멩이가 언제부터 우리 집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35년 전 결혼하기 직전에도 엄마가 오이지를 담글 때마다 꼭 저 돌멩이 얘기를 꺼냈던 기억이 난다. 매끈한 돌멩이를 만지고 있으니 마치 엄마가 돌멩이를 나한테 맡긴 것 같다. 이게 그리 요긴하다던 엄마는 지금 안 계시다.
 
엄마가 내게 맡긴(?) 돌멩이. 오이지를 지그시 누르고 있다.
 엄마가 내게 맡긴(?) 돌멩이. 오이지를 지그시 누르고 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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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엄니의 돌멩이

(시)엄니 방에는 오래된 화초장이 있었다. 보통 4단짜리 서랍장 크기의 장 안에는 엄니의 속옷이나 귀중품 등이 들어있는데 내가 직접 그 서랍을 열어본 적은 없다. 귀중품이라야 서울 큰며느리가 사준 여우털목도리, 셋째 아들 학군장교졸업식 때 받은 기념반지, 또 금빛으로 도금한 비녀나 한복 등일 거라고 짐작되었다.

화초장은 엄니 나이 열여섯 살, 시집올 때 갖고 온 것 유일한 물건이다. 모서리 네 귀퉁이의 은색경첩은 엄니 얼굴에 핀 검버섯처럼 군데군데 푸르게 됐다. 동그란 쇠고리와 잉어모양 자물쇠는 언제 봐도 반들거렸다.

결혼하면서 나는 엄니를 모시고 직장에 다니는 미혼의 시동생 둘을 뒷바라지하며 생활을 시작했다. 첫애가 태어나고 큰시동생이 결혼하면서 분가했다. 둘째를 낳고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집안 대소사로 친척들이 모이면 난 엄니 방에서 잠을 잤다. 엄니 방의 오래된 물건들에서 풍기는 냄새가 어둠과 섞이면 편안했다.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물건들이 은근하고 그윽한 서글픔으로 친근하게 다가왔다.

언젠가 엄니로부터 '돌멩이' 얘기를 들었을 때, 난 그 방에만 가면 항상 화초장 어딘가에 있을 돌멩이가 궁금했다. 엄니는 그걸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때마다 돌멩이는 내 상상 속에서 커다란 바윗돌이 되고 손에 잡히는 조약돌이 되기도 했다. 나는 엄니의 화초장, 그 어느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을 돌멩이가 보고 싶었다. 돌멩이는 화초장과 시간을 같이 했다. 돌멩이 하나가 화초장에 모셔진 사연은 이렇다.

엄니는 맏이로 태어나 첫 돌도 되기 전, 생모가 돌아가셨다. 다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맞았다. 당신에게 엄마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너무 좋았다. 동생들 넷이 연이어 태어났다.

엄마 품에 안겨본 기억이 없지만 그 품속이 너무나 그리웠던 어린아이, 동생 옆에서 슬며시 새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질라치면 새어머니는 살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꼬집었다. 칼국수를 썰고 있는 새어머니 옆에서 '국수꽁댕이' 하나만 달라고 했다가 칼을 들이대며 주둥아릴 찢어놓는다는 말에 놀라 울며 며칠을 무서워했단다.

동기간들과 그렇게 구별을 두니 보다 못한 아버지가 어린 딸을 큰집에서 자라게 했다. 아버지는 가끔씩 딸을 보러 찾아왔다. 당시에 읽을 만한 옛날 책, 그러니까 <장화홍련>이나 <심청전> 같은 책들을 갖고 오셨다는데, 그 책 읽는 기쁨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서 거의 외우다시피 읽고 또 읽었다. <심청전>은 언제 읽어도 엄니이야기가 되었다.

큰집에서 자란 엄니 나이가 열여섯 되던 해, 농사를 짓는 양반 가문의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갓 나서 젖배를 곯고 어미사랑도 받지 못하고 큰집 사촌들과 함께 자란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때 아버지가 딸에게 준 것이 돌멩이였다. 엄니가 살던 강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돌멩이, 한 주먹에 꼭 쥐어지는 차돌멩이. 내일이면 시집가는 딸을 불러 아버지가 그 돌멩이를 건네면서 말씀하셨단다.

"이 돌멩이가 말하거든 그때 너도 말을 하거라."

15년 전의 일이다. 앙상하게 구부러진 나무처럼 모로 누운 엄니의 쪽진 머리에서 동백기름 냄새가 났다.

"엄니!"
"왜?"


금방 코 고는 소리를 들었는데 바로 대답이 들렸다. 나는 엄니를 불러놓고 실없이 웃었다. 굽은 몸을 뒤채이며 왜 안 자고 자는 사람을 부르냐고 한다.

"그냥 불러 봤어요!"
"기냥? 음음, 싱겁기는…."


나는 또 엄니를 불렀다. 그리고 지금도 엄니화초장에 그 돌멩이가 있는지 물었다. 엄니는 목소리에 힘을 올리며 말했다.

"그게 그럼 어디 가니? 음음…."

나는 엄니에게 "그 돌, 저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엄니가 말씀하셨다.

"돌멩이가 말하거든 너 줄게."

오이가 담긴 김치통 뚜껑을 열자 돌멩이에 지그시 눌린 오이가 노릇노릇하다. 오이의 수분이 빠지면서 파릇하게 꼿꼿하던 오이가 밤새 나긋해졌다. 위아래 위치를 바꿔서 아직 푸른 기운이 남은 오이를 아래쪽에 놓았다. 노릇한 오이 하나를 먹어보니 색깔만 그럴듯하고 숙성이 덜 된 맛이다.

돌멩이가 말하면 나를 준다던 엄니의 돌멩이는 지금 어디 있을까.

태그:#돌멩이, #오이지오이, #엄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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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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