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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레인보그 플래그.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레인보그 플래그.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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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지인에게서 '성소수자의 삶이 어떤 게 (특별히) 어려운 거냐?'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질문에 가슴이 콱 막혔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대답을 해야 할지, 질문의 저의는 무엇인지. 이 질문에서 성소수자를 여성으로 치환한다면, 페미니스트인 지인은 어떻게 답할 수 있었을까요?

성소수자들은 가족과 친구 등 사회적 관계로부터의 고립이나 불화를 쉽게 경험합니다. 성소수자들은 소위 '개인적 삶'이나 문화적 문제뿐 아니라 주거, 의료, 노동, 복지, 공공시설 이용에 대한 접근1)을 포함한 사회적인 삶의 여러 영역에서 직접적으로 배제되고 있습니다. 

주거의 경우, 성소수자인 20~30대의 아파트 거주율은 13.4%로 20~30대 일반 인구 47%에 비해서 훨씬 낮습니다.2) 정상가족 중심 주거정책이 그 외 가족이나 시민들의 주거 문제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고, 원가족으로부터 적절한 지원이나 돌봄을 받기 어려워 일찍부터 불안정한 주거 문제를 겪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보건의료 영역에서 트렌스젠더의 호르몬 치료는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놓여있으며, 비이성애 관계에 속한 성소수자들의 생식건강에 관한 정보 역시 대단히 협소합니다. 입원, 수술 등 응급상황에서 동성 파트너는 보호자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동성혼이 법적 인정을 받지 못해 여러 사회보험에서도 배제됩니다. 최근엔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등록되었다 취소된 동성 부부가 행정소송에서 패소하는 사건이 있기도 했습니다.

지인의 질문을 받고 오래 고민했습니다. 페미니스트로서 함께 많은 의견을 나눈 지인에게 이 질문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성소수자가 오로지 '성소수자인 존재'로 그려지거나 생각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구체적인 조건 속에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성소수자'로만 그려지는 존재에게서 떠올릴 수 있는 질문이란 매우 협소할 테니까요.

그래서 이 질문은 질문자가 의도하지 않은 의의를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삶의 여러 구체성 속에서 아직 언어화되지 못한 성소수자의 문제를 떠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소수자 당사자로서는 서로 다른 정체성 간의 상관관계를 깊이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이는 코로나 유행 동안 더 확고해졌습니다.

코로나와 성소수자 노동자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미국에서는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캠페인(HRC)이 코로나가 성소수자에게 얼마나 더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했습니다.3) 코로나 이후 직장을 잃은 성소수자들은 17%로 일반인구집단의 13%보다 높았는데, 인종별로 보면 백인 성소수자는 14%가, 유색인종 성소수자는 22%가 해고를 경험했습니다.

또한 42%의 성소수자들이 '재정 상황이 1년 전보다 훨씬 나빠졌다'고 응답했는데, 일반인구집단보다 6%p 높았습니다. 비자발적인 근무시간 단축도 일반인구집단 5명 중 1명이 경험할 때,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3명 중 1명이 겪었습니다. 같은 단체가 2018년 성소수자 노동자의 유급병가를 조사했을 때 29%가 본인이나 가족이 아플 경우 유급병가를 받을 수 있다고 응답했는데, "업종에 따라서 다르지만" 76%의 노동자가 유급병가를 이용할 수 있다는 다른 통계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HRC는 많은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요식업 등 팬데믹에 직접적인 경제적 영향을 받은 일자리에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성소수자들이 고용보장이 어려운 일자리에 주로 취업해있는지 질문해봐야 합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직장생활에 전제되어있는 성별 규범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의료 접근권이 직장생활 중에 보장되지 않아서, 직장 내 괴롭힘이나 차별로 인해, 아웃팅을 걱정하거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고통 등, 많은 성소수자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영위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습니다.

다른 미국 언론은4) 가족 휴가 정책과 의료 서비스 등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기업 정책들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고용 차별을 금지하는 판례나 성소수자의 건강을 보장하는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사회 전체적으로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고용차별과 같은 직접적, 간접적 차별 나아가 미세한 차별(Microaggression), 배제감을 겪지 않아도 되는 평등하고 건강한 일터가 필요합니다.

혐오와 고립의 시간을 넘어서

2020년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 많은 언론과 사람들이 '게이 클럽'에 방점을 두면서 혐오와 낙인이 광범위하게 표출되었습니다. 사람 간 접촉을 통해서 전파되는 감염병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와는 무관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팬데믹을 통해서 배웠지만, 원숭이두창이 유행하자 남성 동성애자로 인해 발생한 질병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습니다.

최근 한노보연에서 진행한 <청년 여성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정신 건강 연구>의 한 면접 참여자는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당시 회사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방문 사실을 조사했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소수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혐오와 낙인을 끊어내기 위해서, 한 사회의 건강은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의 건강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코로나 유행이 잦아든 이후 사회가 회복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노동시간 개악과 공공성에 관한 후퇴된 논의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노동의 위기는 그 자체도 문제지만 소수자들에게 중첩된 문제점들을 낳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위기에 대한 다층적 해석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각주
1) 한국일보, <법원 "성소수자 행사 이유로 체육관 대관 취소는 위법">, 20220518 
2) 성소수자 주거권 네트워크, <성소수자 주거실태 및 주거 불안에 관한 연구발표>
3) 기사 원문: https://www.nbcnews.com/feature/nbc-out/lgbtq-people-face-higher-unemploymentamid-coronavirus-pandemic-survey-finds-n1205296
4) https://www.businessinsider.com/coronavirus-pandemic-lgbtq-workers-financial-mental-physicalhealth-2020-6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지안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여성노동자건강권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7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성소수자_노동자, #코로나_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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