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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허리가 아파 병원 여기저기를 옮겨 다녔다. 차도가 없자 한 달 전에야 큰맘 먹고 MRI를 찍었다. 척추 마디 사이는 바늘 들어갈 틈 없이 일그러졌고 디스크는 다 터져 앞뒤로 튀어나와 있었다. 병원에선 뼈마디 간격이 좁아 결국은 인공디스크를 삽입하거나 핀으로 고정해야 한다고 했다.

가슴 속에 커다란 풍선이 펑 하고 터진 것처럼 먹먹했다. 간신히 깔딱거리는 가느다란 호흡만 이어갔다. 당장 등짝에 살을 갈라 뼈에 못질을 한다니 상상만 해도 몸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좋아질 수 있냐는 질문 대신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나이 지긋한 의사는 한참 말을 아끼다가 입을 열었다.

"언젠간 수술을 해야 하지만, 젊은 나이에 수술을 하면 결국 나이 들었을 때,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문제예요. 버티는 데까지 버텨봐요. 당장 저리거나 마비증상이 없는 건 불행 중 다행이니까."

그날 밤, 병실 천장을 보며 밤을 꼬박 새웠다. 나머지 디스크가 터져 신경을 녹이고 하반신 마비가 올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리자 무표정한 두 뺨을 타고 눈물이 연신 흘렀다. 운동이나 자세를 찾아보고 시술도 찾아봤지만 너무 늦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휠체어를 타면 그 다음에는 어떡하지
 
훨체어를 탄 내 일상은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훨체어를 탄 내 일상은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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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기 어려우면 밥은 어떻게 먹고 화장실은 어떻게 갈까, 집에 누워만 있겠구나, 누가 나를 들어 옮겨주지, 지금껏 내가 해오던 일은 다 어떻게 하지. 한편으로는 하반신 마비니까 휠체어를 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쇼핑으로 휠체어를 검색했다. 수동, 전동. 수동은 팔이 아파 힘드니까 전동을 찾아봤지만 임대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면 직업이 있어야겠구나. 직장에서 잘리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다음 날 출근길에 나섰다. 몸과 마음이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당장 현관문 앞에 쭉 놓인 계단부터 난관이었다. 그래도 가족의 도움으로 버스정류장까지 도착한다면 장애인 저상버스를 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버스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버스 출입문이 열리면 뭐부터 하지, 나 좀 태워달라고 말부터 해야 할까. 조금만 도와주실 수 있느냐고 허락을 얻어야 할까.

허락한다면 빽빽하게 들어선 사람들 틈으로 거대한 휠체어를 꾸역꾸역 집어넣어야 한다. 압축되는 사람들의 불편한 표정, 나 때문에 늦어지는 출발시간. 거기에 눈이나 비까지 내리면 어쩌나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버스를 내릴 때는 뒷문 턱을 어떻게 내려갈까, 내려서 인도로 올라가는 보도블록은 어떻게 극복하지. 

일단 그만 생각하고 출근부터 하자. 어렵게 보도블록 위로 올라가 건물 입구까지 들어간다. 자세히 보니 튀어나온 블록 때문에 노면이 고르지 않아 바퀴가 덜커덩거릴 것 같다. 자동문을 열고 승강기 앞에 다가가 비교적 낮은 위치의 버튼을 누른다. 도착해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내 자리로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아차, 출근해서 확인하니 내 작업대의 높이가 일반 책상보다 훨씬 높다. 아마 휠체어에 앉아 있다면 어깨쯤 높이일 것 같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화장실로 곧장 들어갔다. 화장실 칸이 너무 좁다. 이러면 바퀴가 걸린다. 다시 나왔다. 나오는 길에 시야에 들어온 것이 있다. 자동문과 벽면 손잡이가 달린 장애인용 화장실이다. 매일같이 그냥 지나쳐 거기에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런데 문짝이 반투명 유리문이라 안에서 불을 켰는지 껐는지 밖에서 너무 잘 보인다.

아마도 그곳에 불이 켜져 있다면 사람들은 내가 사용 중인 걸 다 알아챌 것이다. 점심시간에는 건물 밖으로 나와 언덕길을 올라 또 다른 건물로 들어가야만 식당에 도착할 수 있다. 식당 밥은 포기한다. 다행히 오늘은 도시락을 싸왔다. 밥 먹고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다. 책상머리에 앉아 가까스로 시간을 때우며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해서 집으로 간다. 두 발로 버스 위에 올라 저벅저벅 걸어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그 어느 때보다 피곤하다.

며칠 동안 매번 오가는 길마다 동선을 살폈다. 바퀴가 구르기 어려운 '턱'이 가장 문제였다. 다리 한 번만 교차해서 오르던 단차가 끝이 안 보이는 절벽처럼 높았다. 그렇게 악착같이 버텨내며 출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에 질려버려 다시 집에 누워있는 상상으로 되돌아갔다.

혹시라도 나이 들고 쇠약해진 부모에게 나를 부양할 것을 부탁해야 하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살아가려면 예전처럼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부터 받아들여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 일상생활을 비롯해 거리 위의 불편함과 사람들의 시선에 적응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할 수 있을까. 할 수밖에 없는 일들.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일들. 가늠조차 되지 않는 불편이 일상이 되어버릴 것이다. 어쩐지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만날 일이 적은 이유를 알아버린 것 같다.

장애인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

나는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서 발가락부터 꼼지락거린다. 감각이 남아있는지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직은 별일이 없어 여느 때와 같이 씻고 출근한다. 이런 상태로 계속 살아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장애가 두렵다. 손가락 하나만 다쳐도 다른 손가락을 사용하는 일에 적응하는 일이 낯설다.

신체적 장애를 겪는 일은 지금까지 사용하던 모든 근육을 다르게 사용해야 함이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신체 뿐만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인데 몸 어딘가가 부자유하면 우리 사회는 다른 부류로 낙인한다. 건강한 누구든 언제라도 장애를 얻을 수 있지만 장애를 가진 것이 부끄러운 사회에서는 자신의 장애를 감추고 싶어진다.

나는 장애인이 되는 것보다 장애인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삶이 두렵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운용하는 데에 장해가 없었으면 한다. 다양한 모습의 우리가 교육과 사회활동 참여에 차별받지 않고 사회가 함께 책임지며 가족이 부양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갈망한다. 그리하여 장애를 얻은 누구라도 좌절하지 않고 그 앞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문이 열리기를 소망한다.

태그:#훨체어, #전장연, #비장애인,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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